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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 제주여행기 - 제 6일차

느림보 이방주 2018. 1. 24. 16:57

세계자연유산 제주여행기 - 제 6일차


2018121() 맑음

 

여정 : 우도해안도로 산굼부리

    

1. 우도 


오늘은 우도를 들렀다가 산굼부리를 가기로 했다. 우도에서 나오면서 시간이 되면 함덕 서우봉 해변 올레길 북촌 43유적지를 돌아보면 좋을 것이라고 욕심을 부려보았다.


개설

동경 120°57, 북위 33°30에 위치하며, 구좌읍 종달에서 약 2.8떨어져 있다. 면적은 6.18이고, 해안선길이는 17.0이다. 섬 전체가 우도면에 속하며, 천진리서광리오봉리조일리의 4개 리가 있다.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제주 근해의 부속도서로는 면적이 가장 크다.


명칭 유래

섬의 형상이 물소가 머리를 내밀고 누워 있다고 하여 소섬 또는 이를 한자화한 우도라고 불린다.


자연환경

4기에 활동한 한라산의 측화산(側火山) 중 하나이며, 동남쪽에 있는 분석구(墳石丘)인 소머리오름(133m)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평지로 되어 있다. 하천과 용천수(湧泉水)가 없으며, 음료수는 빗물에 의존하고 있다.

동남쪽의 우도봉(牛島峰)을 정점으로 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대부분 지역이 고도 30m이하의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해안은 사빈해안으로 된 북동쪽의 독진포(獨津浦)를 제외하면 암석해안으로, 특히 남쪽해안에는 해식애와 해식동굴이 발달하고 있다. 해양성기후로 1월 평균기온 5.5, 8월 평균기온 25.6, 연강수량 1,304이다.


형성 및 변천

1698(숙종 24)에 목마장이 설치되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시작되었으며, 1840년대부터 일반인의 거주가 허용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제주목의 좌면에 소속되었고, 1900년대 초에는 연평(演坪)’이라 칭했다. 1914년에 제주군 구좌면 연평리에 속하였으며, 1946년에는 북제주군 구좌면 연평리가 되었다. 1963년에는 연평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86년에는 우도면으로 승격하여, 제주도 북제주군에 속하였다. 2006년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에 따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이 되었다.


현황

2010년 기준으로 인구는 1,575(756, 819)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731세대이다. 취락은 섬의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으며, 4개의 행정리로 구성된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은 0.01, 밭이 4.09, 임야 0.95등이다. 주민들은 반농반어에 종사하고 농업소득 40, 어업소득 60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마늘땅콩 등 청정농산물이 있으며, 해산물로는 자연산 소라오분자기넓미역 등을 생산한다. 소와 돼지의 사육도 활발하다. 연근해에서는 어선으로 문어와 갈치, 낚시로 방어와 농어가 주로 잡힌다.

남쪽의 천진항에서 성산포까지 여객선이 수시로 운항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우도초등학교와 우도중학교가 있다. 우도초등학교와 우동중학교는 연평초등학교와 연평중학교에서 20103월에 교명을 변경한 것이다.

-한민족대백과사전-

 

숙소에서 9시에 시동을 걸었다. 성산항까지는 거의 40여분이 걸렸다. 성산항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합실에 들어가니 103분 전인데 10시 배를 타라고 한다. 뛰어가서 우도사랑 2호를 탔다. 우도사랑 2호는 1인당 8,500원이다. 완도에서 제주까지 25,000원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싸다.  선실에 들어가지 않고 갑판 위에 서 있었다. 몇 해 전에 우도에 들어갈 때는 갈매기가 새우깡을 얻어먹으려고 엄청나게 날아들더니 그런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새우깡을 주는 이도 없다. 인심이 메마른 건지 자연을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갈매기도 제가 먹이를 구하는 것이 삶의 방법이다. 사람이 새우깡을 먹이면 더 이상 새우를 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생존 능력도 그만큼 덜어질 것이다. 사람도 ㅏ찬가지이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하는 것도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승선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배가 우도항에 도착하자 내리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우도항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로 올레길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기오토바이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고 버스로 뛰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버스를 탈까, 전기 자동차를 빌려 탈까, 아니면 자전거를 빌릴까를 계속 상의하면서 전기 오토바이를 들여다보았다. 전기오토바이는 30,000인데 둘이 탈 수 있다. 그런데 차는 자동차 모양인데 핸들이 오토바이 핸들이었다. 그리고 좌석이 아주 비좁았다. 자전거는 한 대에 10,000인데 두 대를 빌려야 한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는데 아내가 자신 없어 한다. 공영버스에서 나와서 설명하기를 버스를 타면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려서 걷든지 구경을 하든지 하다가 다음 버스가 오면 타면 된다고 했다. 그게 좋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1인당 5,000이다. 이것도 비산 편이다. 추자도가 1000원인데 비하면 엄청나게 비산 것이다. 그런데 별로 내리고 싶은 곳이 없다. 버스에서 바라보면 다 보인다.


사람들은 서빈백사라는 곳에서 거의 다 내렸다. 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쪽빛 바다 위에 불끈 솟은 성산 일출봉의 절벽이 그대로 다 보인다. 천진항에도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다. 제주 여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우도를 들러 가는 것 같다. 나는 검멀대 해수용장 인근에서 내려서 검은 석벽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우도에서 버스투어를 한 번 해본 경험이 있는 아내가 그냥 비양도만 가자고 했다. 그래서 계속 그냥 타고 가다가 비양도 입구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여기서 많이 내린다.


비양도에 들어갔다. 비양도는 우도에서 150m쯤 떨어진 작은 섬이다. 사실 비양도는 제주도 서쪽에 있는데 여기 비양도가 또 있어서 의아했다. 이곳은 우도비양도라 해야 되지않을까 싶다. 다리를 놓아서 우도와 이어졌다. 비양도에 들어가니 조금 신비스러운 감이 들었다.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그냥 태평양에 바로 연결되는 기분이다. 바다는 넓고 물은 깨끗하다. 이곳 조금 높은 곳에 망루가 있다. 제주도 돌을 모아서 태백산 천제단처럼 아주 높게 쌓아 올렸다. 이 망루에서 왜구가 들어오는 것을 감시했다가 본 섬에 알렸다고 한다. 대마도에 갔을 때 왜구의 출발지가 되었다는 숨겨진 부두를 본 적이 있다. 일본은 그런 도적의 소굴을 자신들의 지혜라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우스웠다. 역사의 흠집을 자랑으로 아는 민족이다. 비양도에서 나오는 길에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아내는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 있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조금 거들게 되었다. 나가서 바로 걷고 싶었다. 비양도에서 나왔다. 이 작은 섬에 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장까지 1km 정도를 걸었다. 걷는 사람이 많다. 자전거 길도 있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카페가 많다. 젊은이들이 쌍쌍이 와서 행복해 하고 있다.


배에 오르며

우도사랑호


성산일출봉

비양도 입구

비양도 해안


비양도 올레길

돌담


카페 앞에서


우도 해안도로를 걸으며

해안에서

해녀상

인어상


2. 해안도로

버스를 기다려 타고 우도항에 와서 성산으로 나오는 배를 기다렸다. 오후 1시가 되었다. 배를 타고 나와 내 차를 타고 성산을 떠났다. 처음에 큰 길을 따라 산굼부리로 가다가 아내가 해안도로를 가고 싶어 해서 골목으로 나와 해안도로 표지판을 따라 해안도로를 달렸다. 바다 경치가 볼만하다. 주차장이 좋으면 차를 세우고 바다로 내려가곤 했다. 아내는 좋아했지만 내 머리는 산굼부리에 가 있었다. 계속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순이네 식당이라는 곳에서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었다. 제주에 와서 모처럼 입에 맞는 음식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여인들이 일하면서 표나지 않게 친절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아내는 우도 땅콩 막걸리까지 주문해서 막걸리까지 한 잔 했다. 점심을 먹고도 계속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시계를 보니 330분이 넘었다.


해안도로에서

바다풍경

순이네

순이네 차림표

갈치조림 한상

바다풍경


3. 산굼부리


마르란 화구 둘레가 環狀(환상)의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폭렬화구를 말하며, 화산활동 초기에 단시간의 미약한 폭발만이 일어나고 활동이 중지됨으로써 형성된다. 특히 그 폭발은 주로 가스만 터져 나오고 다른 물질은 소량이거나 거의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화구 주위는 낮은 언덕을 이룬다. 이러한 생성과정으로 생겨난 산굼부리는 표고가 437.4m, 이 최고점은 화구 남쪽 둘레의 약간 둔덕진 등성이에 있다. 화구 바닥은 305.4m로 그 표고차, 즉 최고점으로부터의 깊이 132m가 된다. 그리고 북쪽 기슭의 도로(교래~송당)가 등고선상 해발 410m 안팎이므로 도로에서의 산 높이 최고 28m, 화구 바닥은 도로에서 지하 100m 깊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것을 백록담의 깊이(115m)와 비교해 보면 산굼부리 쪽이 17m 더 깊은 것으로 나타난다. 지도상의 계산으로는 섬 안에서 가장 깊은 화구이다. 이것이 그다지 메워짐이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내사면이 우거진 초목으로 다져져서 토사의 유입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화구의 크기는 바깥 둘레 약 2,700m에 밑둘레 750m, 그 넓이30만평방m에 이르는 초대형이다.

소수를 제외하는 대부분의 오름이 혹은 크게 혹은 작게 저마다에 어울리는 형태의 굼부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아득한 옛날 그들이 두꺼운 지각을 뚫고 나와 제주섬에 좌정하는 숨구멍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산굼부리는 산체에 비해 대형의 화구를 가진 특이한 형태로 하여 이채를 띤다. 어떻게 보면 몸뚱이는 없고 아가리만 벌려 있는 것 같은 기이한 기생화산이다.

드넓은 들판 한 군데가 푹 꺼져 들어간 커다란 구렁... 실제 그 바닥이 주변의 평지보다 100m 가량이나 낮게 내려앉아 있다.이 희한하게 생긴 기생화산이 학술적 가치로나 관광자원으로서 보배롭게 여겨지고 있는 것은 한국에는 하나밖에 없다는 마르(Maar)형 화구이기 때문이며 이런 화산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지구가 만들어 낸 걸작 하나가 몇 십만 년 뒤 제주섬에서 내외의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차를 돌려 산굼부리로 향했다. 산굼부리를 포기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산굼부리에 도착하니 350분쯤 되었다. 다른 도립공원보다 입장료가 특별히 비싸다. 산굼부리는 평지에 있는 유일한 분화구이다. 화산 분출 없이 분화구만 생긴 세계에서도 희귀한 화산이라고 한다. 억새가 우거진 언덕길을 걸어 정상에 갔다. 그 때까지는 산굼부리에 대해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는데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150m 정도 깊이의 분화구는 마치 커다란 우물을 연상하게 했다. 그런데 분화구 바닥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농사를 지은 흔적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분화구를 한 바퀴 돌고 싶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주변이 어두워질 것 같아 그냥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안내서를 보니 둘레가 2km 정도라고 되어 있었다. 1시간이면 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또 후회한다.


산굼부리 정문

억새밭에서

분화구

분화구

정상에서

정상에서

분화구 주변을 돌면서

억새

가락지 모양 분화구

하산길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아주 가깝다. 산굼부리에서 20분 정도밖에 안 된다. 내일은 항파두리성을 돌아보고 제주 동문시장 구경을 하고 여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