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백중 맞은 부처꽃

느림보 이방주 2017. 9. 3. 09:30


백중 맞은 부처꽃

 

2017년 9월 2일

미호천에서

 

가을이다. 하늘은 가을의 빛깔로 물들고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가을은 아주 가까운데서 궁싯궁싯 세상을 어루만지며 다가온다. 가을은 음력 칠월과 함께 오고, 칠월의 한가운데 백중이 있다. 백중 때가 되면 가을꽃이 호젓하게 피어나고 과일이 풍성하다. 농가에서는 백 가지 과일을 올려 조상을 위하고 머슴에게 새 옷 한 벌을 지어 휴가를 주었다. 불가에서는 중원中元인 이날을 우란분절이라 했다. 목련존자가 아귀지옥의 어머니를 구한 이후 백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스님에게 공양하기도 하고, 부처님께 꽃을 드려 살아계신 부모님의 장수를 빌고 돌아가신 7대 조상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글피가 칠월 보름 곧 백중이다.

백중이 다가오면 미호천에 부처꽃이 핀다. 자전거를 타고 작년에 봐 두었던 미호천교 부근으로 나갔다. 부처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방천이 온통 자줏빛이다. 지난여름 홍수로 떠내려 온 온갖 쓰레기 더미 위에서 작년과 다름없이 피었다. '부처'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선지 검불 하나 묻지 않은 자줏빛이 깔끔하다. 홍수로 버드나무가 뽑히고 뻘이 쌓였는데도 제자리에서 피어나 청정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미호천 부처꽃은 까치내 사람들을 닮았다. 물들이기를 앞둔 초록이 최후의 푸름으로 발버둥치는데 부처꽃 자줏빛이 더 애절하다. 까치내 들은 지난 장마에 홍역을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치렀다. 볏논에 물이 들고 금덩이 같이 다 익은 참외가 떠내려갔다. 비닐하우스는 탁류에 휩쓸렸다. 그래도 변함없이 오늘을 사는 까치내 사람들이다. 세상은 온갖 천박한 가치들이 발광을 해도 담배 한 개비 피워 물면 울분은 연기 따라 사위어 버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까치내 사람들의 지혜이다.

흙탕물이 뻘로 남은 마당은 겨우 씻어냈으나 무너진 담장을 그대로인데 기념사진 찍듯이 다녀간 나리들도 이제는 오지 않는다. 까치내 사람들은 나리들이 오지 않아도 밭에 나간다. 곯아터진 참외덩굴을 걷어내고 잔자갈 골라내고 남새밭을 다듬어 나리들이 먹을 김장배추씨를 넣는다. 미호천 우거진 갈대숲에 숨어사는 고라니가 좋아하는 근대는 몇 고랑 더 심는다. 까치내 사람들은 비가 오든 가뭄이 들든 제 할 일을 다 한다. 부처꽃이 제 색깔인 자줏빛으로 피어나듯이 말이다.

부처꽃은 백중에도 거둘 과일이 없는 까치내 사람들을 위해서 피어났다. 그 옛날 부처님께 바칠 연꽃이 없어 울고 있던 가난한 아낙의 눈물을 씻어주던 부처꽃이 오늘은 까치내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준다. 부처꽃은 그래서 부처꽃이다. 사랑은 슬픈 것인가, 애절한 것인가. 부처님을 사랑하던 아낙의 애절한 발원을 표상하는 부처꽃을 보면서 사실은 웬수 같은 고라니의 배고픔도 살피는 까치내 사람들의 애절한 사랑을 본다.

연꽃도 지고 없는데 부처꽃은 연꽃 대신 부처님께 오를 애절한 사랑이다. 까치내 사람들처럼 피어서 까치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부처님 같은 꽃이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전설이 된 부처꽃 사랑을 그리며 과만過滿하게 성자 흉내를 내며 허허롭게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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