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분꽃 피는 시간

느림보 이방주 2017. 8. 15. 11:35

분꽃 피는 시간


2016년 7월 19일

주중동 마로니에 시공원에서


오후에 마로니에 시공원에 나갔다. 분꽃을 보았다. 공원 귀퉁이 시비詩碑 뒤에 숨어서 소담하게 피어났다. 공원을 가꾸려고 계획적으로 심은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분꽃을 좋아하는 이가 씨앗을 심었나 보다. 분꽃같이 고운 사람이 가까이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분꽃은 붉은 색도 있고 노랑도 피었다. 어느새 노랑과 붉은색을 함께 지니고 있는 꽃송이도 있다. 긴 세모모양 초록색 이파리 사이로 기다란 꽃자루를 내밀고 활짝 피어난 빨간 꽃이 예쁘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다.

둘째 누나는 내가 열두 살 때까지 함께 살았다. 건넌방에서 수를 놓거나 헌옷을 뜯어놓고 새로운 옷으로 마름질하다가 막내아우를 큰 소리로 부르면 나는 누나에게 뛰어갔다. 보나마나 분꽃이 피었는지 장독대에 가보라는 것이다. 누나는 분꽃이 피면 보리쌀을 안쳤다. 물에 불린 보리쌀을 오지자배기에 담아 소리도 경쾌하게 싹싹 문질러 닦아 가마솥에 삶아낸다. 삶은 보리쌀에 쌀을 조금 섞어 저녁밥을 짓는다. 분꽃이 피면 저녁 보리쌀을 안치는 시간이다.

분꽃은 오후 네 시에 피었다지금도 그때처럼 오후 네 시에 핀다. 시계가 넘쳐나 시계가 필요 없는 이 시대에도 분꽃은 그 시간에 피어난다. 서양에서도 분꽃은 오후 네 시에 피는지 영어로 포어클록four-o'clock이라 한다고 들었다. 오후 네 시는 누나의 시간이다. 한국전쟁 때문에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공부를 중단한 누나는 종일 건넌방에서 박혀 있다. 그러다가 분꽃이  피기를 기다려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나는 오후 네시를 누나의 시간으로 여겼다. 전쟁으로 중학교를 가지 못했던 한국의 누나들은 형편이 다 비슷했다.

누나는 보리쌀을 가마솥에 안치고 보릿짚을 살라 불을 때면서 흥얼거렸다. 누나는 왜 보리쌀 안치는 시간이 즐거웠을까. 아니면 답답함을 이겨내려고 즐거운 척 하는 것일까. 누나는 저녁밥을 준비하는 시간을 안온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했나 보다. 오후의 안온을 준비하는 시간 말이다. 스물여섯 누나에게 오후 네 시가 안온을 준비하는 시간이고 분꽃은 평화를 가져다 풀어놓는 시간이었다. 해가 뒷산을 넘어가고 산 그림자가 너른 앞마당에 서늘한 실루엣을 그리며 내려앉으면 들에 나간 가족들이 돌아온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나의 저녁상이 나오면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진다. 분꽃은 가족의 웃음소리를 준비하는 꽃이다. 분꽃은 하늘 가득 별들의 향연을 준비하는 시간에 피어난다.

오후 네 시가 넘으면 장독대에 분꽃이 피었는지 가보라던 누나, 분꽃이 피면 보리쌀 삶아 저녁밥을 안치던 누나, 분꽃이 피면 가족들의 안온을 준비하던 누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스물여섯 겨울에 시집가신 누님은 환갑을 막 넘긴 나이에 분꽃이 사철 피어나는 영원한 안양安養의 세계로 떠나셨다.

마로니에 시공원에 분꽃이 피었다. 지금은 안 계신 누님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누군가 분꽃을 피워 그리우면서도 잊고 사는 누님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공원에서 팔순에 가까운 할머니들을 만나면 내 기억의 동산에 누나의 분꽃이 깨어난다. 그 분들이 모두 나의 누님 같다. 전쟁이 끝나고 젊은 시절의 고통을 참아낸 누님들이다. 남보다 먼저 가 계신 누님의 세계에도 오후 네 시면 분꽃이 필까? 까만 씨앗 화분두花粉頭에서 발라낸 분가루를 곱게 바른 듯 얼굴 하얗던 누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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