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은 여린 꽃이 핀다
2017년 9월 5일
미호천에서
미호천에서 무릇꽃을 찾았다. 무릇은 이른 봄 해토머리 다른 풀이 나오려 꿈도 꾸지 않을 때에 돋아난다. 처음에는 진한 보라색 두세 앞이 '쑥-' 올라온다. 붉은 색이 조금씩 가시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며칠 걸린다. 녹색이 되면 벌써 한 10cm 가까이 된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다른 풀들은 아직 마른 잎으로 있는데 먼저 힘차게 나오는 것을 보면 땅이 풀리기도 전에 이미 땅 속에서 보따리를 싸 놓고 떠날 준비를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들이들하게 싹이 트니까 무릇은 눈에 잘 뜨인다. 논둑이나 밭둑 약간 습한 곳이면 무릇이 지천이었는데 최근에는 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무릇 싹은 비교적 눈에 잘 뜨이지만 가을에 피는 꽃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꽃에는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길을 천천히 달리며 엊그제 본 부처꽃을 쳐다보는데 언뜻 연보라 꽃이 보였다. 색깔이 하도 연하고 서너 줄기 피어난 꽃대도 하도 연약해 보여서 타래난이 아닌가 했다. 산에서 처음 보았던 귀한 타래난을 여기서 보다니 나는 마음이 약간 들떴다. 그런데 자전거를 세우고 가까이 가서 보니 무릇이었다. 무릇도 있는 곳에서는 무더기로 피우는데 혼자서 피었다.
무릇은 연분홍으로 아주 여린 꽃을 피우기에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무릇꽃은 여릴수록 무릇답다. 강하고 소담한 것은 오만해 보인다. 처음 싹이 돋는 이른 봄에는 그렇게 맹렬하게 올라오는데 꽃은 왜 이리 여릴까? 꽃을 들여다보며 나는 그것이 참 궁금했다.
무릇은 우리 마을에서 물굿이라 했다. 물굿이 구황救荒 식품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안다. 이른 봄 마른 풀잎 사이에서 보랏빛으로 싹이 터서 초록으로 변할 때쯤이면 마을 사람들은 바구니를 들고 들로 나선다. 물굿을 캐러 가는 것이다. 초록 잎뿐만이 아니라 연보라 알뿌리까지 캐서 쑥이나 둥글레 뿌리 같은 구황식물들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푹 고아서 먹는다. 물굿을 많이 먹으면 이빨과 혓바닥이 새까매진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물굿을 입안이 온통 새까매질 때까진 먹어대어 주린 배를 채웠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먹기 싫을 정도로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굿으로 점심을 에우고 마을에 나가면 아이들이 새까만 혀를 길에 빼어 서로 누가 더 까만가 내기를 하며 깔깔댔다. 그 때는 가난도 그렇게 당연하고 즐거웠다. 보릿고개에도 쌀밥만 먹는 방앗간집 아들은 물굿 맛을 보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가난하고 함께 배가 고파서 먹을 게 생기면 함께 나눌 줄을 알았다. 배부른 아이들은 배고픈 게 뭔지 모르니 나눌 줄도 몰랐다. 물굿을 먹고 싶어도 그런 건 가난한 집 아이들이나 먹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에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알고 보니 무릇은 약이 된다고 한다. 찾아보니 한약 생약재 이름으로 면조아綿棗兒라 한다. 둥글레, 참쑥과 함께 달여 먹거나 엿으로 만들어 먹으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신장에도 좋고 근육이 강해져서 허약 체질이 튼튼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릿고개에 아이들에게 딱 맞는 약재이다. 심장이 강해지고 근육이 튼튼해지면 아이들이 더 바랄게 뭐가 있겠는가. 김오곤 한의사가 지은 <산나물 들나물>에는 혈액순환과 염증을 방지한다고 반찬으로 졸여먹으라고 했다.
이제는 무릇을 약으로 먹는다니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 보릿고개가 괴롭던 시절 구황식물들은 풍요 시대를 맞아 거의 다 건강식품이 되었다.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에도 우리는 생약을 먹고 자란 것이다. 한참 자랄 때 영양보다 건강식품을 마구 먹어댄 덕으로 지금은 남보다 더 건강하다고 생각하니 옛 가난이 새삼 고맙다. 또한 남의 것 흘겨보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사는 지금,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 것이니 무릇은 영혼에도 약이 된 것 같다. 참 감사한 일이다.
무릇은 꽃이 여릴수록 약이 되는 모양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가난한 사람에게나 눈에 띠는 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궁금증이 풀렸다. 싹은 이들이들하게 올라와야 주린 사람들의 흐린 눈에도 잘 띠고, 꽃은 여리게 피어야 사람들 눈에 띠지 않고 남아서 내년 보릿고개에 구황救荒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릇꽃의 여리면서도 깊은 뜻을 깨달으니 대자연의 섭리가 더욱 장엄하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돌아왔다.
'느림보 창작 수필 >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화꽃은 포근한 사랑 (0) | 2017.09.12 |
---|---|
가을에 핀 삘기꽃 (0) | 2017.09.12 |
미호천 개똥참외 (0) | 2017.09.04 |
백중 맞은 부처꽃 (0) | 2017.09.03 |
박주가리는 깔끔해 (0) | 2017.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