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동산성답사
▣ 위치 :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 산6번지
▣ 지정번호 : 기념물 제 30호
▣ 시대 : 삼국시대
▣ 규모 : 둘레 약 200m, 해발 220m 산봉우리 테메식 석축산성
▣ 답사 : 2017년 4월 29일 (함께 간 사람 없음)
마산동 산성 개요
이 산성은 해발 220m 의 산봉우리에 쌓은 테메식 석축산성이고 둘레는 200m이다
남벽 일부만 성벽이 남아 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들여쌓았다. 현재 9단 140cm 정도가 남아 있다. 동북쪽 성벽 안쪽의 높은 부분과 서남쪽 성벽의 모서리 부분에는 돌무더기가 있는데 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적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시설로 이해된다.
이 산성은 서북쪽으로는 노고 산성 서남쪽으로 계족산성과 연결되고 있다. 추동 말미마을 동쪽에 회덕황씨 재실이 있고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접하여 있는 해발 220m 의 산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석축산성이 마산동 산성이다.
산성 입구 이정표
마산동 산성 위치도
마산동 산성 입구의 알림판
답사기
청양의 두릉윤성을 답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종시에서 차를 돌려 신탄진을 거쳐 마산동으로 향했다. 대청호 주변의 큰 음식점인 <더리스>에는 가족 단위로 외식하러 온 사람들의 차량이 가득하다. 길가에까지 차를 세워서 마산동산성 입구로 향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황씨 재실 쪽을 버리고 찬샘마을 쪽으로 죄회전하여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마산동 산성 표지판이 나온다. 길가 조금 넓은 곳에 차를 세우고 산성쪽으로 가려니 불안하다. 길이 좁아 다른 차들의 통행에 분명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산불 감시원이 산성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공터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이정표를 따라 산성으로 향하는데 산불 감시원이 다 망가진 산성을 뭐하러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
산성까지는 2km이다. 그냥 바로 산성인 줄 알았는데 2km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테메식 산성을 만난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길은 잘 나 있었다. 이곳이 대청호 500리길의 한 코스이기 때문에 답사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길은 제법 가파르다. 잔돌과 나뭇가지가 밟힐 때마다 미끄러진다. 봉우리가 가까워지자 언젠가 산불이 났는지 산비탈에 서 있는 나무들이 불에 그을렸다. 멀리 호수가 파랗게 보인다. 땀이 흐른다. 문득 등줄기에 소름이 끼친다. 혼자서 등산을 할 때는 느끼지 못한 서늘함을 산성 답사할 때는 느낄 때가 많다. 아마도 마음에 산성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는가 보다. 예나 지금이나 '죽음'이란 참으로 외로운 사건이다. 때로 산성을 다니다 언젠가 나도 스러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스산한데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봉우리가 보였다. 봉우리에 오르니 우선 한 70m 정도 거리를 두고 동쪽과 서쪽 두 봉우리에 돌무더기 쌓인 곳이 먼저 보인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돌무더기를 감싸안으며 성벽이 있다. 작은 두개의 봉우리를 둘러싼 테메식 석축산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돌무더기는 바로 무너진 장대라고 할 수 있고 장대를 싸고 있는 길쭉한 성벽을 추정할 수 있다. 성벽은 남벽의 길이가 약 7,80m, 북벽의 길이도 역시 그 정도 되어 보인다. 남벽은 성의 흔적이 분명하나 북벽은 잡목 속에 묻혀 있다.
돌무더기를 헤치며 남벽을 돌아 보았다. 성의 규모는 작아도 성은 상당히 높고 견고하게 쌓았는지 무너진 돌이 성의 규모에 비해 많다. 마침 성벽의 옛모습이 남아 있는 곳을 발견했다. 쌓은 성벽 5단 정도가 한 5m정도 고스란히 남았다. 아마도 밑 부분을 파내려 가면 땅 속에 묻힌 부분은 원형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성돌은 가로 40~50cm 정도 세로 20~30cm 정도로 길쭉하다. 돌은 화강암으로 상당히 견고한 돌이다. 성돌을 다듬어 바른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맨 아래에 쌓은 돌보다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들여 쌓은 흔적을 볼 수 있다. 중간에 넣는 쐐기돌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돌과 돌 사이의 틈이 넓게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기술을 가진 석공들이 축성에 동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 마산동산성은 사비나 웅진에서 동쪽으로 신라와 경게를 이루는 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계족산성이 사령부라면 개머리산성, 질현성, 고봉산성을 거치면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산성의 띠와 개머리산성에서 노고산성, 성치산성, 구룡산성으로 북으로 이어지는 산성의 띠와 계족산성에서 개머리산성, 마산동산성, 백골산성, 고리산성으로 이어지는 동쪽 방향의 띠를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개머리산성이 동진 북진 남진의 사거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산동산성은 규모는 작지만 여기서 백골산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라는 점이 의미 있을 것이다. 남쪽에서 옥천을 거쳐 회인 보은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거나 신라의 서쪽 전선을 이루는 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보은의 삼년산성에서 회인을 거쳐 사비로 가고자 하는 적을 막는 최전방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호수가 되어 버린 이 고을에서 건너편에 있는 백골산성은 백제 성왕의 아들 부여창(위덕왕)의 군사가 옥천 관산성에서 여기까지 쫓겨와 29600명의 인명과 수많은 말이 희생당한 곳이다. 백골산성 바로 뒤에 고리산성이 있다. 지금은 이 산 아래 고급 음식점이 있고, 회덕황씨 재실인 미륵원지가 있고, 은진송씨 관동묘려가 있다. 그리고 멀리 백골산성 아래 꽃님이 반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꽃님이 반도는 이 고을에 물이 괴어 호수가 생기면서 이루어진 반도이다. 거기에는 부근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가 있다.
마산동산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불이 난 곳에서 새끼손가락만큼 굵은 고사리 몇 개를 꺾었다. 고사리가 왜 이리 튼실한가. 아랫도리가 통통하다. 아마 산성을 쌓고 그 산성을 지키던 군사들도 이곳에서 고사리를 꺾었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한가지니까 말이다. 바람이 시원하다.
산성 정상 보루
남벽 무너진 성돌
무너진 남벽의 일부
원형이 남아 있는 남벽 - 밑에서 위로 조금식 들여 쌓았다.
축성방법이 뚜렷하다.
보루
동서에 있는 두개의 보루
축성 방법이 남아 있는 곳
돌이 흘러내린 남벽의 모습
보루에서 보이는 대청호 - 고리산 백골산성이 보인다.
성에서 주차한 곳까지 내려오니 산불감시하는 분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산을 지키고 있었다. 이 부근에 산나물이 많아서 나물 뜯는 이들을 관리한다고 한다. 그 분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모두 불씨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그분의 눈에는 불씨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 분이 고마웠다. 돌아오는 길은 노고산성이 있는 찬샘정 부근으로 돌아서 찬샘마을로 알려진 피골을 거쳤다. 지금은 농촌 체험마을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개머리산성에서 동으로 노고산성, 성치산성에 둘러 싸인 전쟁터이다. 그래도 피골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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