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당산성과 은산 별신제
[1] 은산 별신제 참관
▣ 지정 : 주요무형문화재 제 9호
▣ 장소 : 부여군 은산면 일원 (충남 부여군 은산변 은산리 은산별신제 보존회)
▣ 기간 : 2017년 3월 29일~4월 2일
▣ 답사 및 참관일 : 2017년 4월 1일(토요일)
은산별신제 유래와 개요(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행해져온 동제.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무슨 연유로 제를 지내게 되었는지를 고증할 만한 문헌은 충분하지 않다. 예로부터 은산은 부여읍에서 서북쪽으로 첫 역원(驛院)이 있었던 곳으로, 인근의 농산물이 집산되었고 5일마다 큰 장이 섰다.
은산마을 뒷산을 당산(堂山)이라고 부르는데, 그곳에는 옛날 토성(土城)이 있었던 흔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당산 서쪽은 절벽이며 그 아래로 은산천(恩山川)이 흐른다. 당산의 남쪽에는 고목이 울창한 숲이 있고, 이 숲속에 별신당의 당우(堂宇)가 있다. 당우는 전형적 기와집으로 한 칸의 방과 마루로 되어 있다. 당우 정면에는 산신(山神)이 안치되어 있고 동편 벽에는 복신장군(福信將軍), 서편 벽에는 토진 대사(土進大師)의 위패와 초상화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주신(主神)으로 산신을 모셔 놓은 것으로 보아 원래는 산신당이었는데 후대에 와서 두 신을 더 모시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복신장군은 백제 제30대 임금 무왕의 조카인 귀실복신(鬼室福信)일 것이며, 토진 대사는 도침 대사(道琛大師)의 오기(誤記)가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다 같이 신라에 망한 백제의 재건을 꾀하였던 충신이었기 때문이다.
은산별신제에는 다음과 같은 기원전설이 있다. 옛날 은산 지방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마을에서는 날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마을의 한 노인이 잠시 낮잠이 들었는데, 백마를 탄 한 장군이 나타나 하는 말이 “나는 백제를 지키던 장군인데 많은 부하와 함께 억울하게 죽어 백골이 산야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영혼이 안정을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을 잘 간수해 달라.”고 청하면서 그렇게 해주면 마을에서 역질을 쫓아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노인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노인은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꿈 이야기를 하고 백마 탄 장군이 꿈에 가르쳐준 장소에 가보았더니 과연 백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역질을 없애주기를 바라면서 백골을 정성껏 주워모아 무덤을 만들어 장사를 지내주었다. 그랬더니 마을에서 역질이 없어져 사람들은 평안하게 살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마을사람들은 “병마를 없애고 마을을 태평하게 해 주십사.” 하며 사당을 짓고 백제의 장군을 제사지내게 되었다. 그 제사가 곧 오늘날의 별신제이다. 별신제는 3년에 한 번씩 정월에 지내는 일이 많다. 그러나 윤달에는 지내지 않는다. 별신제에 앞서 연말께 행사진행을 위한 기성회가 마을 원로 유지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경비조달·절차 등의 준비와 함께 임원을 선출한다. 임원은 기성회에서 선정되며 대개 대장 1명, 중군 1명, 사령집사 1명, 선배비장(先陪裨將) 2명, 후배비장 2명, 통인 1명, 화주 1명, 육화주 1명, 별좌 3명, 축관 1명 등으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무당·조화자(造花者)·공인(工人)·농악수·기수·재물운반인 등 거의 100명이나 되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임원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책인 대장은 덕망과 재력이 있는 사람이 뽑힌다. 대장은 물론 임원들 모두가 부정한 일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 상을 당하였거나 시체를 보아서도 안 되며, 산고(産苦)가 있거나 살생을 한 사람이어서도 안 된다. 임원들 중에 부정한 사람이 끼어 있으면 별신제를 지내도 영검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신령의 노여움을 사서 마을에 재화(災禍)가 생긴다고 이곳 주민은 믿고 있다.
당굿을 할 때에는 기(旗) 끝에 방울을 매달아 둔다. 무녀가 가무를 해서 방울이 울리면 신의(神意)를 얻은 것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임원 중에 부정한 사람이 있어 신이 감응하지 않는 것으로 믿는다. 이럴 때에는 추운 밤이지만 은산천의 얼음을 깨고 찬물에 목욕재계를 다시 한다.
별신제는 동원되는 인원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여느 제의보다 기간도 길다. 또, 임원들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집안일을 못하고 제사지내는 데 동원되어 진력하게 된다. 따라서 경비도 많이 들었는데 이 경비는 걸립(乞粒)으로 충당하였다. 1986년 이후에는 은산별신제보존회가 법인으로 결성되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제의는 진대[陣木] 베는 행사로부터 시작되어 장승을 세우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그 기간은 약 2주 정도 걸린다. 제1일은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는 진대 베기, 제3일은 꽃받기, 제5일은 별신 올리기, 제6일부터 9일까지는 행군과 축원굿, 제10일은 별신 내리고 하당굿, 제12일은 화주에 의한 독산제, 제13일은 새벽에 장승 세우기로 끝이 난다.
별신 올리는 상당굿 때에는 무당에 의해서 『별신축원가』가 불려지고 강신할 때까지 굿을 하며 축원을 할 때에는 『별신축원가』와 함께 12거리굿 중에서 임의로 굿거리를 노래한다. 하당굿 때에는 시장 번영과 임원을 위하는 자리이므로 『축원가』와 『노랫가락』을 부르며 임원·주민들과 함께 춤을 춘다.
1930년대까지도 별신제 때 서커스단이 들어오고, 연일 난장판이 벌어지고 음주가무의 구경거리가 있었으며, 학교 수업도 임시로 휴교를 했으나, 지금은 자연적인 난장이 사라지게 되면서 별신제의 축제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쇠퇴하였다. 은산별신제는 백제의 멸망사와 관계가 있는 장군제(將軍祭)라는 점이 그 특징의 하나이다. 은산은 지리적으로 부여읍과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마을 뒷산의 당산은 바로 백제의 고성이 있던 자리로서 지금도 그 자취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따라서 별신제의 기원전설이 말하는 것처럼 장군이 그의 부하와 함께 전사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별신제의 신은 복신과 도침인데, 이 두 사람은 백제의 재건을 계획한 충신들이며 또한 영웅들이다. 이 제의 속에는 중국과 우리 나라의 옛 명장들의 이름이 나열된 장군축(將軍祝)이 있다.
나라를 잃은 장군의 애화를 담은 향토제이기에 제의의 성격도 장군제가 되어 승마하거나 융복(戎服:철릭과 주립으로 된 옛 군복의 하나)을 입거나 진을 치는 등의 의식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은산별신제는 향토신제(鄕土神祭)가 목적하는 제화초복(除禍招福)을 그대로 반영시킨 일면도 있다. 또한, 원혼을 위안함으로써 안태(安泰)를 이루는 향토신앙의 성격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기예능보유자로 유상렬(劉尙烈 : 대장)·백남식(白南植)·이어인련(李於仁蓮 : 무녀), 뒤에 석동석(昔東錫 : 화주)이 지정되었으나 모두 사망하였고, 현재 기예능보유자로는 차진용(車鎭龍 : 대장)·박창규(朴昌奎 : 화주)·황남희(黃南嬉 : 무녀)가 있다.
부여 은산 별신제 답사기
별신제 일정
◈ 3월 29일 : 물봉하기 행사, 조라술 담그기, 장승깎기 (장소는 은산천, 화주집)
◈ 3월 29일~ 3월 31일 : 집굿행사(기원농악)
◈ 4월 1일 : 상당행사, 본제 행사, (장소는 화주집에서 별신당)
◈ 4월 2일 : 동산제 행사, 장승제 행사(장소는 별신당 독산제당, 동서남북 장승터)
◈ 부대행사 : 면민화합 민속경기, 은산풍물, 두부행사, 면민화합 노래 장기자랑, 행운권 추첨
◈ 은산 별신제 보존회 회장 최병윤, 사무국장 이재명(010-5670-0892)
세종시 비암사를 비롯한 충청남도 홍성, 예산, 부여, 공주, 서천 지역의 백제 부흥운동 유적지에서 해마다 4월이면 백제부흥운동에 희생된 부흥군, 가족, 역대 제왕에 대한 제가 행해진다. 운주산 고산사는 사찰에서 의자왕에 대한 제례를 지내고 비암사는 세종시의 지원을 받아 사찰에서 백제 영산대재를 지낸다. 그리고 각 기초자치단체가 주관이 되어 이와 비슷한 제례를 행한다. 그런데 내가 참관한 백제 대제는 비암사 백제영산대재밖에 없다. 운주산 대제를 가보고 싶으나 정확한 날짜를 모르니 잊어버린다. 대부분이 백제대제라는 형식으로 이행되는데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행해지는 행사는 동제 형식이다. 백제대제와 동제가 통합된 형태라고 할 수도 있고, 백제부흥군 장수를 동제의 신으로 모시고 마을이 주관이 되어 행해지는 것이다.
은산별신제는 잘 알지 못했는데 지방신문 기사를 읽고 찾아가기로 했다. 지방축제와 더불어 여러가지 행사가 열리는데 4월 1일에 은산풍물, 상당행사, 두부행사, 본제행사 등 중요한 제례와 행사가 집중되어 있어 이 날을 택했다. 아침 일찍 승용차로 출발하여 2시간이 안되어 은산면 별신당 마당에 차를 댈 수 있었다. 그러나 행사가 이미 시작되었는지 사람들이 많고 마을 사람들이 호루라기를 불어가면서 차를 통제하고 있었다. 별신당으로 들어가는 은산천 옆 제방도로에는 장승이 늘어서 있고 그 장승 옆으로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어디 한군데도 추자할 만한 장소가 없다. 그렇지 이럴 때는 걷는 것이다. 차를 타고 도로 나와서 은산 파출소 앞에 너른 길가에 주차했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행사장으로 걸어갔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많이 오지는 않는데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 배낭에 고어텍스 재킷을 넣고 그냥 걸었다. 비는 많이 오지 않는다.
[은산별신제]라는 현수막이 많이 걸린 골목으로 들어가니 초등학교 들어가는 길이다. 초등학교 건물은 꽤나 큰 건물인데 지금은 비어 있는 것 같다. 알아보니 은산초중학교로 병합되는 바람에 학교가 비게 된 것이란다. 운동장은 깨끗하다. 사람들이 많고 화단에는 매화가 피었다. 줄다리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시작할 것 같지 않아 서문으로 나가 아까 갔던 별신당에 가보았다.
별신당 앞에 마당이 넓고 신당 바로 앞에는 차일이 쳐져 있다. 마당 바로 옆에 은산별신제 전수회관이 있다. 전수회관 앞에서 아낙네들이 음식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 먹고 마시는 것이 축제이니까. 내려가 보았다. 임동권교수가 은산별신제를 고증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확정했는지 그 유적비가 있다. 제레를 지내는 것은 아직 멀었다. 12시도 안되었는데 본제는 밤 9시에 한단다. 시간을 잘못 맞추어 왔다. 점심 먹고 오후에 천천히 와야 지루하지 않게 본 행사를 볼 수 있는 것을---
별신당은 가운데 산신을 왼쪽에 복신을 오른쪽에 도침대사를 모셨다. 사진은 찍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고 무얼할까 하다가 별신당 뒷산에 당산성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산성을 돌아보기로 했다.
산성을 돌아보고 내려와서 다시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보았다. 시장으로 나갓던 사람들이 다시 다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온 것이다. 나도 점심을 먹어야겠다. 시장을 돌아도 선뜻 들어가서 먹을 만한 곳이 없다. 어느 해장국집이 있기에 들어 갔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다.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옆에 앉아 은산별신제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올해는 소제라 볼 것이 별로 없고 내년에 대제이기 때문에 대년이 좋다는 것이다. 아차 진짜 잘못왔구나. 운동장에 가보니 줄다리기를 아직도 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내년에 다시 오자 돌아서기로 했다. 이렇게 금년에 한 번 왔다 가는 것만도 얼마나 보탬이 될만한 일인가.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축제와 마을 잔치에 있고 나는 제례에 있다. 제대로 보려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여기서 밤을 지낼 생각을 해야한다. 그래 밤을 지낼 생각을 해야 제대로 볼 것이다. 운동장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별신당 앞에는 아직도 고요하다.
은산별신제 민속마당 무대
은산별신제 전수관
별신당
별신제 유래탑
전수관에서 준비중
은산초등학교 옛 건물에서 축제
옛 은산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지역 주민들이 줄다리기 중
별신당 가는 길의 장승
줄다리기
[2] 은산 당산성 답사
▣ 위치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恩山面) 은산리(恩山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
▣ 문화재 : 충남기념물 제153호(2000년 1월 11일)
▣ 규모 : 내성 180m, 외성 250m
▣ 답사일 : 2017년 4월 1일
▣ 개요
낮은 산자락에 자리한 테뫼식토축 산성이다. 백제부흥운동군과 관련된 은산별신제의 전설이 전해 오는 이 산성은 은산 별신당(別神堂)의 뒷산인 해발 60m의 낮은 산봉을 이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둘레 약 250m인 외성은 성벽이 대부분 이미 개간되어 거의 평지화되어 있고 둘레 약 180m의 내성은 토축 형태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북쪽에서는 내호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데, 그 너비가 5∼6m 정도이다.
경사가 심한 서쪽 산 중턱은 아래로는 '은산천'이라는 자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서남 기슭 암벽 아래에는 별신당의 작은 당우가 있다. 동으로는 과수원으로 개발되어 있다. 남쪽에 커다란 무덤이 있어 외성의 성곽을 훼손했다.
은산 당산성 답사기
별신당에서 오른쪽에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이 길이 산성을 답사하기 위해서 난 길인지 아니면 외성인 듯한 성곽 위에 나 있는 산소에 가느라 난 길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은산 당산성 안내 표지판이 있다. 안내판은 크지 않다. 그냥 안내판에 성의 규모 정도를 적어 놓기는 했어도 성곽의 개념도라든지 성곽의 역사라든지 발굴조사한 내용이라는든지 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아직 역사적으로 고증되거나 발굴조사하지는 않았나 보다.
묘소에 올라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올라가면서 언뜻 이 부분이 외성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묘소 위에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서 별로 잘 가꾸지도 않은 과수밭을 돌아보니 거기가 외성의 성가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서 산으로 올라가니 토성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것이 성벽이다라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있다. 혼자서 성을 한 바퀴돌면서 확인했다. 낮은 산이면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더욱 황량하다. 동벽을 돌고 북벽 위의 성길을 걸으면서보니 북쪽 부분이 잘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서쪽은 은산천이 있고 바로 절벽이다. 서에서 남으로 돌아 내려오는 길에 운동기구들이 잡초 속에 묻혀 있다. 성의 흔적을 알아보기 어려워도 이곳이 매우 중요한 요새로 쓰이던 때가 있었으리라.
동에서 북으로 돌아가는 부분의 성벽
성벽
문이 있던 자리인가?
돌로 쌓은 부분인지 흔적이 남았다.
성안에 운동기구들
외성
돌아오는 길이 씁쓸하다. 오늘은 별로 소득이 없다. 이런 날도 있을 수 있겠지. 그래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여행과 답사 > 忠淸의 山城'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남 청양 두릉윤성豆陵伊城 답사 (0) | 2017.04.29 |
---|---|
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 성흥산성) 답사 (0) | 2017.04.17 |
대전시 동구 고봉산성古鳳山城, 질현성迭峴城, 견두산성犬頭山城 답사 (0) | 2017.03.05 |
충남 홍성 장곡산성 학성산성 태봉산성 답사 -백제 부흥군길- (0) | 2017.02.21 |
홍성 홍주읍성 洪城洪州邑城 답사 (0) | 2017.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