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두바이 동유럽/ 발칸 7국 여행 제 1일, 2일 (두바이 →비엔나)

느림보 이방주 2016. 11. 2. 11:07

두바이 동유럽/발칸 7개국 여행 제 1, 2일 (10월 13, 14일 두바이→비엔나)


▣ 기간 : 2016년 10월 13일부터 10월 21까지 (6박9일 기내 2박)

▣ 여행국가 : 아랍에미레이트,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 여행 도시 : 두바이, 비엔나, 짤스부르크, 블레드, 플리트비체, 쟈그레브, 부다페스트, 브라티슬라바, 프라하

▣ 동행자 : 이효정, 이용원, 이완호, 이방주 부부 8명 포함 여행단 31명 

▣ 여행사: 모두투어(가이드 이지영) 아랍에미레이트 항공

▣ 여행 경로 : 인천(13일)→두바이(14일) → 비엔나,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15일)→쟈그레브(16일)→플리트비체→류블랴나→블래드(17일)→짤스부르크(18일)→할슈타트→짤스감머구트→프라하(19일)→두바이(20일)→인천(21일)


해외여행 중 동유럽 여행은 반드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 동유럽을 다 다녀왔다. 마치 거길 가지 않고 해외여행을 말할 수 없다는 듯 말들 한다. 그러나 나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영국, 프랑스, 이태리를 여행했고, 특히 로마를 봤는데 따로 유럽 유적을 볼 필요가 있을까? 대영 박물과, 루불 박물관을 봤는데 뭘 더 보라는 말인가? 바티칸 성당을 다녀왔는데 성당을 더 봐서 무엇할까? 하물며 북유럽을 여행했는데 유럽 자연 경관이 더 볼께 뭐가 있을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봤는데 유럽 도시 문화에 더 볼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모두 간다 하고 여행시기에 비해 매우 저렴한 상품이 나왔다고 한다. 더구나 아내가 매우 흥미를 느끼고 있다. 내가 할일이 많이 밀려 있어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사실 그냥 기대하지 않고 따라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감동을 하고 더 많은 것을 생각했고 삶의 가치와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잘 다녀 왔다.




2016년 10월 13일

오후 3시 경에  며느리가 손자들을 데리고 왔다. 가방을 다 싸 놓고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젯밤에 아들이 올 때 아이들이 자고 있어서 못 왔노라고 했다. 며느리의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 며느리를 볼 수 있고 규연이와 연재를 보고 떠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며느리는 아이들이 둘이나 되어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오후 6시에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우리 여덟명이 만났다. 모두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 들뜨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청주를 떠나고 고국을 잠시라도 떠난다는 엷은 흥분은 감추기 쉽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모든 업무를 또다시 맡아줄 이효정 대장이 분주하게 차표를 마련하였다.

인천공항에서 모두투어 가이드 이지영씨를 만났다. 이번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31명이라고 했다. 우리는 가이드 안내를 받아 아랍에미레이트 항공 창구에서 짐을 부치고 기다렸다. 항상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13시 55분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 EK323편이다. 나는 아내와 좌석이 떨어져 있으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항공기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보다 내부가 조금 더 편리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내만큼 깨끗하지는 않았다. 여자 승무원은 아랍여성과 한국 여성이 반 정도씩 섞여 있어서 영어를 모르는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기내에서 10시간 정도를 앉아 있으려면 누구나 불편하겠지만 다리가 긴 나는 보통 고통이 아니다. 감을 잘 수도 없고 나가 돌아다닐 수도 없다. 항공기가 비교적 평탄하게 날아가는 듯해도 가끔씩 요동을 칠 때면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참고 잇어야 한다. 영화를 두 편 보고 잠도 두차례 잤다. 기내식이 두번 나왔다. 처음에는 오징어 덮밥이다. 매콤한 고추장을 섞어 마구 비벼 먹었다. 내릴 즈음해서 야채죽이 나왔다. 속이 좋지 않아 죽만 살살 걷어 먹었다. 다 고급 음식이지만 적은량에 열량은 높아 잘 소화되지 않는다. 게다가 저녁에 김밥을 먹은 것인지, 과자를 먹고 물을 많이 마신 탓인지 속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럴 때는 용기를 내어 기내 화장실에 가서 가스를 분출시키면 속이 후련하다.

드디어 깜깜한 두바이 공항에 9시간 30분만에 도착하였다. 후끈한 더위가 맞을 줄 알았는데 썰렁하다. 공항 대합실 전체가 에어컨 바람으로 서늘하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부티가 났다.


아랍에미레이트

 

아랍 토후국 연방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이고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이다

중앙정부는 공화정이며 대통령은 토후국 군주 중 선출된다. 각 토후국은 자치권을 가진다.

아랍에미리트 연방 영어: United Arab Emirates, 문화어: 아랍 추장국)은 아랍 토후국 연방이라고도 부르며, 약칭은 UAE이다.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 남동부에 페르시아 만을 끼고 있는 나라로,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움알쿠와인, 라스알카이마, 푸자이라 등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과 국경을 접한다. 수도는 아부다비로서, 이 나라의 정치, 산업, 문화의 중심지이다.[1] 국내 최대 도시는 두바이이다.

1971년 전에 아랍에미리트는 19세기에 영국과 여러 아랍 셰이흐의 협정 때문에 협정 국가(Trucial States) 또는 오만 협정국(Trucial Oman)으로 알려져 있었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을 '해적 해안'이라고 이르기도 하였다.

아랍에미리트의 정치 체제는 1971년 독립 당시의 아랍에미리트 헌법(Constitution of the United Arab Emirates)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여러 정치 조직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아랍어, 영어가 공용어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에서 6번째로 규모가 큰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에서 경제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이다. 현재 환율로 GDP36번째 규모이며,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이 54,607 달러이다. 이 나라는 1인당 구매력 40위이며, 인간 개발 지수도 아시아 대륙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전 세계 기준으로 31위이다.[5] 국제통화기금에서는 아랍에미리트를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나라는 페르시아 만 아랍 국가 협력 회의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랍 연맹의 회원국이며, 국제 연합, 이슬람 회의 기구, 석유 수출국 기구, 세계 무역 기구에도 가입하였다.



두바이

인구 2,106,177(2013) 면적 4,114 대륙 중동 국가 아랍 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영토는 2번째로 크다. 수도인 두바이 시는 아랍에미리트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이다. 남쪽과 서쪽은 아부다비, 동쪽과 동북쪽은 샤르자 같은 토후국들에 에워싸여 있다.

1833년 알부팔라사족이 아부다비를 떠나 두바이로 옮겨와서 두바이 시를 차지했다. 그때부터 두바이는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1892년 단독협정에 따라 영국의 통제를 받았으나 1971년 영국이 페르시아 만을 떠나자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를 세우는 데 주요일원으로 참여했다.

20세기초 두바이 시는 중요한 항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1966년 파트 연안 유전이 두바이 시 바로 동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페르시아 만에서 발견되었다. 석유자원과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두바이는 아주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며 페르시아 만에 약 72km 정도 접해 있다. 수도인 두바이 시()는 아랍에미리트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로 두바이 토후국 북동부의 작은 만에 자리잡고 있다. 90%가 훨씬 넘는 주민이 수도인 두바이와 여기서 가까운 주택지구에 살고 있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아부다비, 동쪽과 동북쪽으로는 샤르자 같은 토후국들에 에워싸여 있다. 두바이 본토에서 최소한 40km 이상 떨어져 있는 와디하타의 하자라인도 두바이 토후국에 속한다.

두바이 시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때는 1799년부터로 알려져 있다.

그때 미성년이었던 두바이의 셰이크(수장)는 영국이 제안한 일반평화조약을 받아들여 협정을 맺었지만(1820), 표면적으로는 계속 아부다비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833년 바니야스족 계통의 씨족으로, 주로 진주를 채취하며 살던 알부팔라사족이 아부다비를 떠나 두바이로 옮겨와서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이 도시를 차지했다. 그때부터 두바이는 강력한 국가가 되었으나 한편으로 옛 지배자들과 자주 불화를 겪게 되었다.

카와심족 해적이 두바이를 손에 넣으려 했으나, 두바이의 지배자는 이웃한 수장국들끼리 서로 싸움을 붙여 계속 독립을 유지했다. 1835년 원래 트루셜스테이츠에 속했던 나머지 토후국들과 함께 영국과 해상휴전협정을 맺었으며 1853년 영구 해상휴전협정을 맺게 되었다. 1892년 맺은 단독협정에 따라 영국의 통제를 받았으나 영국이 페르시아 만을 떠나자(1971),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를 세우는 데 주요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이웃지역과 달리 두바이의 수장들은 옛날부터 무역과 상업을 권장해왔기 때문에 20세기초 두바이 시는 중요한 항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많은 외국 상인(주로 인도인)이 두바이 시에 살게 되었으며 1930년대쯤에는 진주 수출로도 이름을 떨쳤다. 최근에는 만 건너편에 있는 쌍둥이 도시로, 상업 중심지이기도 한 다이라와 함께 서구 공산품이 들어오는 주요항구로 큰 몫을 하고 있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 대부분의 은행과 보험회사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66년 걸프 루피화()가 평가절하되자, 새로이 '카타르/두바이 리얄'을 만들어 이제는 독립국이 된 카타르와 통화단위를 통일했다가, 1973년 나머지 토후국들과 함께 전국 통화인 '디르함'을 채택해서 쓰기 시작했다.

()의 거래가 자유롭기 때문에 금 수입을 제한하는 인도에 금괴를 밀수출하는 일이 흔히 있다. 여러 토후국들이 영국 보호령(~1971)으로 남아 있던 1954, 영국은 트루셜스테이츠 전체를 관할하던 정치기구를 샤르자 시()에서 두바이 시로 옮겼다. 1961~71년까지 아부다비 지역만을 관할하는 기관이 따로 있었다.

1966년 파트(파테 또는 파타) 연안 유전이 두바이 시 바로 동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페르시아 만에서 발견되었다.

두바이가 이미 유전 채유권을 내준 수역에 있던 이 유전에는 1970년대 들어 50만 배럴씩 석유를 저장할 수 있는 20층짜리 해저 탱크 3개가 설치되었다. 거꾸로 세워놓은 샴페인 잔 모양을 하고 있는 이 탱크들은 두바이의 '세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석유 매장량(15억 배럴)은 이웃한 아부다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지만, 석유자원과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두바이는 아주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알루미늄 제련소와 부수 천연 가스 분류소가 1970년대 후반 두바이 시 가까이에 생겼다. 이 도시는 전기시설, 현대식 호텔, 통신소, 병원, 국제공항을 갖추는 등 완전히 현대식으로 변했다. 1972년 새로운 심해항구인 라시드 항(토후 이름을 따서 지었음)이 생겼으며 1979년에는 초대형 유조선용 건선거(乾船渠)가 완공되었다. 두바이 시는 라스알하이마 시와 아부다비 시까지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10월 14일)

날이 새지 않아 공항에서 한 시간 가량 머물다가 가이드를 만나 버스로 이동하였다.버스로 이동하면서 친구 모친  부음을 들었다. 안타깝다. 형제가 없으며 환중에 있는 친구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여행이 다 뭐가 싶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마구 돌아다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두바이 민속 마을인 바스타키야이다. 그냥 옛마을인데 사람들이 사는지 우리에겐 큰 흥미가 없다.

해가 솟아오르자 볕이 따갑기 시작했다. 다음에 수상 택시 체험을 한다며 약 4분가량 배를 타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한 눈에 보았다. 인공섬인 팜 주메리이라를 돌아보았다.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시설이다. 섬이 야자수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섬을 인공으로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을 것이다. 별로 특이할 것은 없으나 덥고 돈이 많은 나라라는 건 그냥 드러나 보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가 넘는데 그런 소득이 우리처럼 열심히 일을 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석유를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것이라 하니 부럽기도 했다. 모노레일을 탔는데 기차가 높은 곳으로 달려서 야자수 모양의 팜 주메이라 전경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인천공항 출발 게이트

우리가 타고 갈 항공기 EK322

두바이 민속마을 바스타키야

신 구 시가지의 조화

구 시가지에서

L자 모양으로 흐르는 두바이 크릭의 수상택시

수상택시에서 본 두바이크릭 건너의 시가지

시가지를 배경으로

수상택시 타기 전

쉐이크 모하메드 왕궁 앞 광장에서

멀리 쉐이크모하메드 왕궁의 모습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다.

걸프만의 해변에서 멀리 세계 최고급 호텔 버즈알아랍 호텔이 보인다.


두바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인 건물로, 호텔 투숙객이나 뷔페 예약자만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총 38개 층과 높이 321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이며 순금으로 내부를 인테리어해서 세계 유일 7성급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로얄 스위트룸은 하루 숙박요금이 68,687AED(한화 약 20,300,000원)으로 2012년도 CNN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위트룸 12위에 뽑혔다. 매 층 마다 개인 리셉션 데스크와 버틀러(Butler)가 있어 투숙객에게 불편함 없이 왕족처럼 머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호텔의 입장이다. 투숙객은 28층의 헬리콥터 이 착륙지를 이용할 수 있는데 공항에서 올 경우에는 10,000AED(편도, 1명), 시내투어를 할 경우에는 13,000AED(최대4명)이며 투숙객이 아닌 경우에는 18,000AED(최대4명)이다 

인공섬 팜 쥬메이라에 조성된 휴양지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

5.5km의 팜 주메이라는 3개의 인공섬 가운데 가장 먼저 개발을 시작했으며 최고급 주택과 호텔이 들어섰다. 고급 빌라가 약 2000여채가 된다고 한다. 단 3주만에 분양이 완료되었고 데이비드 베컴과 마돈나 등 유명 인사들이 빌라를 구입해 화제가 되었다. 육지와 연결된 부분이 좌우 각각 8개의 잎과 연결되어 있으며 외곽은 왕관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으로 가려면 해저터널을 이용해야 한다. 가로 세로 각각 5km 면적에 야자수 모양 그대로를 살리기 위해 섬과 섬 사이를 다리로 연결하지 않고 해저터널을 뚫었다. 아틀란티스 더 팜 호텔(Atlantis The Palm Hotel)과 주메이라 자빌 사라이 호텔(Jumeirah Zabeel Saray Hotel)이 이곳에 있다.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

                                    

세계 최고의 빌딩

부르즈칼리파는 사막의 꽃과 모스크의 돔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고 한다헬기를 타고 위에서 내려보면 건물이 꽃잎 모양처럼 보인다.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구조학적으로 기능적인 모양과 심미적 고려를 한 결과라고 한다.  1∼39층은 호텔, 40∼108층은 고급 아파트, 109층 이상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고 세계최고 162층 (828m)

 중동 최대 부동산 개발기업 에마르가 발주하고 삼성물산의 최첨단 공법이 어우러진 부르즈 칼리파! 인류의 도전이라 불리는 '부르즈 칼리파'는 한국 건설의 기술력을 세계에 입증하였다.

부르즈칼리파 앞 분수쇼를 바라보며


아쿠아랜드 수족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국가는 무엇으로 운영되고 질서가 유지되는가? 한참 전에 이목을 끌었던 영와 <웰컴투 동막동>에서 동막골의 촌장 어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어찌 이렇게 마을의 질서가 유지되는가 하는 질문에 촌장은 강원도 사투리로 '잘 미기야지요.'라고 단순하게 대답했다. 깊은 의미를 지닌 철학적 언어는 단순하다는 말이 있다. 잘 먹이는 것은 바로 경제 원리이다. 아마도 그걸 모르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두바이를 포합하는 아랍토후국 연방은 뜨거운 상하의 나라 그러면서도 사막에  있다. 사막의 날씨는 대단하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바닷가에 갔더니 모래바람이 날리고 볕이 숨막힐 듯하다. 가이드가 거짓말하는지는 몰라도 한여름에는 50도 가까이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여야의 싸움도 없고 대통령이 되려고 아귀다툼을 하지도 않는다. 아니 우리 조선시대처럼 국왕이 전권을 가지고 나라를 통치한다. 국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난리를 치고 기회를 엿보는 야당도 없다. 세습 국왕의 왕자들이 서로 왕을 하려고 다투지도 않는다고 한다. 정치만 보면 천국이다. 아니 날씨와 자연조건을 빼면 천국이다. 돈의 천국- 하루 두시간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 제 민족에게는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 주고 이민족은 배척하는 나라이다. 그렇게 돈의 천국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타고난 복을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신은 석유를 주고 왕은 먹을 것을 준다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호화롭게 산다. 그렇게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며 산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두바이 거지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두바이의 어떤 거지가 한 달에 8400만원을 벌었다고 하고 어떤 거지는 하루에 240만원을 구걸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일자리 없는 청년들은 두바이로 가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인터넷을 타고 퍼져서 청년 일자리를 걱정하다가 심중을 농으로 내 뱉은 것인데 생각해 보면 대통령이 할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대통령을 존경하던 사람들도 자기 아들을 두바이로 보내 거지가 되게 한다면 그 존경심이 반감될 것이다. 이렇게 경제가 모든 가치의 중심에 있지만 생각해 보면 돈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제를 위해서 공부를 하든 지적 수준을 위해서 공부를 하든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한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는데 굳이 공부를 할 필요가 없으니 국민들의 지식 수준은 당연히 낮을 것이다. 그래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어도 지적 자유의 행복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공부에 얽매어 돈에 짓눌려 성공이라는 비젼에 찌들려 자유를 누리지 못할 수는 있어도 지적 자유 사고의 자유는 누리고 산다. 어느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알 수는 없다. 아무래도 나는 우리 사는 모습이 자유이고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나라 정도 살면서 정치 수준만 좀 향상 시켜서 빈부의 차이를 없애고 서민들의 생계 복지 같은 것을 해결한다면 이것이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아침 식사로 만나식당이라는 한국인 경영식당에서 먹은 갈비탕맛은 우리동네 갈비탕집만 어림도 없다. 이 갈비탕집에 아랍인들도 오는지 몰라도 그들은 그런 음식을 먹고 산다. 세계 최고의 쇼핑몰이라는데 고가의 생활필수품들이 즐비하고 드나드는 아랍인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풍속에 맞는 검은 옷이나 흰 옷으로 일관되게 두르고 다닌다. 우리 만큼의 고급진 패션이나 개성도 없다. 거리의 상가는 모두 소비재 뿐이다. 지혜를 일궈낼 상품은 없다. 우리 아이들이 블럭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 아랍 아이들은 무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수족관은 외국인들을 위해서 만들었는지 아랍인들은 관심도 없다. 우리 제주의 아쿠아리움에 비하면 수준은 아직 멀었다.  쇼핑몰에서 하는 말들이 중국인들은 많이 사고 한국인은 물어보기만 하고 사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자기네 상품보다 좋고 주머니는 두둑하니 살 것이고 한국인은 한국에 가면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살 수  있으니 물어 보고 안 살 것이다.  


모노레일을 탑승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인공섬 팜 쥬메이라를 조망해도 부러움은 없다. 화화빌라 화화호텔 휴양시설등이 들어 앉아 있다. 야자수 모양의 섬과 섬사이를 잇기 위해 모두 해저로 터널을 뚫었다고 한다. 다만 바닷물이 아주 맑은 것은 부러웠고 이러한 인공섬을 만들 수 있는 재력만은 부러웠다. 버즈칼리파, 수크 알 바하라 어드레스 호텔 앞 인공호수에서 1시 30분에 분수쇼가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몹시 더웠다. 그래도 기다렸다가 보았다. 상당히 높이 올라가는데 한 5분도 못 되어 끝이 난다.


점심은 오후 2시에 공항에서 생선구이를 먹었다.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밀 쿠폰으로 제법 고급스러운 음식이 나왔다. 생선구이도 맛있고 감자칩도 좋았다. 콜라를 마시니 속이 후련하다. 충분한 점심이 되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비엔나까지 6시간 걸린다고 한다. 6시간 비행에 저녁은 기내식이다. 바비큐치킨이다. 구미에 당기지 않는 향이 있어서 함께 나온 빵과 아이슽크림만 먹었다. 지루한 공중 이동이 또 시작된다. 두비이에서는 돈만 보고 간다. 문화도 있는지 모르겠다.


현지시간 오후 9시 50분에 비엔나에 도착했다. 공항 분위기는 두바이랑은 달랐다. 두바이 공항은 돈이 보이는데 비엔나 공항은 예술이 보였다. 문화의 중심지 음악의 도시답게 멋진 음악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 점의 간판에도 악보로 장식되어 있다. 모짜르트, 베토벤, 하이든, 슈베르트의 생가가 있고 30여개의 박물관이 있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입국 수속을 마친 후 가이드를 따라 공항 근처의 Hotel Arion에 들었다.  호텔은 아주 작았다. 유럽의 호텔은 이렇게 작고 소박하다. 물론 고급스런 호텔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의 성격상 우리는 3성급이나 4성급의 호텔에 들기로 했다. 그러나 작지만 깔끔했다. 호화판 시설은 아니라도 아늑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물이 따뜻하고 침구가 깨끗해서 모처럼 밀린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