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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북유럽 일주 11 - 제 11일차 쌍트페테르부르크

느림보 이방주 2015. 8. 1. 17:21

러시아 북유럽 일주 11 - 제 11일차(7월 21일)  쌍트페테르부르크

 

 

7시에 기상을 해야 하는데 모스코바 시간에 맞추어 놓았으니 6시에 일어났다. 모스코바와 이곳 쌍트페테르브르그와는 동서로 170km, 남북으로 700km 떨어져 있어서 1시간 시차가 있다고 하니 신기하다. 한 나라에서 제1의 도시와 제2의 도시가 1시간 시차가 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동경과 같은 시간을 쓰는지 모르겠다. 아침 식사는 매우 간단히 했다. 9시에 출발했다. 페테르부르크의 현지 가이드가 나왔다. 말씨와 제스쳐가 작위적이라 이상했다. 자신도 그것을 알면서 그것으로 인상에 남게 하려는 것 같았다. 나이도 꽤 들어 보였다.

 

상트페테르브르그는 전에 레닌그라드라고 불리는 도시이다. 1703년 표트르대제에 의해서 도시건설이 이루어진 이래 200년간 로마로프 왕조의 수도였었다. 건설 당시 상당히 계획된 도시이기 때문이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고대 도시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 중심부나 경주 같은 도시이다. 그러니 러시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고 푸쉬긴은 이곳을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고 할 만큼 유럽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보인다. 20세기 초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의 무대가 되기도 했지만 소련 연방의 수도 모스코바로 옮겨갈 때까지 자연, 역사,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밖에서 볼 때는 강대국이지만 안에 들어와 보니 중국이나 베트남보다도 뒤떨어지는 나라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이 개방을 표방한 후 급속도로 경제가 성장해 가는데 비해 러시아는 속도를 낼 줄 모르는 나라이다. 문화 수준도 형편없이 뒤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이 밥을 굶으면서도 무직컬을 관람하고 발레 공연을 감상한다고 하지만 생활 문화는 형편없다. 정치도 푸틴이란 인물은 아직도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와 다름 없고 스탈린과 같은 정치적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인다.

 

먼저 찾아간 곳은 여름 궁전이었다. 여름 궁전은 표트르 대제가 서양 문물을 흉내내어 만들었다고 한다. 분수공원을 내려다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그렇다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정원도 분수도 흉내내고 건물은 베르사유의 축소판이다. 정원은 나폴레옹의 사냥터라는 베르사유 정원과 비슷하다. 다만 그만큼 넓지는 못하다. 그런데 이 때 왜 요즘의 또다른 철없는 폭군이 생각날까?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위락시설를 흉내내는 철부지 말이다.

나폴레옹은 베르사유 정원의 구석구석에 별궁을 두고 후궁을 거느렸다고 하는데 표트르대제도 그랬을까? 분수가 터지자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를 올렸지만 나는 감동이 없다. 모방하는 문화는 다 그런 것이다.

 

여름궁전의 모습

여름궁전의 정원

여름궁전의 분수

 

바르사유를 닮은 여름궁전과 분수가 터진 정원

바르사유를 닮은 여름궁전과 금 조각품들

빅톨 위고와 차이콥스키, 푸쉬긴의 예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뒤를 잇지 못하면 애석하기만 하다. 광개토왕이나 세종대왕의 업적이 아무리 훌륭해도 오늘날과 같은 저질 정치로 계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트르대제가 수백 명 정치인을 처형하고 천도한 그의 수도가 화려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철학적 바탕으로 주추를 놓지 않으면 허수아비 문화가 된다. 외양만 프랑스를 흉내내고 영국을 흉내낸다고 사상이 발달할 수 있겠는가?

 

이 도시는 삶은 계란과 같은 도시 구조라고 설명했다. 내부 노른자 부분은 제정 러시아 시대 즉 표트르대제 때의 문화가 남아 있고, 흰자 부분은 러시아 혁명 이루 공산주의 시대의 문화가 남아 있고, 껍질부분은 소련을 포기한 현대 러시아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정말로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고색창연하다.

 

시내 관광을 하면서 수많은 박물관과 성당을 돌아 보았다. 길과 길 사이의 운하로 봐서 마차밖에 18세기 초의 계획도시임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독재로 이루어냈지만 표트로 대제의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신기한 것은 이곳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두 차례나 일어나고 레닌이 또 다시 독재를 하고 모스코바로 복귀하면서도 이러한 문화 유산을 그대로 둔 것이다.  소비에트 시대에 장막 속에 있던 문화가 오늘날 세계의 관심을 받고  세계인은 불러 모으고 세계의 각종 화폐를 긁어 모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도 루불화보다는 유로화를 선호한다. 불쌍한 경제이다.

 

겨울궁전으로 가는 길

거리의 모습

운하가 있는 고대 도시의 모습

 

신라 통일 이후 백제 문화가 있던 부여나 공주를 파괴시키지 않고 중국 대륙까지 지배했던 대륙백제의 역사를 왜곡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부여나 공주가 세계의 돈을 끌어 모으고 있을 것이다. 고려가 통일되고 경주의 문화 유물의 보존에 힘썼다면 아니 부흥에 힘섰다면 경주는 또 어떨 것인가? 일제가 청주 읍성을 허물지 않았다면 청주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들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점심은 러시아의 현지식으로 먹었다. 맛없는 빵, 빨강색 비트수프를 먹으며 이런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하는 러시아인들이 측은했다. 점심을 급히 먹고 겨울 궁전(에르미라쥐 박물관)에 갔다. 베르사유나 루블박물관 못지않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공개된 것이 얼마되지 않으니 세계의 인파가 모여든다.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람브란트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걸려 있으나 수박 겉 핥기식으로 훑고 지나갔다. 단체 관광은 1시간 30분 만에 끝내야 하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감명깊은 작품도 몇 작품 있었다. 렘브란트의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며' 같은 작품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라는 성화는 바티칸에서 본 것 같은데 이 그림은 조금 더 사실적이고 감명 깊었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도 모두 경건해질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대영박물관 못지않은 약탈 문화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현지식

 

성이삭 성당은 외부만 보았다. 해군성 본부, 넵스키대로, 바실리 섬, 피의 성당 등을 관광했다. 현지 가이드가 욕심이 많아 한 군데를 세밀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훑고 지나가면서도 여러 군데를 들렀다.  성이삭 성당은 19세기 초 40년간이나 걸려서 완성한 성당이라고 한다. 돔의 높이가 엄청나서 가까운데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사진찍기 좋은 장소를 찾아 촬영할 수 있도록해 주었다. 돔의 높이가 100m가 넘고, 내부의 길이도 111m나 되어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내부에는 예술적인 성화가 있다고 하나 들어가 보지 못했다. 정말 겉만 핥은 것이다. 네프스키 대로에서는 수많은 운하와 대부부이 문화 유산이라는 건물들을 차안에서 보았다.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어 언제 시간 내서 다시 한 번 올 수 있다면 아주 천천히 한 일주일 머물며 돌아보고 싶은 도시이다.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며)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에르미타쥐 궁립 박물관 내부

네바강

네바강의 모습-강건너 대학 건물들

성 이삭 성당

성 이삭 성당이 보이는 정원에서

페트로 대제 동상

날이 어둡기 전에 우리는 공항으로 갔다. 출국수속이 또 복잡하다. 심지어 허리끈까지 풀으라고 한다. 나는 허리끈이 붙어 있는 바지를 입었는데 굳이 끈을 풀으라고 여직원이 소리를 지른다. 이런 바지 보지도 못했냐고 나도 소리를 쳤다. 다른 러시아 여직원이 그냥 통과하라해서 통과했다.

현지시간 7월 21일 23:00시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930편에 오르니 정말 우리나라에 돌아간 것 만큼이나 마음이 놓인다. 이번에는 좌석도 창측으로 베정 받았다. 몇 차례 잠을 자고 일어나고 주차례 기내식을 먹고 영화를 한 편 보는 동안 기내 모니터에 있는 지도에 항공기가 인천공항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노을 지는 산 페떼르부르크

노을 지는 산 페떼르부르크 공항

 

우리나라 시간 7월 22일 13시 30분 인천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은 전자수속으로 하니 순간에 다 이루어지고 짐 찾는 곳에 가보니 벌써 가방이 나온다. 조금 기다리니 내 가방이 나온다. 참으로 신기하다. 어떻게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에 싣고 온 가방이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을까? 

 

전세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물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인천은 32도, 후끈 조국이 뜨거운 가슴으로 12일간이나 외도한 나를 받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