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지꽃도 꽃이다
2016년 6월 23일
미호천에서
미호천 자전거 길을 달리다가 처음 보는 꽃을 발견했다. 첫날은 그냥 지나쳤다가 다음날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살펴보았다.
색깔이 자주색으로 꼭 가지꽃 같았다. 가지 나무만큼 키가 크지 않은 작은 꽃나무가 무더기로 어우러져 꽃을 피웠다. 대궁은 가지와 비슷한데 삐쭉삐쭉 가시가 나 있었다. 잎은 가지 잎과 비슷하면서도 갈라짐이 많고 잎 끝이 뾰족뾰족했다. 꽃도 가지꽃과 거의 비슷하게 닮았다. 연보라색 꽃잎은 갈라진 듯 갈라지지 않은 통꽃이다. 홍합조개 모양으로 벌어진 노란 암술 사이를 비집고 수술이 초록색 대가리를 내밀었다. 가지마다 뾰족한 가시가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지 나무를 닮긴 했지만 어쩐지 속임수 같고 연보랏빛은 순진함을 유혹하는 것 같아 정이 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보니 도깨비가지꽃이란다. 우리나라 토종이 아니라 북아메리카에서 넘어온 생태교란식물이라고 한다. 심지어 가을 10월경에 열리는 열매는 독성이 있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니 도깨비라는 이름이 그럴싸하다. 열매는 보지 못했지만 그림을 보니 꼭 감자 열매 같았다.
순간에 그 꽃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철 곤충의 세계를 어지럽힌다는 중국꽃매미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름도 흉측한 도깨비가지꽃이 어떤 경로로 아름다운 미호천까지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무더기로 피어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수크령이나 방동사니처럼 일부러 씨를 뿌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잠시 관리하는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바꾸어 생각하면 스스로 독을 품고 싶은 생명이 어디 있을까? 우리도 살다보면 주변이 독을 만들어주는 것이지 스스로 독을 지니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의 환경에 독이 있으면 더 독한 독을 지니게 되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도둑놈’도 되고 ‘개놈’도 된다.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를 지니고 싶지 않은 꽃이 어디 있을까?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자리를 골라 살 수 없는 들풀은 제가 사는 곳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도깨비바늘꽃처럼 '도깨비'도 되고 도둑놈의갈고리꽃처럼 '도둑놈'도 된다. 제 소망과 다르게 도깨비가 되어버린 도깨비가지꽃이 안쓰럽다. 게다가 도깨비가지꽃은 같은 외래식물인 가시박처럼 하천 방천을 뒤덮으며 다른 식물의 삶을 방해하진 않는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나를 중심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지금까지 나로부터 ‘개놈’으로 불린 사람도 그만의 철학을 지닌 사람이다. 다만 그의 철학을 내가 인정할 수 없을 뿐이다. 내가 그를 ‘개’라 부르면 그도 나를 ‘개’라 부를 것이다. 도깨비가지꽃도 꽃이다. 지금까지 보이지 말았으면 했던 그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다.
(201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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