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은 하루에 한 번씩 해탈한다
2016년7월19일
주중리에서
달맞이꽃은 하루에 한 번씩 해탈한다.
새벽에 버릇처럼 주중리에 갔다. 백화산에 아침안개가 가득하다. 오늘은 꼭 너를 보리라. 논둑이나 방천防川에 온통 달맞이꽃만 보였다. 새벽에 보이는 세상이 온통 하얗다. 다른 꽃들은 해를 기다려 몸을 열 생각이 없는데 달맞이꽃은 아직도 이들이들하다. 달맞이꽃은 온몸을 활짝 열고 달을 배웅하고 있었다. 아니 달이 이미 가버렸는데도 노란 꽃잎에 생기가 넘친다.
유월의 보름달을 맞는 지난밤 달맞이꽃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설렘이 가시지 않았는지 대궁은 아직도 꼿꼿하고 뾰족한 잎사귀들도 서슬이 퍼렇다. 한낮 삐들삐들했다가 밤이 되면 이렇게 이들이들해지는 달맞이꽃이 기다리는 이는 달밖에 또 무엇이 있으랴. 그리던 달을 만나 밤새도록 나눈 정분에 이슬까지 흥건하다.
누군가를 사랑하여 기다리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달맞이꽃에겐 달을 기다리는 것만큼 행복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달이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 달만을 사랑한다 하여 저주한다 해도 그는 그것이 행복이었을 것이다. 달맞이꽃이 노랗게 피어나는 것은 ‘사랑한다’ 말도 못하고 다소곳이 혼자 피어나도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도 정말 혼자 하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고 여길까? 그래 맞아, 남이 보기에는 혼자 하는 사랑이 더 아름답지. 참사랑은 혼자하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주중리 들판을 한 바퀴 돌았다. 해는 이미 백화산을 넘어 주중리 너른 들판에 가득 볕으로 내려앉았다. 호박꽃, 참깨꽃, 도라지꽃이 태양을 향해서 활짝 피어났다. 방천이나 밭두둑에는 생물들이 오늘의 일을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에 달맞이꽃을 다시 가 보았다. 노란 꽃잎이 기운을 잃었다. 지난밤 보름달과 나눈 설레는 정분도 이제 시나브로 사위기 시작한다. 오늘밤은 유월의 달이 이울기 시작하는 기망旣望이다. 기망의 달이라도 기다려 다시 생기를 얻으리라. 날마다 이우는 달을 바라보며 날마다 조금씩 더 애달파질 수밖에 없는 달의 속내를 안쓰러워하며 발길을 돌린다.
달맞이꽃은 하루 한 번씩 해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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