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유럽 일주 6 - 제 6일차(7월 16일) 플롬열차,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그리그 생가, 브뤼겔 거리)
새벽에 2시쯤 청주 비존재 이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보니 문자를 여러번 보냈다. 받으면 요금이 많이 나오기에 문자만 봤다. 모임을 알리는 내용이다. 참석하겠다고 했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번에는 3시쯤 해서 고종형님한테서 전화다. 날씨도 몹씨 더운데 "동생 점심이나 함께하자."였다. 감사하지만 너무 멀어요. 외국 여행을 하고 있는 중에 형제들로부터 받는 전화는 웬지 민망하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들킨 것 같은 기분이다. 임민정씨 말에 의하면 외국 여행 중에 친구를 만나면 반가운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쁘다고 한다. 이 좋은 곳에 나만 와야 하는데 너도 왔냐? 하는 심정이라니 정말 아픈 곳을 꼭 집어 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형제들에게는 민망할까? 이 좋은 곳에 나만 온 것이 민망한 것이다. 형님은 다행히 "잘 했어 잘 했어" 하고 말해 주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와이파이를 당겨 놓고 카톡을 보았다. 손자 규연이가 제 누이 연재를 안아 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며느리가 찍어서 보냈다. 보고 싶은 놈들, 며느리가 고맙다. 반갑다. 충북수필문학회 카페, 내 블로그 <느림보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돌아다니며 고국을 둘러 보았다. 메르스는 끝나가는가 보다. 이렇게 멀리서도 나라 안 소식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다시 뒹굴거리다가 잠에 빠졌는데 또 갈매기가 울어댄다. 밖은 훤하다. 아니 2시부터 훤했다. 11시에 노을이 지고 2시에 여명이 시작되는 나라, 이들의 정서적 고통을 이해할 만하다.
지난밤을 지낸 호텔 주변
오늘의 여정을 살핀다. 오늘은 플롬 열차가 기대된다. 비록 거금이 들어가지만 이만한 경비를 내고 탔던 알프스의 융푸라오요흐의 경험을 생각하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또 노르웨이 제 2의 도시로 가서 그리그 생가를 들어간다고 한다. 이것은 선택관광인데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행이 모두 한다 해서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다음에 베르겐의 유네스코 문화제인 브뤼겐 거리를 돌아보는 거리투어를 한다. 애초에 선택 관광을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계약을 했는데 플롬 열차만은 하는 것이 좋겠다고 38명 회원이 합의를 했다. 그런데 중간에 저렴하지만 두 군데를 회원들이 모두 요구해서 함께 하기로 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페테르부르그의 네바강은 부결되었다.
나르달 터널을 자동차 전용 터널로는 세계 최장이라고 한다. 베르겐과 오슬로를 연결하는 터널로 1995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2000년 11월 21일 개통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는 노르웨이 지도상으로는 멀지 않은 수도에서 제2의 도시를 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는지 알 만하다. 특히 이 도시는 수력발전으로 돈이 많은 아우란드시에서 공사비 전액을 부담하여 통행료를 받지 않게 되었다니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 길이 24.5km이다. 터널의 내부는 우리나라 터널만큼 말끔하게 공사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암반이 워낙 견고하고 운전자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변화감을 준 것이라 한다. 심리학자들의 권유로 6km마다 푸른 조명으로 바깥으로 나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 중간에 대형 트럭까지 회전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 22분이 소요되었다. 이곳의 터널들은 중간에 유턴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터널로 나갈 수 있는 교차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말하자면 터널 안의 교차로가 있는 것이다. 다리와 터널 공사로는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을 약간 물먹이는 것 같아 기분이 스산하다.
터널 내부의 가끔씩 이런 조명으로 운전자의 지루함을 달랜다.
플롬 열차는 오전 8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7시 54분에 플렛폼을 통과하여 탑승했다.플롬 열차에서 본 경관도 요정의 길 못지 않다. 역시 폭포와 산과 물이다. 열차는 빨리 달리다가도 경치가 좋은 곳이 나오면 속도를 줄여 사진을 찍게 해 주었다. 이 열차는 원래는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운행하면서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교통 편리를 위한 것이었으나 최근에는 관광 열차로 변모한 것이라 한다. 약 20km 정도에 다리와 터널이 많다. 열차가 소리를 지르며 올라가다가 효스 폭포라는데서 정차했다. 안내 방송에서 약 5분간 정차 한다고 한다. 모두 내렸다. 폭포에 쏟아져 내리는 물은 거대하고 급하다. 물안개에 금방 옷이 다 젖었다.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이다.
몇 분을 기다려 9시 50분 발 베르겐행 열차를 탔다. 열차는 힘도 들이지 않고 오지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빙하가 할퀴고 간 자국을 본다. 정상에 샇인 눈이 흘러내려 만년 빙하를 이루었고 그것이 녹아 골짜기로 흘러내려 폭포가 되고 모여서 호수가 되었다. 산정에는 요정의 손톱자국처럼 눈이 쌓여 있다.
11시쯤 프롬 열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내린 보스역은 호수를 끼고 있었다. 도시가 깔끔하다. 그렇게 깔끔한 것은 2차대전때 포격으로 모두 파괴되고 새로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이란다. 도시 주변의 산의 봉우리마다 눈이 하얗다.
베르겐 시로 달려 간다. 기차를 타고 산을 내려오는 동안 작은 나무에서 점점 큰 나무들을 본다. 나무도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것 같지만 더 좋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플롬열차를 타기 위하여
플롬열차 매표소 앞에서 백만사 모두
플롬열차 역 주변의 모습
플롬열차를 타고 가며(폭포)
플롬열차를 타고 가며(초원)
플롬열차를 타고 가며(폭포)
플롬열차를 타고 가며(효스 폭포)
플롬열차를 타고 가며(산과 히테)
플롬열차 도착지에서
플롬열차를 타고 산을 내려오면서(빙원)
점심을 먹고 그리그 생가로 가기로 했다. 12시경 베르겐 입구의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밥은 길쭉길쭉한 쌀이지만 찰기가 약간 있었다. 배추된장국이 나왔는데 시원하다. 얼갈이 배추를 독일에서 수입해다가 된당국을 끓여 판다니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짐작할 만하다. 콩자반도 있고 배추 김치도 있다. 우리가 가져간 무짱아치, 고추장, 김도 꺼내 놓고 먹었다.
그리그 생가에 갔다. 그리그는 우리에게 좀 낯설기는 하지만 학교 때 솔베이지의 노래가 그리그의 작곡이라 해서 기억해 냈다. 그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만 생가만은 참으로 좋은 곳이다. 사촌 누이인 리나와 결혼하여 평생을 사랑하며 살았다는 일생도 특이하다. 정원이 넓고 꽃이 많다. 멀리 섬이 보이고 아름다운 바다가 보인다. 베르겐피요르드라고 한다. 그가 사용하던 피아노, 맥주잔, 의자를 보았다. 그의 작곡 작업실이 바닷가에 있었다. 그 작은 작업실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그 생가 원경
그리그 생가에서 보이는 베르겐피요르드
그리그 생가에서
꽃이 만발한 그리그 생가
그리그 생가 기념 시설
그리그 생가 창작실
그리그의 동상 앞에서 (실제 키라고 함)
그리그 생가에서 나와서 브뤼겔 거리에 갔다. 주식회사의 시초가 된 한자 동맹을 탄생시킨 도시라고 한다.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란 표지판을 보며 신기하게 사진을 찍는다. 그런 표지는 우리 아버지(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제례 예능 보유 인간문화재) 묘소의 추모비에도 있다. 시장과 골목 여기 저기를 둘러 보았다. 말하자면 옛집 거리는 우리 나라 가회동 북촌마을 같은 분위기이다. 시장은 주로 먹거리 시장이었다. 생소한 음식들이라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사실 북촌한옥마을이 더 범위가 넓고 더 오래된 건물이며 더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브뤼겔 거리
브뤼겔 거리에서
브뤼겔 거리 골목안
브뤼겔 거리 골목
브뤼겔 거리 오래된 가옥
브뤼겔 거리 모습
브뤼겔 거리 세계문화유산 표지판 앞에서
브뤼겔 거리 과일 노점상
브뤼겔 거리 인파
베르겐을 떠나 오슬로로 가는 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3대 피요르드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절경을 지나니 지루할 시간이 없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는 유람선을 타고 폭포관광을 했고 송네 피요르드는 주변 경관을 돌아 보았다.
오슬로 인근의 알 지역으로 이동하는 중에 하당에르 피요르드를 지났다. 베르겐에서 알의 Thon 호텔까지 오는 약 4시간 동안은 환상의 설경을 구경했다. 폭포 호수 터널 다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다. 베르겐에서 호수를 끼고 돌아 오는 동안 호수와 어울린 삼림, 그리고 군데군데 정원을 낀 주택, 목장, 초지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게다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한 폭포는 그림이다. 키가 크고 잘 생긴 폴란드 청년 운전기사는 적당히 쉬면서 절경을 지날 때는 속도를 늦춰 차 안에서 감상하게 하고, 포인트에서는 약 5분내지 10분을 쉬면서 사진을 찍게 해주었다. 담배는 연신 피워대면서도 친절하게 안내하고 안전하게 운전한다.
차가 점점 산악지대로 들어서더니 해발 1200m 이상 되는 고원지대로 올라섰다. 아직도 50cm 이상 쌓여 있는 눈, 녹기 시작하는 눈, 이미 녹아서 작은 웅덩이에 물이 되어 괴어 있는 눈, 작은 시내가 모아져 큰 습지를 이루고, 습지에서 흘러내린 물은 산정 호수를 이루었다. 쓸쓸하고 삭막한 고원지대는 한아름이 넘을 크기의 수많은 비윗돌이 널려 있었다. 무질서한 것 같지만 매우 자연스런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이끼 같은 식물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생명이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멀리 산에는 눈이 쌓여 있고, 구름은 푸른 하늘에 하얗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런 빙원이 거의 1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2차선 도로는 눈과 호수를 피해 요리조리 구불구불 이어진다. 길 양편에는 한 2~3m는 됨직한 막대를 세워 놓았다. 겨울에 눈이 쌓여도 길을 잃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눈쌓인 한라산에 올라갈 때 주황색 나일론 줄을 이어놓은 것과 같은 것이다.
멀리 산에 이어지는 눈은 구름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차가 산에서 내려서기 시작한다. 호수는 점점 더 커지고 길가 자작나무는 더 미끈해진다. 미끈하게 큰 자작나무들이 하얀 속살을 내 놓고 커가기 시작한다. 비들비들 잘 크지 못했던 잔챙이들이 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포동포동 처녀 종아리처럼 살이 오르면 호수는 더욱 광대해지고 흘러내리는 시냇물도 까불지 않고 점잖아진다. 자작나무 숲에 소나무가 섞이기 시작하면 노르웨이 사람들이 한여름 휴가를 보낸다는 히테가 늘어난다. 하긴 별장은 고원에 눈만 쌓인 옆에도 고고하게 서 있다. 산에서 내려오면 별장은 주택으로 바뀌고 건초를 생산하는 초원에 서 있는 농가들이 보인다.
차창 밖의 풍경
송네피요르드를 건너는 다리
목장의 양떼
빙원에서
빙원에서
빙원에서
빙원에서
멀리 보이는 만년설
산 속에 묻힌 히테
호텔 주변을 거닐며
우리나라 농가는 집단 주거지가 있고 농사는 일터를 찾아 들로 나가는데 여긴 일터에 집을 짓고 한다. 일과 삶이 동시에 이루어지니 편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적인 삶, 인간 사이의 관계보다 일의 효율을 중시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같은 마을에서 샘을 파고 같은 샘의 물을 마시며 일어난 각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삶이라 여긴다. 그런데 이들은 몇 백미터씩 덜어져서 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옆집에서 끓는 된장찌개의 냄새를 함께 맡으며 입맛을 돋우는 우리네 삶이 인간적이어서 좋아보인다.
호텔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언덕에 자리잡은 아담하고 예쁜 호텔이다. 객실에 들어와 보니 넓고 깨끗하다. 조명은 밝지 않지만 욕실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고 침대가 깨끗하다. 커튼을 여니 방안이 환해진다. 이곳의 호텔 같은 큰 건물들은 가능한한 나무를 사용했다. 기둥, 문, 창문, 바닥이 모두 나무다. 우리처럼 플라스틱 제품을 쓰지 않는다. 추위 때문일 것이다.
창문을 여니 맑고 깨끗한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바로 앞에 호텔 건물보다 높은 자작나무 숲이 하늘을 가린다. 나무 사이로 교회가 보인다. 대부분의 교회 정원은 묘지이다. 이 교회도 그렇다. 망자를 품에 안으려고 하는 모습이 경건하고 좋아 보인다. 교회가 모두의 교회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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