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러시아 북유럽 일주 7 - 제 7일차 오슬로 시 청사, 비겔란 조각공원

느림보 이방주 2015. 7. 29. 15:52

러시아 북유럽 일주 7 - 제 7일차(7월 17일) 오슬로 시 청사, 비겔란 조각공원

 

 

 

어젯밤 소주를 마시고 11시쯤 잠에 들었는데 4시까지 잔 것 같다.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개운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그러나 이곳의 날씨는 믿을 수 없다. 말로는 20도 정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 그냥 믿어보자. 한국은 연일 35도라고 한다. 그래도 긴팔 셔츠를 입어야 한다. 오늘은 오슬로 관광을 끝내고 크루즈를 타고 코펜하겐으로 이동한다. 아침 7시 식사, 8시 출발이다.

 

오슬로 부자들의 아파트

 

11시에 오슬로에 도착했다. 한국음식점 강남이라는 곳에서 제육볶음, 미역국을 먹었다. 밥 냄새는 좋았지만 제육은 그냥 그렇다. 현지 가이드가 나왔다. 젊다. 임민정 인솔 가이드는 꽃미남이라고 하지만 말이 어눌하다. 해안가 요트가 즐비하다. 왕가소유 목초지, 별장, 부촌이 있는 곳을 돌아 보았다. 버스는 아파트 단지의 부촌 지역을 지나고 있다. 이곳은 강동과 강서로 나쥐어 강동에는 노동자, 강서에는 변호사 사업가가 산다고 한다. 그래서 고급 아파트이다. 이 아파트들이 1912년에 지은 것이라니 놀랄 만하다. 우리는 그 때 무얼 했을까?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에 갔다. 많은 조각품이 있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볼 겨를이 없다. 대개 주제는 생로병사, 희로애락과 윤회 같은 불교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정문에서 들어가 후문으로 나왔다. 오슬로 시청사에 들렀다. 여기는 인구 60만 도시의 살림을 맡아 하는 시청사 치고는 너무 웅장하다. 우리 청주시청사의 초라함을 눈에 보는 듯하다. 당대 미술가들의 그림과 조각품을 걸어 놓았고 청사 자체가 예술이다. 오슬로 시를 상징하는 백조의 상이 인상 깊었다. 백조는 하늘로 비상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결국 모든 인간은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왔다고 한다. 시민이 극락세계를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숨어 있을 것이다. 노벨상 시상식 후의 만찬장이나 모두 예술적이다. 우리는 실용성을 중시하는데 여기는 시청사 하나도 건축 예술과 신앙심을 담아서 짓고 있다. 하긴 모든 인간의 노작이 처음에는 실용성에서 시작하여 심앙심과 예술성이 가미되어 최근에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극대화해서 사람의 눈을 끄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 비겔란드 조각공원에서

 

시내 관광에 나갔다. 모처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시민들이 시장에 모여 맥주를 마신다. 금요일 오후 2시 마치 잔칫날처럼 일을 멈추고 볕을 쬐러 밖에 나와 돌아다닌다. 가만히 보면 거리에서도 동양인들은 건물 사이의 그늘을 찾고 노르웨이 인들은 볕을 찾아 자연스럽게 나뉘어 걷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시고 먹고 운동하고 최대한 노출시킨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7월의 볕이라고 치면 그렇게 뜨거운 것도 아니다. 한국의 볕을 한 움큼 싸다가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늦가을날 마지막 남은 벼로 베다가 논둑에 앉아 수제비 곁두리를 먹을 때 쬐는 볕 같다. 그래도 7일 만에 맞이하는 볕이 이렇게 반가운데 오슬로 시민들은 연중 볕이 이렇게 드는 날이 60일 정도밖에 안된다니 반가움을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거리로 몰려 나온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국회의사당, 왕궁이 시민과 가까이 있다. 시민들의 왕궁의 정원에서 반나로 볕을 쬐면서 누워 있을 수 있는 나라이다. 이렇게 자유로운 나라가 노르웨이이다.

 

오슬로 청사

오슬로 시청사 앞의 조각

오슬로 시청 앞에서

오슬로 시청 벽면 예술품

 

오슬로 시청 벽면 예술품

오슬로 시청 내부 미술품

오슬로 시청 상징은 백로상

오슬로 시청 주변의 항구

오슬로 시내 자전거들

오슬로 피요르드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다. 요트는 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핀란드나 스웨덴보다 더 많은 요트가 정박되어 있는가 보다. 노르웨이에서는 요트를 집에 두는 사람, 항구에 정박해 놓는 사람의 부의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물론 요트의 크기와 화려함에도 그 부의 차는 클 것이다. 우리 눈에는 그냥 아름답기만하지만 요트가 없는 오슬로 시민은 어떨까? 바닷가에는 아주 오래된 성벽이 하나 남아 있다. 오슬로에 현존하는 중세의 가장 오래된 건물인 아케르스후스성이라고 한다.

거리 관광을 끝내고 3시에 시청 앞에 모여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가는 크루즈 DFDS SEAWAY에 승선했다. 침실 배정이 뒤죽박죽이 되어 잠시 혼선을 가져 왔다. 크루즈 회사에서 방을 아무렇게나 배정해서 나는 다른 여자와 한 방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의 많은 사람들 다 그렇다. 방에 가 보니 우리 화요산악회 여성회원이 앉아 쉬고 있었다. 간신히 이리 저리 바꾸고 바꾸어 정리가 되긴 했지만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짐을 풀고 밖에 나가 떠나는 배에서 오슬로 시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인구 60만의 아담한 도시 풍요롭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여유와 자유를 누리는 도시라는 느낌이다. 자유는 물질적 여유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정도면 이제 여유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을 더 주고 직책이나 학력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면 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노후에 연금으로 맘 놓고 살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나라가 우리 정도의 수준일 때도 복지는 그 정도 유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유와 자유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냥 봐도 이 나라는 정치가 매우 안정되어 있다. 국민의 90% 이상의 지지를 받는 국왕과 정치인들의 은은한 향기가 난다. 신뢰받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부럽다. 신뢰가 묻어나는 시민의 얼굴이 부럽다. 국민 소득 10만 달러가 부러운 것은 아니다. 모든 시민이 평범하게 보통으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부럽다. 사실 그것이 중산층 이상의 시민도 편안할 것이다.

 

오슬로 시내 볕을 죄는 인파

노르웨이 의사당

오슬로 시내 맨홀 뚜껑-오슬로 여신이 조각되어 있다.

오슬로 시청 앞에서 보이는 오슬로피요르드

오슬로 시청 앞에서 보이는 오슬로피요르드

배는 항구를 서서이 벗어나고 우리는 식당으로 갔다. 연어, 닭고기 등 고기 위주로 식사를 했다. 내일 아침은 빵 같은 탄수화물과 채소를 먹으리라. 자고 일어나면 말로만 듣던 덴마크의 코펜하겐이다. 북유럽의 호텔들은 대개가 뷔페식당이다. 뷔페식은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들을 먹고 싶은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수많은 요리를 늘어 놓고 그 중에서 입에 맞는 것을 접시에 담아 먹는 방식이 우리나라 전통 예법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어른이 점잖치 못하게 접시를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주워 담는 것이 체통에 맞지 않는다. 또 맛있고 좋은 것을 보면 어른은 아이이게 미루는 것이 내리사랑이다. 물론 아이는 어른에게 드리는 것이 공경의 마음이고 사실 모두가 그런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 안목으로 보면 상놈들의 식사이다.  뷔페의 근원은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의 바이킹족들이 여기 저기 부자 나라에서 약탈해온 음식물들을 늘어 놓고 가족이나 부족들에게 나누어 먹인데서 기원한다고 한다. 그러니 상놈의 식사라고 할 만하다. 사실 요리들은 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식재로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은 것에 불과하다. 연어는 먹기 좋게 저며 놓고, 닭고기는 그냥 슬쩍 익혀 놓고, 오렌지, 토마토, 채소는 그저 쓱쓱 썰어 놓았다. 그냥 주워다 먹으면 된다. 그런데 뷔페 식당에 가보면 낯 뜨거운 일을 만난다. 대개 일렬로 접시를 들고 서서 차례를 기다려 가도 될 것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앞으로 끼어드는 이들을 볼 수가 있다. 이들은 대개 나이 어린 이가 아니라 어른들이고 예법을 중시하던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이다. 이제 우리가 뷔페라는 상놈의 예법의 첨단을 걷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유럽 바이키의 후예들의 뷔페 예법이 더 오래라 더 많이 진화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이들의 식사는 비록 약탈해온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어른 애들 없이 평등하다. 먹는 것에서부터 평등을 실현한 것이다.  이들의 복지 제도가 잘 된 것이 바로 이런 평등 정신에서 온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먹는 것 앞에서 마구 돌아다니는 동양의 어른들은 이러한 평등에 대한 부정적 반응일지도 모른다. 여기 와서 거의 뷔페를 만나면서 나도 예법을 살짝 잊고 있는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우리는 마감 시간까지 먹고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