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검은 장갑
교사가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학부형을 운동장으로 불러냈다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2학년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검은 장갑 선생님은 자신의 교육방침에 항의하는 학부모에게 주먹으로 답변하려고 한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시대를 거스르는 소셜패스socialpass라고 해야 할지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문 기사를 읽으며 ‘쿡쿡’ 웃다가 40여 년 전 초임교사 시절의 나도 별수 없는 사이코가 되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뜨끔했다.
벽지학교를 안고 있는 마을에는 술만 거나해지면 학교로 찾아오는 이가 하나 있었다. 나이는 50대 중반쯤 되었는데 항상 술에 젖어 살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외면하자 학교에 찾아와 주정을 했다. 몇 명 안 되는 우리 교사들은 대부분 그이의 자식뻘 될 만큼 젊었다. 갓 부임한 나도 마찬 가지이다. 처음에는 학부모는 아니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어 술이 깰 때까지 주정을 받아주거나 달래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년말 정리로 바쁜 2월 중순 어느 날 역시 거나해서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는 대꾸를 하지 말자고 서로 눈짓을 보냈다.
“어이, 선생들이 사람이 오면 인사를 해야지.”
“......”
“공무원들이 지역 주민 대접이 뭐 이래.”
“......”
아무도 상대를 하지 않으니까 아예 교감 책상에 걸터앉았다. 거의 같은 연배인 교감선생님도 일어서서 소파로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책상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게걸거렸다.
“어이 이방주, 커피 좀 한 잔 가져와 봐.”
참을 수가 없어 일어서려는데 선배 선생님이 나를 붙잡아 앉혔다. 그래서 또 참았다. 참으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버르장머리를 고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선배인 두 선생님과 나는 사고를 치고 교직에서 쫓겨난다면 바로 군대 입영 통지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교육대 졸업생으로서 근무해야 할 의무연한을 다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만한 일에 인생을 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묵은 폐해를 청산하려면 누군가 승부를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했다. 그 때다.
“어이 교감, 월급 많이 타는데 술 좀 한잔 사지?”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던졌다. 잉크가 사방으로 튀면서 펜촉이 나무 책상에 박혔다. 펜대가 성난 화살처럼 몇 번이나 휘청거렸다.
“정말 더러워서 못 보겠네.”
내던진 말 한 마디에 선배들이 말리고 교감 선생님이 ‘참으라’ 소리를 질렀다.
“야 이방주 무섭다 야. 나도 아들 잘 뒀으면 너 같이 선생질할 터인데......”
이제 여기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왕 내 디딘 걸음 결판을 내자. 다시는 술 마시고 학교에 와서 건주정을 못하게 하자.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그이의 멱살을 움켜쥐고 교감 선생님 책상에서 끌어 내렸다. 그래도 말만은 점잖게 했다.
“야 이 사람아, 나이를 똥구멍으로 자셨어? 나이가 드셨으면 나이 값을 하시고 주민이면 주민답게 행동을 하셔야지.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어어, 이놈 간이 부었네.”
“그래요. 간이 배 밖으로 아주 나와 버렸다. 조용히 따라 나와 봐.”
문을 열고 밖으로 끌어냈다. 선배들이 따라 나왔다. 선배들은 따라 나오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건물 벽 구석에다 밀어 처박았다. 시멘트 콘크리트가 울퉁불퉁한 벽에 붙이고 목을 죄었다. 보는 사람은 그 사람과 우리 셋밖에 없었다. 나는 왼손으로 멱살을 잡아 죄면서 얼굴을 향하여 주먹을 번쩍 들었다.
“한 대 맞고 갈래? 그냥 갈래? 다시 술 마시고 학교에 올래? 안 올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바들바들 떠는 기운이 왼손에 전해 오는 걸로 봐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술에 취한 것도 아니다. 건주정을 하면서 교사들이나 교감이 달래서 보내주면 장터거리에 나가서 ‘내 선생들 혼내 줬다.’며 무용담을 말하듯이 떠들어 댈 것이다. 선배가 거들었다.
“그냥 가셔요. 이 선생이 평소에 점잖아도 화가 나면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 선생 놔 드려요. 가신다잖아.”
못 이기는 척 멱을 풀었다. 별 저항도 하지 않고 쏜살 같이 운동장을 건너 교문을 나갔다. 뒤탈을 걱정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물론 그 뒤로 학교에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소문이 나기는 했지만 학부모들은 ‘이방주 선생님이 주먹을 휘두를 사람은 아니지.’라며 주먹 교사인 나를 믿어 주었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죽장갑은 끼지 않았지만 주먹도 때로는 약이 된다고 믿었던 당시의 내 생각도 오늘의 검은 장갑 교사만큼 옳지 않았다.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교육기관에서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때도 소셜패스socialpass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절대 칭찬 받을 일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더 좋은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검은 장갑을 끼고 학부모를 운동장으로 불러냈다는 교사에게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울분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운동장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이지 교사와 학부모의 결투의 장소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201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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