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느림보 이방주 2014. 12. 11. 16:22

 

현관 앞에 귤 한 상자가 기다리고 있다그렇겠지. 권 사장이 보냈구나제주도에서 제주도유펜션濟州陶遊pension을 운영하고 있는 40년 전 제자 권명호 사장이 보낸 것이다. 상품으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과수원에서 수확한 그대로 상자에 담아 보낸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가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손자 규연이다. 고 귀여운 녀석이 제 주먹만 한 귤을 손에 그러쥐고 눈을 찡그리며 오물오물 먹는 모습은 세상 어떤 사람도 예찬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규연이 동생을 가져서 더 귤을 좋아할 며느리에게도 갖다 줘야지권 사장이 보내는 귤은 그냥 막 먹어도 아무 걱정이 없다어머니도 귤을 참 좋아하셨다. 치아가 약해서인지 다른 것은 다 자손들에게 양보하시면서도 귤만은 챙겨 놓고 드셨다. 한 상자 가득 푸짐하게 담긴 귤을 보니 가까이에서 늘 만나고 사는 며느리나 손자도 그립고,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어머니도 가슴 저리도록 그리워진다. 물론 40년 전 만나 지금까지 나를 잊지 않고 있는 명호 군이 사는 모습도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다. 귤은 왠지 내게는 그리움을 불러오는 과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십삼사 년 전 낯선 전화 한통을 받았다. 바로 명호 군이었다. 그는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말을 뚝 끊었다말문이 막혀 울고 있었던 것이다옛 스승을 찾느라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른다며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도 잊고 울먹였다. 명호군은 1973년 봄, 초임 의풍초등학교 3학년 아홉 살짜리 어린 아이였다. 내가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최초의 제자이다. 헤어진 후 그는 사업을 하고 나는 바로 중등학교로 전직했다. 충북교육청 초등교육과에 아무리 알아봐도 '이방주'라는 초등교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마침 초등교육과 인사담당 장학사로 근무하던 대학 동기와 통화가 되는 바람에 바로 내게 연결된 것이다. 나는 가끔 궁금하긴 했지만 그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리사랑이라는데 선생이 제자를 그리워한 것보다 제자가 스승에게 가진 그리움이 더 절절했던 모양이다. 절실한 소망 끝에 이루어진 만남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시골 아이답지 않게 얼굴이 희고 깨끗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문명의 색깔이 묻어 있고, 말투에서도 문화의 냄새가 풍겼다. 사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아빠가 제천시의 중학교로 진학시켰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일본 관광회사에 근무하면서 제주 토박이인 부인을 만나 결혼하여 제주에 정착하여 펜션을 운영한다고 했다.

 

명호군의 부모님은 이웃에게 정이 깊고 자식 사랑이 남다른 분들이었다. 명호군의 아버지는 그 때도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나를 좋아했다. 잊을만하면 맥주를 사들고 찾아왔다. 술은 즐기지 않았지만 밤마다 의풍천 바위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하늘에 별이나 세던 내게는 더없는 위로가 되었다. 스물두 살 총각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 분들인데 지금은 멀고먼 제주에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가 얼마나 그리울까? 명호군은 또 늙으신 부모님이 얼마나 그리울까?

 

친구들과 한라산 설경을 보러 갔을 때 제주도유펜션에서 묵었다. 공항에서 먼저 나를 알아보고 쫓아온 명호군은 앳되고 귀여운 옛 모습은 아니었다. 이미 중년을 맞은 원숙한 사업가의 상호로 바뀌어 있었다. 생기에 넘치고 미소가 아름다운 명호 군의 부인은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구이를 비롯한 제주 특산 먹거리로 아침상을 마련해 주었다. 저녁에 명호군의 쌍둥이 아들이 귤을 한 바구니 들고 놀러 왔다. 외가에서 과수원을 한다고 자랑했다. 여느 귤보다 특별히 맛이 좋아 한 바구니가 순식간에 없어지니 기특하게도 한 바구니를 더 담아 왔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 나이에도 정이 많았다. 하긴 아빠의 초등학교 선생님이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몇 해 전에 쌍둥이들이 국내 최고 명문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못했는데도 귤 맛과 함께 제자의 쌍둥이 아들에게도 정이 남은 것일까?

 

그 이후 이맘때가 되면 권 사장은 어김없이 귤을 한 상자씩 보내왔다. 처가 과수원에서 수확하여 상자에 바로 담아 보내는 것이라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부담 갖지 말라고 하지만 제자에게 받는 선물이 가볍지만 않은 것이 선생의 마음이다. 고마운 마음은 변함없지만 해마다 보내주는 귤을 받아먹는 일이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심지어 좀 늦으면 올해는 이 친구가 나를 잊었구나.’하는 과만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쯤 해서 귤은 어김없이 도착된다. 40년 전 제자를 사랑해서 그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귤의 달콤새콤한 맛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가늠할 자신이 없다.

 

내가 사는 304동에서 고개만 돌리면 귀여운 규연이가 '까르르' 웃고 있을 405동이 보인다. 앞니가 두어 개 나면서부터 귤 맛을 알기 시작한 고 녀석이 보고 싶다. 이웃에서 자주 보는데도 보고 돌아서면 또 그립다아내가 시장바구니에 귤을 담아 준다. 껍질을 벗겨 통째로 주면 작고 고운 손으로 움켜쥐고 크게 한입을 베어 입에 물고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어른들을 행복하게 하는 고 귀여운 녀석이 보러 가야겠다. 남자들은 잘 모르지만 아기를 가지면 귤이 입에 달다고 한다. 무거운 몸으로 종일 개구쟁이에게 시달리는 며늘아기에게 제자가 보내 준 귤 맛을 보여줘야겠다. 선생은 귤맛 같은 제자를 두어야 교직에서 진정으로 이룰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넌지시 일러야겠다. 손자는 새콤달콤한 귤 맛을 보고 며늘아기도 교직에서나 맛볼 수 있는 잔잔하고 행복한 그리움을 맛볼 것이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가서 낙엽을 긁었다. 가을이 되면 산소 주변의 활엽수들이 쏟아 놓는 낙엽이 봉분에도 상석 아래에도 수북하게 쌓인다. 그래서 미리 긁어내야 한다. 며칠 전 봉분과 제절에 쌓인 낙엽만 긁어내고 산을 내려왔다. 한꺼번에 다 긁어버리면 찾아갈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귤이나 몇 개 가슴에 품고 어머니를 찾아가야겠다. 옛 시인은 '찾아가 반길 이 없다' 고 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말은 없어도 옛날처럼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가워하실 것이다. 차가운 상석에 걸터앉으면 거친 손으로 껍질을 벗겨 치아가 성근 입에 넣고 눈을 질끈 감고 오물오물 귤 맛을 보는 어머니가 마주 앉으실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 어머니도 나도 행복에 젖어 추위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는 귤껍질을 모아 차를 다릴 준비를 한다. 아내가 다려주는 귤껍질 차를 마시면 두고두고 잔잔하고 행복한 그리움에 젖을 것이다. 집안 가득 그윽한 귤 향기에 묻혀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아홉 살이던 명호군도 인제 천명天命을 짐작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부모님에게든 스승에게든 가져야 할 사랑의 깊이나 그리움의 색깔을 가늠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최근의 펴낸 수필집 풀등에 뜬 그림자에 서명을 하고 정성들여 낙관을 찍었다. 고마운 제자에게 내가 쓴 책이나 한 권 보내면 내 그리움이 온전히 전해지고 그의 그리움도 조금은 사위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1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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