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한의원에 예약을 했으니 가보란다. 아픈 데도 없는데 여의사가 아주 예쁘다길래 내 수필집 <풀등의 뜬 그림자>에 사인까지 해서 들고 갔다. 책을 받아들고 과하게 좋아하는 여의사 얼굴에는 예쁜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로 정감이 갔다.
"만성 스트레스예요. 스트레스지수가 이렇게 높은 분은 개원 이후 처음이예요. 하루이틀에 쌓인 스트레스가 아닌데요."
그녀는 나보다 더 걱정이다.
나는 아니라고 잡아 떼면서도 만성 스트레스의 원인이 뭘까 찾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한갑 샀다.
뭘까? 뭐지? 이 뭐꼬? 평생을 쌓아온 나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뭘까? 아무리 찾아도 손끝에 집히는 게 없다.
"이 뭐꼬?"
학교시절엔 완벽한 학생도 전혀 아니었고
완벽한 자식 노릇도 못했고
완벽한 동생도 못되고
완벽한 부모 노릇도 못하고 있고
완벽한 남편은 더더욱 되지 못했고
완벽한 선생 노릇도 더구나 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완벽한 친구는 근처에도 못 갔고
이제 완벽한 할아버지도 되지 못했는데 뭐가 문제지?
이것이 뭐꼬?
아, 나는 완벽한 수필가도 완벽한 평론가도 이닌데 만성 스트레스라니 이 뭐꼬?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총각무 김치를 담그려고 준비하고 있다.
"맥을 보니 어떻대요?"
"무쟈게 건강하댜."
나는 예쁜 여의사의 말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책을 읽을까 글을 쓸까 망설이다가 김치 담그는 걸 함께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내는 그냥 두라는 걸 꼭 해야 할 것 같아 파를 다듬었다. 아내가 씻어 놓은 총각무를 칼로 반씩 가르고, 아내가 만들어 놓은 양념에 버무려 김치통에 넣었다. 개운하다. 그러나 머리에 가득한 건 바로 그 생각이다.
아, 내 만성 스트레스의 원인은 뭘까?
이 뭐꼬?
(2014.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