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어떤 손

느림보 이방주 2014. 8. 1. 08:33

어떤 손

 

감자 껍질을 벗긴다. 예전에는 모지랑숟가락으로 벗겼지만 지금은 감자칼이 있어 몇 번만 손이 가도 하얗게 벗겨진다. 그렇지만 군데군데 껍질이 남기도 하고 흠집이 있는 곳은 한 번 더 손이 가야된다. 별로 힘이 들 것도 없는데 귀찮다고 그냥 두면 깔끔하지 못해서 조리 후에 후회한다.

 

여름 셔츠는 다림질을 하지 않고 입어도 된다. 그러나 조금 귀찮더라도 다림질해서 입으면 훨씬 더 깔끔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한 번 더 손이 간 것은 노력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된다.

 

청탁 받은 원고를 보내 놓고 다시 살펴보면 어휘나 문장의 오류가 발견된다. ‘진작 한 번 더 손질을 할 걸하고 후회하지만 소용없다. 내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건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은 손이 가는 것으로 현실화된다. 손이 가야 한다. 한 번 더 손이 가야 한다. 한 번 더 가는 손이 위대하다.

 

첫돌을 막 지난 손자 녀석이 할머니한테는 잘 가는데 할아버지는 외면한다. 나는 그냥 섭섭했다. 한 번 안아주고 싶어 팔을 내밀면 얼굴을 휙 돌려 버린다. 마음 돌릴 길을 알지 못했다. 제 엄마가 섭섭해 하지 말고 사랑의 손길로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면 된다고 일러 준다. ‘착하다하면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공놀이를 같이 하며 잘했다손뼉도 쳐주니 조금씩 가까이 온다. 그렇게 관심을 함께 가지니 오랜만에 만나면 품에 안겨 얼굴을 비비기도 한다. 어린 아기도 손이 한 번 더 가면 마음을 연다.

 

채소밭이 깔끔한 것은 농부의 손이 한 번 더 간 것이고, 아기가 똘똘하게 자라는 것은 엄마의 손이 한 번 더 간 것이다. 새로 산 운동화가 발에 편안한 것은 마지막 손질을 할 때 정성스런 손길이 한 번 더 갔기 때문이다. 담임교사의 따뜻한 손길이 한 번 더 간 학급은 폭력 없이 웃음꽃만 피어난다. 모두가 착하고 가치 있는 손길이다.

 

보도에 의하면 최근 어느 유아원에서 교사가 대여섯 살 어린 아기들에게 주먹질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학교가 무서웠을까? 화가 난 엄마들은 교사에게 주먹질로 되돌려 줬다고 한다. 최근에 어느 부대에서 선임병사들이 폭력으로 후임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요즘은 장교나 사병이나 모두 지성인인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하다.  이들의 손은 악의 손이고 공포의 손이다.

 

강원도 소방방재청 소속 고 정성철 기장은 추락하는 헬리콥터에서 끝까지 조종간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구조 지원업무를 마치고 춘천으로 돌아가다가 운행 조건의 악화로 광주에서 추락한 사건이다. 정 기장은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아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꽉 쥔 왼손 주먹 안엔 불에 녹아내린 검은 플라스틱 덩어리가 있어서 시신을 수습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착한 마음이 담겨 있는 손이다.  사랑의 손이고 희생의 손이다. 아무나 따를 수 없는 위대한 손이다.

 

손은 공포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어떤 마음을 담아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한 번 더 보내는 사랑의 손이 밝은 사회를 지탱할 것이다.

(2014.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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