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 산길은 온통 마사이다. 마사는 폭우에도 잘 쓸려 내리지 않는 대신 잘못 밟으면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다. 딱딱하게 굳은 황토 위에 쌓인 마사는 절대 밟지 말아야 한다. 마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다 보면 소나무 뿌리를 밟게 마련이다. 길가에 서 있으면서 밟혀도 저항할 줄 모르는 소나무들은 무심한 사람들의 발길에 제 뿌리를 내 주어야 한다. 무심한 사람들의 등산화에 수없이 밟힌 소나무 뿌리는 상처투성이다. 닳고 닳아 윤이 날 지경이다. 나는 소나무뿌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오늘 아침 등산길에서 미끄러운 마사를 피하려다 상처투성이인 그 아이를 밟았다. 소나무는 아무 말도 없다. 저항도 보복도 없다. 표정조차 변하지 않는다. 그냥 갈 길이나 가라는 듯이 우뚝 선 우암산을 바라보면서 태연한 척한다. 미안하다. 아픈 너를 밟았구나. 밟힐 때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걸 알면서도 너를 밟았구나. 미안하다. 남을 수없이 밟으면서 살아온 내가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너를 밟았구나. 좋은 자리만 열심히 찾아다니던 내가 밟혀도 어디로 옮겨갈 줄도 모르는 너를 밟았구나. 인제부터 밟히거든 참지마라. 뿌리에 물이라도 잔뜩 머금고 있다가 마사보다 더 미끄럽게 넘어뜨려라. 짓밟혀도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피할 줄도 모른다. 지독한 발길을 피해서 좋은 자리를 엿볼 줄도 모른다. 보복은 더더욱 모른다. 짓밟히며 사는 것이 운명이려니 하고 견딘다. 사람들은 소나무뿌리 뿐 아니라 사람도 밟는다. 말로 밟고 돈으로 밟고 주먹으로 밟고 학벌로 밟는다. 밟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사람도 밟히면 소나무뿌리만큼 상처를 입는다. 마음으로 입는 상처가 더 쓰라리다. 사람들은 자신이 밟힐 때 분노하고 흥분하다가도 남을 밟을 때는 치가 떨리도록 잔인해진다. 굴욕감 느끼면서도 항변하지 못하는 무지렁이들을 차갑게 밟아댄다. 밟은 이들은 밟힌 이들의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헤아릴 줄 모른다. 밟히는 사람을 마치 소나무뿌리쯤으로 여기고 생각 없이 지나쳐 버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은 알면서 남의 아픔은 헤아릴 줄 모른다. 다 그렇게 미련하다. 나도 그렇다. 밟히는 아픔은 소나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2014.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