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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여행 2- 지리산 산수유마을 실상사 뱀사골 화엄사 쌍계사 화개장터

느림보 이방주 2014. 3. 22. 22:05

2014. 3. 19.

 

지리산 여행 둘째날 -  지리산 산수유마을, 실상사, 화엄사, 쌍계사, 화개 장터

  

지리산 온천마을의 아침은 쌀쌀하다. 그러나 어젯밤 잠자리가 편안해서 푹 잤기에 모든 피로가 다 풀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도를 보면서 오늘 일정을 잡아 보았다. 그러나 그대로 가게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리산 온천 마을에는 성수기가 아니라서 아침 식사를 할만한 곳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상위마을 산수유 꽃밭을 한 바퀴 돌고 실상사로 가기로 했다. 우선 마을에서 제일 높은 자동차 길로 올라 갔다. 마치 전망대처럼 산수유 마을이 한 눈에 다 보였다. 산수유꽃이 온 마을을 노랗게 물들였다. 산수유 나무가 지리산 기슭의 눈 녹은 맑은 물을 다 길어 올려서 이렇게 마을을 노랗게  색칠해 놓은 것이다. 내 몸도 마음도 모두 노랗게 물들 것 같았다. 아내는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지만 사실 노란꽃이 사진으로 잘 나오기는 힘든 것이다.

 

 산동면 상위리 산수유마을을 뒤덮은 산수유꽃

산수유꽃에 취한  아내

 

실상사는 남원의 산내면 입석리에 있어서 뱀사골지구가 가깝고, 뱀사골 계곡을 지나 성삼재를 넘어 화엄사로 가는 길목이다. 화엄사만 간다면 지리산 온천마을에서 바로 화엄사로 가는 길이  빠르지만,  사찰을 핑계로 풍광을 감상해야 하고, 바로 가면 여행의 재미가 덜할 것 같아 이렇게 코스를 잡았다. 온천 마을에서 나와서 추천을 거쳐 운봉을 지나 실상사로 가는 길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길도 좋은 편이고 교통량이 적어 어려울 게 없었다. 실상사까지 가는 동안 아침 먹을 곳이 있을까 두리번 거렸지만 별로 합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실상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바로 천왕문이 막아 선다. 안내판에는 여기서 천왕봉이 마주 보이는  유서 깊은 사찰이라고 했다.  그러니 여기는 지리산의 북쪽 기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사도 지리산 기슭에 있지만 산을 바로 뒤로 한 것도 물을 바로 앞으로 한 것도 아니다. 다만 멀리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평지처럼 보였다. 사찰은 어쩐지 생기가 없는 듯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천왕문을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아 그것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한 200여년 동안 재건을 못했으며 숙종 때 다시 지은 것은 한말 고종 때에 다시 불탔다고 하니 역사의 질곡에서 어려움을 온몸에 받고 버티어온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각들은 단청을 하지 못해 우중충했지만 예전 본래의 절의 규모는 상당히 컸었던 것이 눈에 보였다.

 

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유명하다는데 조선시대 쇠퇴하던 기운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아직도 힘들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문화재로는 

 백장암 3층석탑(국보 제10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과 탑비(보물 제34호), 석등(보물 제35호)·, 부도(보물 제36호)·,  3층석탑(보물 제37호), 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과 그 탑비(보물 제39호), 백장암 석등(보물 제40호), 실상사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 약수암 목조탱화(보물 제421호)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를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절 입구에는 상원주장군(중요민속자료 제15호)을 비롯한 석장승들이 있다.

문화재 뿐만 아니라 나무들도 절의 품격을 더해 주었다. 특히 실상사 목탑지는 거대했던 그 날의 모습을 눈에 보는 듯했다. 목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하는 곳인데 이 목탑은 경주 황룡사 9층탑보다 약 1m가 넓은 23m 20cm였다고 한다. 법주사에 남아 있는 팔상전이나 진천 보탑사에 새로 세운 목탑보다 더 거대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은  그냥 주추만 남아 있고 탑지에서 나온 기와편으로 작은 돌탑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는 그 돌탑이 문화의 무덤처럼 보였다. 백성이 무기력하고 정치지도자가 부도덕할 때 문화는 이렇게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오늘의 교훈이다.

實相이란 무엇일까? 본질이란 말과 어떻게 다른가? 다른 점은 무엇이고 같은 점은 무엇일가? 인간의 삶에 과연 실상은 존재할까?  존재의 본질이 실상이라면 과연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은 누가 규정하는 것일까?  과연 누가 규정한 것이 진정한 존재의 본질일까? 실상이란 말은 불교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따질 필요도 없고  따질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여(一如)·일실(一實)·일상(一相)·무상(無相)·법신(法身)·열반(涅槃)·무위(無爲)·진제(眞諦)·진성(眞性)·진공(眞空)·실성(實性)·실제(實際) 가 그 의미라고 한다. 진실한 본래의 성품이라고 하면 될까? 그러면 실상사는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사찰이란 말인가? 사찰 경내는 서늘하고 다만 스님 몇 분이 왔다갔다 한다. 절을 다듬고 가꾼 흔적은 없지만 그것이 더욱 마음을 끌었다. 대웅전이나 그밖에 전각들이나 그 앞에 서있는 소나무들이 모두 정겹다. 탑은 탑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모두 조용히 발원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상사 정문 역할을 하는천왕문-주차장 바로 앞에 있다

 극락전 앞에서 있는  탑, 절공양  드리고 나오는 아내

 석등

 보광전 앞의 소나무

 보광전의 고고한 모습

 목탑지에서 나온 기와편으로 쌓은 돌탑-탑을 쌓은 이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목탑 복원시의 상상도

 

 목탑지의  모습

 

실상사를  서둘러 떠나 성삼재를 넘어 화엄사로 가기로 했다. 사실 화엄사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뱀사골을 넘어 정령치에 눈이 쌓여 통제된다기에 성삼재로 방향을 바꾸었다. 가는 길에 대학 때 들러 보고 그 후론 슬쩍슬쩍 거쳐가기만 하고 들어가 보지 않은 화엄사에 가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자꾸 절만 가느냐고 했지만, 지리산 여행은 등산을 하지 않는다면 절을 찾아가다 보면 모든 명승을 다 둘러 보게 된다. 그래서 뱀사골도 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태의 남부군이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배경을 이렇게 지나는 것이구나 하고 기대에 넘쳤다.

 

그런데 배가 몹시 고팠다. 벌써 열시가 넘었다. 밥 먹을 데가 없을까 하고 뱀사골 입구에 지리산 천왕봉 식당이라고 긴 이름을 달아놓은 식당이 있고 밥 때가 지나서인지 주차장이 비어 있어 차를 대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아낙이 별 표정 없이 맞아 준다. 안에는 온통 산나물과 고로쇠 물로 가득하고 각종 산야초로 담근 술병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기막히다. 아침 겸 점심으로 시레기 국밥을 주문했는데 시레기된장국 이외에도 반찬이 열 가지도 넘는다. 배추김치, 멸치 풋고추 볶음 같은 일반적인 반찬 외에도 곰취, 고사리, 오가피순, 취나물, 깻잎 장아찌, 냉이, 된장에 박은 풋고추 장아찌, 파김치, 머위 나물, 참나물, 뽕잎, 쑥부쟁이 등이다. 이것들은 모두 묵나물 무침도 있고 장아찌도 있었다. 반찬은 짜지않고 비교적 싱겁게 먹는 내 입에 맞았다. 화학조미료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짜지 않아서 나온 나물을 다 먹을 수 있었다. 시장기가 돌던 우리 내외는 반찬은 물론 음료수로 준 고로쇠 물 반병을 다 먹어 치웠다. 음식은 모두 맛깔스러운데 비해 주인 여자는 나이도 들지 않았는데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불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여느 식당 여주인 같은 가식이 없는 그런 여자였다. 시레기된장국맛 그대로의 성품이라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까? 밥은 7,000원이었다. 14,000원에 아침과 점심을 해결한 것이다. 고로쇠물 한 병을 5000원에 샀다.

 

배가 불러오자 깊고 깊은 뱀사골로 들어간다.  지난 금요일  내렸다는 폭설이 녹아 내리느라 계곡은 물줄기가 비위에 부딪치며 소리 소리 지른다. 하얗게 부서지고 바위를 씻어 내리고 풀섶까지 튀어 오른다. 나는 구불구불한 길 소나무 밑을 돌고돌아 자꾸만 산으로 들어간다.  골짜기는 깊고 깊고 원시림은 하늘을 찌른다. 나는 이태의 남부군과 조정래의 태백 산맥을 생각하고 아내는 자꾸 들어가기만 하는 산이 두렵다고 한다. 남부군이란 소설이 영화로 되었을 때 그 영화를 보면서 이 산속이 얼마나 신비스러웠는지 모른다. 금방이라도 누런 인민군 복장을 한 빨치산이나 수염이  텁수룩한 산적이 튀어 나올 것 같다. 가끔씩 만나는 승용차가 우리를 안심시킨다.

 

차는 부운리 산속 마을을 지나 성삼재에 올랐다. 내려다보이는 지리산의 장엄함은 희뿌연 미세먼지에 가려있다. 먼지가 계곡마다 가득하다.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것들이 모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더러운 것이 모이면 정갈함을 가려 버린다. 세상은 더러움이 먼저인가 보다. 내리막길에서 몇 번이나 기우뚱거렸는지 모른다. 수동 2단을 놓고 가급적 브레이크를 쓰지 않았다. 때로 수동 1단을 넣기도 했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거의 내려온 곳에 천은사 길이 보였다. 그냥 지나쳤다. 화엄사로 가야 한다.

 

화엄사는 장엄한 사찰이다. 아니 화려하고 장엄한 사찰이다. 일주문으로 향하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화엄사는 하나의 장엄한 꽃이었다. 주변의 산봉우리와 전각들이 어울려 골짜기에 피어난 거대한 꽃송이였다. 경내를 휘돌아 쏟아져내리는 물은 어디로 향하는가? 다리는 사바와 정토를 구분하는 것인가? 아니 구분한다면 다리를 놓지 않았겠지. 아내는 빠른 걸음으로 절을 향하고 나는 느릿느릿 늑장을 부렸다. 이때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 계세요? 목적도 없이 떠난 시부모의 황당한  여행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자식들을 걱정하면서 이미 자식들의 걱정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니 보제루이다. 대개의 절에서 누각이  있으면 그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보제루는 누가 너무 낮아 아래로 들어갈 수가 없다. 돌아서 가야한다. 누가 낮으니 주변 산봉우리를 높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법이라고 할 수 있다. 보제루의 기둥들도 자연 그대로이다. 나무를 다듬지 않고 생긴대로 그냥 가져다 세웠다. 아름들이 숲 속에 그냥 도리를 걸고 들보를 올린 것으로 느껴졌다. 또 단청을 하지 않아 고색창연한 그대로이다. 보제루라는 현판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와 춤을 출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대웅전에 들어가 수없이 삼배를 올렸다. 아내의 발원은 무엇일까? 아내의 소망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절실해서 삼배 또 삼배 또 삼배가 끊이지 않을까?

 

화엄사 일주문

지리산 영봉들과 조화를 이루는 가람 배치

사찰 옆에서 독경하듯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전각 앞에 서서 무엇을 기다리나

동오층 석탑

서오층 석탑

고목에서 화엄처럼 피어난 꽃

고목에서 피어나는 매화

 

화엄사에서 내려오니 아름다운 섬진강이다. 바로 꽃의 세계이다. 화엄사만 장엄한 꽃의 세계라면 사바인 여기는 흐드러져 어쩔 줄 모르는 아름다운 꽃의 세계이다. 내게는 불계에서 사바로 내려오니 여기가 바로 극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운전하면서 바라본 섬진강은 견딜 수 없이 아름답다. 차를 버리고 뛰어내려 강가를 걷고 싶다. 강은  태초의 그대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고요히 그리고 천천히 흘러간다. 강이 흐르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 수도승같다. 꽃은 다듬지 않은 채로 그대로 피어 있다. 주로 매화가 천지를 하얗게 물들이고 고명처럼 홍매가 변화를 준다. 지리산 산수유 마을에서 날아온 산수유도 가금 한 그루씩 피어 구색을 맞춘다. 

 

사람들은 왜 자연에 손을 댈까? 그냥 두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 자연은 이름 드대로 자연으로 남는 것을 말이다. 화개 장터를 뒤로 하고 계곡물 흐르는 골짜기를 자꾸 거슬러 올라가 삼신산 쌍계사에 다달았다. 

쌍계사로 올라가는 길가의 매화

 

삼신산 쌍계사는 최초로 차를 기른 절이다. 인근에 차 시배지가 있다. 그래서 쌍계사는 禪, 茶, 音의 성지라고 한다. 쌍계사를 삼신산 쌍계사라고 하는 것은 지리산이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방장산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삼신산의 하나라는 의미이다. 구층석탑, 대웅전, 동양최대의 석등, 등에서 정말로 태고연한 불교 예술을 감상했다. 여긴 이미 목련도 피었다. 꽃이 핀다는 것, 목련이 핀다는 것은 해탈을 의미하는 것인가? 청죽과 어울린 매화가 아름답다.

 

쌍계사로 올라가는 들머리

삼신산 방장산 일주문

구층석탑

목련이 피어나는 전각

대웅전

진감선사 대동탑비-고운최치원의 글씨

대웅전의 아름다운 단청

청죽의 아름다움- 지리산 해빙이 계곡수가 되어 흐른다

금강계단-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저 있다

쌍계사에서 내려오는 길의 동백

 

하동 화개로 내려오는 길에 동백이 아름답다. 지리산을 넘은 피로가 쌓여 그냥 여관에 들어갈까 하다가 노을에 어울린 섬진강 매화가 아름다워 강변 도로를 달렸다. 섬진강은 온통 꽃의 세계이다. 쌍계사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요란한 계곡의 언덕에 자리잡은 여관에 짐을 풀었다. 창을 여니 섬진강 매화가 한눈에 들어 온다. 저녁을 섬진강 참게탕을 먹었는데 값이나 명성에 비해 맛은 별로였다. 밤에 비가 뿌렸다. 계곡에 흘러 내리는 물소리와 빗소리가 하나되어 봄의 교향악을 이루고 있었다.

(2014.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