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지리산 여행 1. 전주 경기전 조경묘 조계산 송광사

느림보 이방주 2014. 3. 22. 21:52

2014. 3. 18.

 

지리산 여행 첫날 -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조경묘, 조계산 송광사

 

오늘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 첫날이다. 며느리가 일찍해주는 조반을 먹고 아내와 함께 나의 애마 그랜저에 시동을 걸었다. 호남지방으로 떠나는 여행은 우선 전주 한옥마을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한옥마을을 다녀왔지만 나는 가보지 못했다. 전주에 갈 기회가 있어도 그냥 한옥이 죽 늘어서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나치고 말았다. 그래서 그곳을 택했다. 특히 한옥마을 인근에 경기전과 조경묘가 있기 때문에 참배하고자 했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오창 나들목으로 들어가 호남 고속도로로 달렸다. 서두를 것도 없고 욕심 낼 일도 없다. 비가 오면 여관에 들어가 쉬고 배고프면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으면 된다. 휴게소에서 쉬거나 여관에 들었을 때 지도를 보면서 다음 여정을 정하면 된다. 그래도 이번 여행의 테마는 정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지리산 사찰 탐방이고, 둘째는 섬진강 매화 맞이로 하기로 했다. 나는 주로 사찰을 아내는 섬진강 매화맞이를 택한 것 같다. 적절히 지역의 맛집을 찾는 것도 좋겠지만 먹는 것에 억매이지는 않기로 했다. 경비는 최소한으로 절약하기로 했다. 호남 고속도로를 달릴 때 흔히 여산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둘이 나누어 마셨다.

 

전주 한옥 마을은 말 그대로 실망스럽다. 전통 한옥이 즐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통과 현대의 조합이다. 다만 위안받을 만한 것은 그 조화가 비교적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억지로 말을 만들어 낸다면 전통을 바탕으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낸 것이라고 하면 될 만하다. 곧 문화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한복집, 한식집, 한옥 체험 민박집이 그것이다. 사실 이것은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를 받아들여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걸었던 기대가 잘못일까? 전통을 고수하고 있으리라 그렇게 해야 우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냐고 고집을 피울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한옥 마을을 찾은 나의 진짜 이유는 경기전과 조경묘 참배이다. 경기전은 내게 21대조인 조선 태조대왕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그리고 조경묘는 전주이씨 시조이신 42대조  이한공의 사당이다. 언젠가 일본을 여행하면서 명치신사에 들어간 적이 있다. 물론 참배는 하지 않았지만 조경묘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채 일제의 신사에 들어간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조경묘 제례에 제관으로 지명된 적이 있는데 나는 학교 근무를 핑계로 응하지 않은 적이 있다. 연가를 내면 되는 것을 다만 전주까지 가는 것이 번거로워서 머뭇거렸을 것이다. 그러고도 명치신사에는 들어가는 것이 말이 되는가?

 

경기전으로 가는 긴 돌담을 걸으면서 그런 생각에 잠겼다. 경기전 앞은 꽃을 예쁘게 심어 가꾸었다. 전주시에서 이렇게 가꾸어 주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경기전과 조경묘를 참배하고 전주를 떠나면서 비빔밥을 먹었다. 전통의 맛은 아니다. 한 10여년전 남원이 고향인 한 동료 교사의 모친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가 음식점에 들러 전주 비빔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었다. 이제 전주에서 그렇게 찬이 많고 뜨거운 비빔밥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옥마을에서 경기전으로 가는 긴 돌담길

 돌담길 앞의 한옥마을

 경기전 앞의 화단

 경기전 홍살문

 홍살문과 아내 은진 송씨

 경기전 앞에서 경건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가 보다.

 경기전 앞의 비석

 한옥마을 거리 풍경

 

한옥마을에서 나와 시내를 지나다가 비빔밥을 먹었다. 사람들이 많다. 시내는 교통이 원활하게 풀리지 않았다. 시내를 벗어나 송광사로 향했다. 조계산 송광사는 처음이 아니다. 언젠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타고 송광사로 향한 적이 있다. 능선길에 조릿대가 많아 운치 있고 송광사에 다다르자 대숲이 또 사람을 놀라게 했다. 물론 송광사 절집의 배치가 얼마나 놀라게 했는지 모른다. 산과 물과 절집의 조화가 그야말로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놀랄 정도였다.

 

조계산 송광사는 승보총찰이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숲이 온통 편백으로 되어 있다. 나는 편백향을 유난히 좋아한다. 베개도 편백이고 차안에도 편백향을 내는 주머니가 있다. 편백나무 숲을 걸었다. 일주문에는 승보총찰 조계총림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의 단청을 색이 발하여 마치 육탈하여 노랗게 승화한 유골처럼 보였다. 아니면 해탈 성불한 나무토막들이 아름다움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일주문에 이르는 다리밑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흐른다. 거기에 커다란 잉어들이 정진하고 있을 법도 하다. 나는 이 물을 건너 사바세계를 벗어나 정토 세계로 들어 갔다. 고즈넉한 물소리와 웅장한 절집이 조화롭다. 아내가 대웅전에 들어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는 동안 나는 사찰 이곳 저곳에 널려 있는 보물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의 눈치를 보아 대웅전에 따라 들어갔다. 내 목적은 솔직히 보물에 있고 절집의 감상에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맘 편하게 절집을 다 보자고 온 것인데 그러기에는 다른 욕심이 더 생긴다.

 

편백나무 숲

 일주문에는 이렇게 현판이걸려 있다 

 절집이 내를 덮은 연등에 어울리고 있다.

 산과 물과 절집의 조화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연등 아래 징검다를 건너는 아내- 삶은 결국 도(道)의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절에서 나올 때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징검다리 위에는 연등이 걸려 있다. 물이 소리를 내며 징검다리 위로 튀어 오른다. 우리가 산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 도를 깨친다는 것은 모두 이렇게 돌을 밟고 물을 건너는 것이다. 진세의 물을 건너 도량으로 가는 것이다. 미몽에서 깨어나 도와 선의 길로 건너가는 것이다. 도를 께치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건너면 되는 것이다.

 

차를 지리산으로 몰았다. 문득 지리산 온천마을이 생각나서 그곳으로 갔다. 온천마을에 공제회에서 경영하는 지리산 가족호텔이 생각났다. 그래 그곳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호텔에서 나를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퇴직 교원은 가족이 아니다. 공제회 40년 회원을 퇴직과 동시에 이렇게 퇴출되었다. 할 수없이 부근의 모텔에 들어갔다. 깔끔하다. 주인 할머니가 참 친절하다.

 

모텔에 짐을 풀고 근처 흑돼지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비싸다. 저녁을 먹고 나니 사방이 어두워졌다. 근처 산수유마을을 산책했다. 상위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지리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 내리는 물은 경사가 급해 급한 소리를 지르며 아래로 튀어 간다.  밤공기는 서늘한데 물소리조차 차가워서 마음이 스산해진다. 모텔에 돌아오니 피로가 몰려 온다. 방이 따뜻하다. 잠을 잘 잤다.

 섬진강가에 차를 세우고 피기 시작한 매화에 빠졌다.

(2014.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