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목련의 약속

느림보 이방주 2013. 4. 11. 16:39

4월의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실감난다. 아파트 현관을 나오니 사람들이 자동차에 하얗게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하얀 것은 눈 뿐만이 아니다. 정원에 목련이 하얗게 피었다. 잔뜩 성난 봉오리가 밀고 당김을 계속하더니 약속한 봄을 어길 수는 없었나 보다. 하얗게 벙그러진 꽃송이를 보듬고 있는 가지마다 말갛게 얼어붙은 진눈개비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예정일을 일주일이나 넘겼는데도 아직도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손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초산은 대개 그렇다고 위로를 받아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아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지

봄을 약속한 아가야

이제 망설이지 말아야지

 

저녁에 산남동 두꺼비 생태공원을 거닐었다. 오후에 따사로운 햇살 덕분인지 기온이 많이 올라갔다.  온갖 꽃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공원에 머물러 있는 차가운 바람에 망설이던 목련, 매화, 복숭아꽃, 살구꽃, 벚꽃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공원은 온통 봄의 축제를 열고 있다. 매화 향이 그윽하다. 복숭아꽃이 눈부시다. 아가는 오늘도 그냥 지나가려나. 소식이 없다.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을 알고나 있을까?

 

공원은 온통 봄이다.

눈내린 새벽의 아픔은 잊은 오래

기어이 매화가 피었다.

눈을 쫓아 나온 설중매다.

 

호수엔 두꺼비가 얼굴을 내밀었다.

봄은 영하도 진눈깨비도 두렵지 않다.

봄은 기어이 올 것이니까

아가야 그렇지?

 

꽃은 기어이 약속을 지킨다. 어떤 진눈개비도 차가운 바람도 마다않고 약속을 지킨다. 집에 돌아와서 밤새워 아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다. 별만 새벽까지 반짝인다.

 

(201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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