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할아버지가 쓰는 규연이의 성장 일기

일찍 피어난 개나리

느림보 이방주 2013. 3. 16. 16:38

대청호 기념 공원에 산책을 갔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개나리 줄기가 연두색으로 물들었다. 볕이 따사롭다. 볕이 유난히 따사로운 곳에 개나리 한 송이가 먼저 피었다. 새벽에 잠을 깬 노랑병아리 주둥이처럼 노랗다. 추워 보인다. 곧 태어날 우리 손주 같다.

 

아가야 서두르지 말아라.

아직은 너무 이르다.

봄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란다.

저기 저 검은 구름이 눈이 되어 하얗게 뒤덮일 수도 있느니라.

귓전을 간지르던 바람도 칼날을 세울 수도 있느니라.

 

아가야. 귀한 아가야.

서두르지 말아라.

때를 기다려야 하느니라.

봄은 때가 되면 오느니라. 올 수밖에 없느니라.

때가 되면 말갛게 옷을 벗고 따사롭게 따사롭게 오는 것이니라.

아가야

그것을 섭리라 하느니라.

 

너무 일찍 피어난 개나리를 그냥 두고 가는 발길이 무겁다. 모롱이를 돌아서니 '휘익' 한가닥 칼바람이 분다. 봄은 아직 이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산월을 맞은 며느리에게 사진과 함께 개나리 사연을 보냈다.

 

(201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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