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잊을 수 없는 맛 6 - 라면 -

느림보 이방주 2013. 4. 5. 13:53

교 앞 분식집에서 노란 알루미늄 냄비에 끓여주는 라면은 그야말로 죽이는 맛이었다. 고들고들한 면발도 그렇고, 겉만 살짝 데쳐진 파란 대파 맛도 그렇고, 하얗게 풀어져 노랗게 익은 계란 맛도 그랬다. 호로록 빨면 목구멍으로 꼬불꼬불 넘어갈듯 한 면발을 넘기는 재미도 그만이었다. 목구멍에 화상이라도 입힐 것 같은 알큰한 국물 맛을 어디다 비기랴. 국물을 들이켜고 노랗게 숙성된 단무지를 아삭아삭 깨무는 맛도 일품이었다. 노랑 냄비에 드문드문 붙어있는 고춧가루 조각까지 다 떼어 먹고도 발길을 돌이킬 때 아쉬웠던 심정은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 3학년, 숟가락을 놓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던 그 시절에 저녁을 굶고 자정 가까이 학교에서 견디는 일은 차라리 형벌이었다. 가물에 콩 나듯이 주머니에 용돈이 집히는 날은 저녁으로 그렇게 50원짜리 라면을 먹었다. 오늘의 삶이 그날의 라면 맛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면 누가 웃을까?

 

 

훈련소 밥은 먹을 때 냄새나고 먹고 나면 졸리다. 구대장들 말에 의하면 군량미가 창고에서 3년쯤 잠을 자다 나왔기 때문이란다. 학군단후보생으로 처음으로 병영훈련을 들어갔을 때이다. 입영하는 날 저녁부터 이튿날 아침 식사까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오히려 구수한 냄새로 바뀌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냄새가 나서 식반을 대하기조차 역겨웠다. 두 끼를 굶으니 배는 등짝에 붙고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점호는 물론 '식사 집합 일분 전'도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점심에 라면이 나왔다. 식반의 밥그릇 국그릇에 가득 담아 주는 라면은 팅팅 붇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맛이 났다. 라면으로 기운을 차리니 저녁밥은 구수한 냄새로 바뀌어 버렸다. 라면의 힘이다.

 

라면은 아름다운 추억이지 흔쾌한 음식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쯤 다시 그 맛에 빠진 적이 있다. 알프스의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갔을 때이다. 8월 초순인데도 하늘에 까맣게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눈썰매를 즐기고 찬바람에 체온이 떨어져 뜨거운 국물 생각이 났다. 다끈한 어묵국물을 간절히 그리며 휴게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독일 청년이 눈에 익은 컵라면을 팔고 있었다. 알프스에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기다랗게 늘어선 줄 뒤에 서서 한참을 기다린 다음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값(약 6700원)을 지불하고 우리의 辛라면을 먹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의 맛이 유럽의 지붕에서 세계의 입맛을 지배하고 있으니 라면의 힘을 가히 짐작할 만했다.

 

수필 한 편 읽고 나면 감동이 있으면서도 끝까지 버티려면 인내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한 번 눈을 붙이면 도저히 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는 작품이 있다. 읽고 나면 그 잔잔한 감동도 또한 비할 데가 없다. 수필은 무엇으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맛을 내는 것인지 알고 싶다. 따분한 내 글이 독자에게 줄 고통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진정으로 맛나는 글을 쓰고 싶다.  깊이는 없다지만 어디 라면 맛 같은 삶은 없을까? 그런 삶으로 뜨거워도 도저히 쉬었다가 먹을 수 없는 라면 같은 수필은 쓸 수는 없을까? 지금도 눈길 산행을 할 때 배낭에 라면을 넣어 간다. 눈 위에서 끓여먹는 라면 맛도 고3 때나 군대 라면이나 융푸라우요흐에서 먹던 맛에 못지않다. 새로 나온 라면이나 한 냄비 끓여 먹으면서 다시 한번 구상해 볼 일이다.

(201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