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문덕리에는 수선화가 피었네

느림보 이방주 2011. 4. 18. 00:08

문덕리에는 수선화가 피었네

 

 

문덕리 가는 길에 벚꽃이 지천이다. 구사리를 지나 산덕리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벚꽃이 산기슭에 피어난 진달래와 어우러져 꽃잔치를 이룬다. 나무들의 요술이 참으로 신비롭다. 메마른 땅에서 색채를 길어 올리는 것도 예사롭지 않지만, 색채의 잔치가 사람들의 삶과는 달리 쫓김 없는 항심(恒心)을 보여 더욱 그렇다.

 

마을에는 봄꽃이 장마 끝을 알리는 구름처럼 고샅에서부터 산기슭으로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벚꽃이 꽃비를 날리며 다 떨어지고 나면, 배꽃이 만개하여 온 마을을 하얗게 뒤덮으리라. 남아 있는 이들이나 떠난 이들이나 수몰 이주민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을 다시 한 번 애잔한 꽃비로 날리리라. 문덕리에는 화려한 복숭아꽃보다 하얀 배꽃이 어울리고, 살구꽃보다 벚꽃이 더 조화롭게 느낀다면 도시인의 잔인한 낭만일까.

 

검문소가 있던 염티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다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마을로 들어갔다. 비닐하우스나 밭둑에는 봄을 맞이하는 농민의 손길이 바쁘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고샅을 따라 살피꽃밭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피었다. 오랑캐꽃이 보랏빛으로 청초하고, 금낭화가 큰머리를 갓 얹은 세자빈의 떨잠처럼 화사하다.

 

야생화를 바라보며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도랑을 따라 들어가니, 팔순 노인 한 분이 사립 앞에 나와 앉아 있다. 기울어진 기둥에 매인 강아지가 깽깽 짖으며 망가진 사립을 대신한다. 노인은 아예 의자 두 개를 문밖에 내놓고 앉아 있다. 고개만 들면 눈길은 회남으로 넘어가는 염티로 간다. 고갯길에 벚꽃이 하얗다. 울타리 밑에는 수선화가 청초하다. 이런 곳에서 수선화를 보다니 눈길이 자꾸 그리로 갔다.

 

노인에게 지금은 이야기나 나누어 줄 친구가 되어주면 족할 것이다. 노인은 내가 말을 건네기 전에 ‘테레비 사진 찍는 사람이유?’하고 묻는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안노인의 자리인 듯 오른쪽 의자에 올려 있는 행주치마로 없는 먼지를 털어낸다. 앉아도 된다는 뜻이다.

“마을이 꽤 커 보여요.”

나는 가져간 초콜릿빵과 두유를 권하며 시골 마을치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것을 들어 물었다. 도회인을 불신하는 노인은 두유를 마실 생각이 없다. 빨대를 꽂아주고 내가 먼저 하나 들고 빨았다. 그제야 두유를 마시며 입을 연다.

“배 보관하는 창고유. 사람 사는 집은 몇 채 안 돼. 열다섯 뿐인걸 뭐. 문덕이 열다섯 집, 염티가 열네 집.”

 

염티, 문덕이 한 마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모두 문의면에 속하지만, 대청댐이 완공되기 전에는 앉은 자리 바로 앞에 흐르는 도랑을 경계로 염티리는 보은군 회남면 땅이고 문덕리는 문의 땅이었다고 한다. 문의 땅에 앉아서 보은 땅 텃밭의 상추를 뜯었을 것이다. 

 

청남대가 별장으로 쓰일 때는 염티 삼거리에 검문소가 있어 지나는 자동차를 세우고 샅샅이 뒤지며 성가시게 했다. 그래도 그때는 마을이 평화로웠으나 지금은 도둑이 심하다고 노인은 신산한 얼굴을 찡그렸다.

“도둑놈들이 고추나 곡식을 훔쳐 가나요?”

“웬걸유. 들에 나갔을 때 빈집에 들어가 금반지, 목걸이, 돈을 들고 가유. 놈들이 말쑥해서 도둑놈 같지도 않은 걸유.”

모자챙 아래 감춘 시선으로 나를 다시 한 번 훑어본다.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도시의 패륜아들이 휘젓고 다니는 것도 이 시대의 모습이다.  

 

노인은 예전에는 문덕학교, 후곡리에 있던 용흥학교에 아이들만 오륙백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댐 완공 이후에 세워진 소전분교마저도 폐교되고 염티리, 문덕리, 소전리, 후곡리를 다 합쳐도 사람이 백 명도 안 된다고 했다. 가구 수는 많아도 대개가 혼자 사는 집, 두 늙은이가 사는 집이라고 한다. 노인들 내외가 살다가 한 늙은이가 죽으면 혼자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치아가 허물어져 다 드러난 잇몸이 보이도록 허탈하게 웃는다. 노인도 내외가 사는데 마나님은 병을 안고 지낸다고 했다. 자신의 답답한 미래를 바라보듯이 동쪽 하늘로 고개를 돌린다.

“사십대나 오십대 가구주는 없나요?”

“두 집이 있어유. 두 노인네가 살다가 하나가 죽으니께 자식이 들어와 살 수밲이 읎잖유? 그런 자식들은 효자지유. 그럼 뭘햐. 한 늙은이마저 죽으면 또 나갈 걸유.”

 

아마도 그 자식들이 아주 귀농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모셔갈 수 없으니까 임시로 들어와 사는 것이다. 문의에서 제법 큰 마을인 이곳도 머지않아 폐허가 될 운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마을의 공동화될 미래를 돌아보는 이는 없다. 저 높은 곳에는 정책은 물론 논의조차 없다.

 

 

 

사립 양쪽에 노랗게 피어 있는 수선화가 참 곱다. 노인장의 마음을 아는지 꽃송이는 소금장수가 등짐을 지고 보은으로 넘어갔다는 염티를 향하고 있다. 소금장수는 이제 오지 않는다. 그리운 이도 사랑하는 이도 누구도 이 마을에 오지 않는다. 노인이 염티를 향해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일요일을 기울이는 햇살이 샘봉산 마루에서 머뭇거린다. 모두 대처에 나가서 산다는 노인장의 육남매가 고개를 넘어오기는 오늘도 글러먹었다. 수선화는 아직도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대청호 수면에 은빛으로 부서지는 석양이 노인의 때 묻은 옷깃을 스친다. 물빛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져 기다리다 지쳐 꽃으로 피어났다는 수선화처럼 노인은 오늘도 아무도 오지 않는 고갯길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 것이다. 수선화가 참 곱다고 하니, 서너 송이를 담아 화분을 만들어 주었다. 빛을 잃은 도랑물은 해가 기울어도 그치지 않고 흐른다. 나는 노인장에게 그리움 하나를 나누어 들고 산 그림자에 덮이는 마을을 돌아 나왔다. 고개를 넘자 뭔가 잃어버리기나 한 듯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오는 것만 같았다.

                                                                                                                      (2011. 4. 17.)

 

 

 문의에서 산덕리를 지나 문덕리로 향하는 도로

 

 문덕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신 할아버지

 

 수선화

 

 피어나는 금낭화

 문덕리와 염티리로 내려가는 길-길 오른쪽이 문덕 왼쪽이 염티 소전리 쪽에서 보이는 염티리-예전에는 보은땅

 문덕리와 염티리 경계를 이루는 도랑(왼쪽이 문덕리)

 

문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