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지금 후곡리에 가면

느림보 이방주 2009. 8. 13. 16:13

지금 후곡리에 가면

 

 

  

모롱이를 돌아서자 어떤 사람이 길을 막아선다. 차를 세우고 내려섰다. 그의 얼굴은 이미 불콰하다. 사향탑(思鄕塔) 앞에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뚜렷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쁠 것도 없이 떠나온 길이 아닌가.

 

문의를 지나 후곡리로 가는 길에 거의 마지막 굽이를 돌아서면 거기가 바로 북대골이다. 이 북대골 에움길 모서리에 사향탑이 있다. 대물려온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이 물에 잠긴 고향 마을을 그리며 세운 비이다. 비문은 기교도 없고 문리도 없다. 예쁘게 화장한 흔적도 없다. 그렇다고 군더더기도 없다. 그래서 더 투박한 이 글이 가슴을 후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자니 의문이 꼬리를 문다. 여기는 문의에서도 땅끝 마을인데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 전에는 후곡리 벌말에만 100여 호가 살았다지만, 지금 남은 사람이 다 모여도 이렇게 많을 리가 없다. 수몰 이후 함께 살던 사람들이 훌훌 보따리를 쌀 때, 차마 고향을 떠나지 못해서 비탈밭 모서리나 이웃 마을에 자리를 펴고 주저앉은 몇몇 외딴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 리도 없다. 거나하게 취했어도 사람들의 어깨는 물푸레나무 가지처럼 쳐져있다.

 

술을 한잔 받았다. 또 한잔 받았다. 운전이 걱정되었지만 사양할 분위기가 아니다. 아니 사양할 수도 없었다. 자리를 감싸고 있는 바람이 어느 결에 나를 휘감았다. 불판에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가고 이미 술에 젖은 이들의 넋두리가 흐느적거린다. 얇게 저민 삼겹살이 배들배들 타들어간다. 취한 이들에게는 고기보다 이야기 안주가 더 맛있다.

 

친목 모임이다. 뿔뿔이 흩어진 수몰 이전 후곡리 벌말 사람들이 날을 받아 만나는 날이다. 남은 사람이나 떠난 사람이 이곳에 사향탑을 세우고, 아름다워서 더 마음이 아린 이 계절에 탑 앞에서 만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향은 저 물속에 있다. 비문의 일절처럼 ‘실향민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겠지만, 우리 수몰민들은 영원히 찾지 못할 수중’인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고향에 오면 예전처럼 농투사니가 된다. 가진 자나 못가진 자나,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여기에 앉아 눈을 감으면, 지금은 어디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한수당에서 멱을 감고 은결에서 벼를 벤다. 웃여울에서 천렵하고 나루터 하얀 백사장을 거니는 환상에 빠진다.

 

떠난 사람은 떠났기 때문에 허허벌판의 삶이 서러웠겠지만, 남은 사람은 남아서 당하는 설움에 분통터진다. 떠난 사람은 고향을 그리며 부평초처럼 살았다면, 남은 사람들은 푸서릿길에 질경이처럼 짓밟히며 살았다고 한다. 청남대가 들어서자 주변 수십 리가 통제 구역이 되었다. 산덕리를 지나 어부동을 가려고 호숫가를 돌고 돌아가면 염티 검문소에서 차를 세웠다. 차를 샅샅이 뒤졌다. 짐칸까지 다 열어 보고 등산용 스틱이라도 나오면 용도를 꼬치꼬치 물었다. 어쩌다 지나는 사람도 당하는 것이 어이없는데 제 집을 드나들다 당하는 토박이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연안 이 씨들이 많이 살았다던 이달봉 아래 뒷골에는 아직도 고향을 지키는 몇 가구가 남아 있다. 그들의 하소연이다.

 

산에 낭구를 하러 가도 군인들이 잡어 가구, 여자들이 산나물을 뜯으러 올러가도 또 잡어가요.’ 

‘평생 뒷산에서 나무하고 앞강에서 천렵하믄서 살아온 우리네 삶인디 지들이 뭐라고 철조망 쳐놓고 가로 막느냐 말여.’

‘잽혔다 풀려나믄 또 가고, 또 가믄 또 잽히고 했지유. 우리 땅이잖어유? 우리네 살던 버릇대로 사는 거 아닌개벼.’

‘당하는 놈은 만날 당하기만 하란 말여? 고향도 뺏겼는디’

‘뭘 먹고 살란 말여. 뭐에 재미를 붙이란 말여?’

‘빌어먹을 언제나 고향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겨?’

‘죽으면 돌아오는 겨, 이 사람아. 죽으면 아주 뼈다구를 묻고 살게 되는 겨. 허허.’ 

 

청남대가 관광지가 되고 검문은 없어졌다지만, 사람들의 대화는 점점 서럽게 젖어 한스러운 땅에 묻어난다. 삼겹살은 타서 말라비틀어지고 풋고추도 배들배들 시들어가도 실향민보다도 못한 수몰민들의 한스러운 얘기는 끝날 줄 모른다. 나그네는 가늠할 수 없는 아린 사연은 잡목 우거진 언덕배기에도 묻어 있고, 맑은 물 솟아오르는 골짜기에도 졸졸 흐른다. 소주나 연신 마실 수밖에 없다. 비우면 바로 다시 채워지는 술잔이 민망하다. 날마다 마신 것이 대청호 물인 줄 알았더니 수몰민의 한이었다. 아무것도 거들 밑천도 가진 것도 없는 내가 답답하다. 무논에 백로를 바라보듯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치던 내가 우습다. 일어서자니 도망치는 것 같고, 앉아 있자니 송구해서 불안하다. 일어설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 둘 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 모여든다.

아프다. 새삼 온몸이 다 아프다. 그렇다고 피해 의식에 젖어 있는 그들을 대신할 수도 없다. 모두가 다 내가 지은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오만일까? 벌떡 일어나 탑 앞에 선다.

 

아!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

서로를 귀히 여기고 언제나 정을 나누었던 내 고향 벌말이여! 정답게 어울려 살아온 삶의 쉼터! 포근한 어버이의 품 속 같아라.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 잎사귀에 석양이 온통 하얗게 묻어 은빛으로 하늘거린다. 그림자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사향탑에 비친다. 산그림자가 기슭으로 내려온다. 서늘하다.

(2009. 8. 12)

 

사향탑

 

 

물에 잠긴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