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문의면 노현리의 달집 태우기

느림보 이방주 2008. 2. 23. 16:21

  문의면 노현리는 청주에서 청남대 가는 쪽으로 가다가 흥수아이로 유명한 두루봉 선사시대 유적지 입구 바로 직전에 왼쪽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은 피반령에서 내려오는 산 줄기가 동서로  갈라져 동으로는 구룡산을 이루고, 서로는 대청호로 스며든다. 그 가운데 작은 냇물이 호수로 흘러간다. 산 줄기 양 언덕으로 마을이 발달되어 있다. 시냇물에서 산 언덕까지 논 밭이 있어 사람들은 논 밭을 갈아 씨뿌리고, 샘을 파서 물마시면서 순박하게 살아 왔다. 마을 앞에 청남대로 들어가는 2차선 포장 도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끔씩 까맣게 높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지금은 북쪽으로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고가도로가 흉물처럼 마을을 가로지른다.

 

  노현리마을의 전경   그래도 문의면 노현리는 해가 지면 달이 떠오른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한없이 순박하다. 밭매던 손으로 김치를 담그고, 거름치던 손으로 돈을 센다. 아낙네들이 청주 나들이를 하려면 햇볕에 그을은 얼굴에 분을 발라야 한다. 사내들도 갈라진 손으로 넥타이를 매만져야 한다.

 

  문의면 노현리의 달집 태우기는 정월 대보름날에 한다. 예전에 달집태우기는 책력을 보고 망월을 하기 좋은 날을 가려 때로 열나흗날 하기도 하고, 때로 열 엿샛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박아 놓고 보름날 한다. 그게 우리에게는 편하다. 잊지않고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놀이를 2006년 우연히 알게 되어 그때부터 찾아간다. 그러나 첫해는 중요 행사가 다 끝나고 점화할 때 갔다가 불구경만 하고 떡과 고기만 얻어 먹고 왔다. 작년에는 비바람이 쳐서 갔다가 바로 돌아왔다. 올해는 처음부터 알뜰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주 일찍 출발했다. 

 

탑제를 마치고

 

  고은 삼거리에서 문의 쪽으로 우회전하자 앞에서 소형차가 가로 막았다. 내가 추월하려 하면 속도를 내고 포기하면 시속 50km 수준이다.  짜증 날 때 참아야 한다고 느긋하게 갔더니, 마을 어귀 돌탑에서 막 탑제가 끝났다. 이를테면 시작을 알리는 산신제가 끝난 것이다. 시작에 앞선 농악놀이를 보지 못했다.

 

 

마을 어귀에서 탑제가 끝나고 달집태우기 고사를 드리기 위해 출발한다.

 

 

 

 

나는 서둘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행사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굿패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차려놓은 달집을 돌고 있다. 참으로 흥겹게 춤을 추고,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춤을 추며 따른다. 아이들은 멋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고 야단이다. 마을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이다.

 

  달집태우기는 한 해의 농사에 대한 길흉을 점치는 세시풍속으로 시작되었다. 대개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열리는데 요즘은 정월대보름날 실시된다. 짚으로 만든 달집을 태우는데 마을을 액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요즘에는 마을 주민의 단결을 도모하고 지방 전통문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달집 태우기는 달집사르기라고도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농악대와 함께 망우리를 돌리며 달맞이할 때 주위를 밝게 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이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짚 ·솔가지 ·땔감 등으로 덮고 달이 뜨는 동쪽에 문을 내서 만든 것을 달집이라 한다. 달집 속에는 짚으로 달을 만들어 걸고 달이 뜰 때 풍물을 치며 태운다. 이것은 쥐불놀이나 횃불싸움 등과 같이 불이 타오르는 발양력과 달이 점차 생장하는 생산력에 의탁한 민속놀이다. 달집을 태워서 이것이 고루 잘 타오르면 그해는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고,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이 풍년, 이웃마을과 경쟁하여 잘 타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친다. 또한 달집 속에 넣은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터지는 소리에 마을의 악귀들이 달아난다고도 한다. 달집을 태울 때 남보다 먼저 불을 지르거나 헝겊을 달면 아이를 잘 낳고, 논에서 달집을 태우면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달집은  엄청나게 크게 만들었다. 아마도 속에는 나무 등걸이나 솔가지를 넣었을 것이다. 밤새도록 탈 수 있을 만큼 장작도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빙 둘러 대나무로 덮었다. 사실은 대나무는 속에 넣어 불에 터지도록 하고, 그 터지는 소리를 마을 일으키는 기(氣)로 생각해 왔다. 대나무로 덮은 다음 새끼줄 띠를 두르고, 창호지에 여러가지 소망을 적어 새끼줄에 끼웠다. 농민들의 소망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去凶爲吉(흉한 것은 가게 하고 길한 것으로 만들자)  같은 소망도 있지만, 周察防除(주변을 살펴서 미리 방제하자) 같은 다짐도 있다.

  아랫 부분에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한 마름을 돌렸다. 그리고 고사 지낼 젯상 바로 앞에는 짚으로 달모양을 만들어 얹져 놓았다. 그게 바로 짚달이다. 그래서 달집이다. 달이 뜨지 않아도 달집에는 달이 누워 있다. 우리 농민들의 슬기이다. 

 

 

달집과 고사상, 고사상 바로 앞에 짚달이 보인다. 흰옷입은 이들은 제관  울긋불긋한 깃발에도 소망과 다짐을 적어 넣었다. 젯상에는 주과포 이외에도 떡시루와 통돼지를 올렸다. 특히 돼지를 잡아 통째로 상에 엎드려게 한 고사상이 특이하다. 돼지는 발까지 깨끗이 씻겨지고 온몸의 검은 털을 깨끗하게 면도하여 그 정성을 알 수 있었다. 겨드랑이를 간지르면 금방이라도 낄낄 웃을 것만 같다.  어떻게 저렇게 장난꾸러기처럼 낄낄 웃는 얼굴로 돼지를 잡을 수 있을까 놀랄 정도이다. 이 마을 농민들의 해학이 돼지 얼굴에 툭툭 묻어 있다. 연지를 발랐는지 주둥이가 새빨갛다. 농악대가 농악을 멈추고 음식 상이 차려진 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동안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흥겨운 농악놀이

 

 젯상과 짚달

 

 

 

 금방 낄낄 웃을 것 같은 희생으로 쓰인 통돼지

 

 

 사진을 몇 장 찍은 다음 직판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사실은 제사를 올리고 소지(종이를 태워 소망을 기원)까지 한 다음 음복을 해야 하는데, 외부 사람들이 많이 와 있으니 대접하는 의미에서 미리 먹는 모양이다. 나는 혼자 갔기 때문에 찾아 먹기가 좀 곤란했다. 그 때 어떤 아주머니가 한 상을 내다 주었다. 돼지고기 한 접시와 김장김치, 나박김치 한 그릇, 시루떡 한 접시, 소주 한 병 그리고 팥죽 한 대접이다. 나는 마침 배가 고프던 차라 팥죽을 먼저 먹었다. 새알심까지 넣어서 정성들여 쑨 팥죽이 맛있었다. 간이 잘 맞으니 소금도 필요없다. 나박김치는 거의 우리 집에서 해먹는 수준으로 맛이 있었다. 돼지고기도 알맞게 삶아져 김장김치에 싸서 먹으니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고향 잔치에 온 기분이었다.  시루떡은 워낙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껴두었다. 그리고 소주는 차를 가져 왔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다. 딱 한 잔만 하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팥죽을 한 그릇 더 주느냐고 묻기에 많으냐고 했더니 얼마든지 있단다. 그러나 참았다. 마침 농악이 사물로 진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농악대가 도열해 있다.

 

 대청호 너머로 해가 진다

 

 

진혼

 

 

  대청호반에 은빛 물살을 남기며 정월 보름의 해가 진다. 곧 달이 솟아오르면 고사가 시작된다. 해가 꼴깍 산너머로 붉은 고리를 남기고 사라지자 노현 1리 이장이 고사 시작을 알렸다. 기관장과 지역 유지들을 소개한 다음 한 사람씩 인삿말을 들었다. 제일 처음 나온 면장님이 아주 길게 안삿말을 해서 동산에 달이 올라 버렸다. 달이 오르는 것과 동시에 참신과 강신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늦은 것이다. 내 친구인 김영권 청원군의회 부의장은 두어 마디 아주 짧은 인사를 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달은 오르는데 물색 모르는 기관장의 긴 인삿말

 

  어느덧 어둠이 밀려 왔다. 농악대의 진혼이 한 바퀴 끝나자 제관이 소개되고 초헌관이 강신과 참신을 한다. 아무리 풍속에 따른 의례적인 행사이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고사에 임한다. 마을 주민들도 정말로 절실한 소망인 농민의 풍요한 삶을 기원한다. 나도 그 순간만은 나보다 그분들이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헌례가 끝나고 아헌례 종헌례가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달집 앞에 모여 찬 바람을 맞으며 모두들 소망을 담아 비는 듯하다. 집례는 우리말로 번역한 홀기를 공책에다 볼펜으로 적어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국어책 읽듯이 읽어나간다. 모두 알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하얀 제복과 유건, 하얀 운동화가 어색하다. 그러나 모두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집례를 맡은 사람이 내빈 소개, 박수 유도, 참반원 안내 및 지휘, 제관 분방과 소개를 자세히 할 뿐 아니라, 의식 절차에 따른 의미도 설명하여 참석한 사람들이 잘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사의 신성성이나 신비스러움은 덜해지는 기분이다.

 

  헌관들이 헌작을 마치고 소지를 하는 순서이다. 소지는 축문을 태워 소망을 비는 절차인데, 굿이나 동제에서는 창호지를 얇게 오려서 불을 붙여서 소망을 빌고 부정함을 불태워버리는 일종의 수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미리 준비한 창호지를 촛불에 붙여 하늘에 날려 보냈다. 달집태우기도 일종의 동제의 성격을 띠므로 그들이 원하는 소망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지

 

<소지> 소지는 부정()소지와 몸소지가 있는데, 부정소지는 가정이나 마을 전체를 위해 하는 것이고, 몸소지는 구성원 개개인을 위해 올리는 소지이다. 몸소지는 대개 부정소지를 올린 다음, 관계된 사람의 운수대길을 위해 사르는 것이 상례이다. 당산제의 경우에는 마을주민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모두 백지에 적어 두었다가 제사가 끝날 무렵, 제주가 주언을 뇌며 사르는데, 백지에 적힌 사람은 건강하고 질병의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소지는 활활 잘 타서 재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좋고, 만일 중도에 불이 꺼지거나 땅에 떨어지면 불길하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고사가 끝나고 집례의 구령에 맞추어 점화 행사가 있었다. 처음에 제관과 내빈, 마을 대표들이 불방망이를 가지고 달집 둘레를 빙 둘러 싸고 서 있다. 청년들이 이엉에 기름을 약간씩 뿌렸다. 소방서에서 소방차까지 대기시켰다. 사진 작가들이 주변에 둘러 선다. 불이 한꺼번에 솟을 것을 대비하여 젯상을 옮기고 연단과 멍석을 다 걷었다. 달은 이미 솟았다. 제관이 구령을 올리자 솜방망이에 불이 붙었다. 마을의 좌장격인 노인회장이 짚달에 불을 붙였다. 짚달에 불이 붙는 것을 신호로 불방망이가 이엉에 내려졌다. 바짝 마른 대나무에 불이 붙어 한꺼번에 솟아 오른다. 엄청난 화력이다. 장엄하기까지 하다. 대나무통 터지는 소리가 세상을 울린다. 이 소리가 크면 클수록 풍년이 든다고 한다. 누군가 매화포를 하늘에 쏘아 올린다. 하늘이 온통 매화꽃으로 가득하다.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한마당이다. 이렇게 전통은 시대를 따라 거듭난다.  사람들이 환호를 지른다. 농악이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이나 외부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풍년을 기원한다. 달은 이미 불꽃 끄트머리까지 올랐다.

 점화

 

 

 불붙은 달집 동민의 소망을 안고 활활 타오른다.

 흥겨운 놀이마당

 놀이마당

 아이들도 흥겹다 (쥐불놀이)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배려 고구마도 익어가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하여 깡통에 불을 담아 쥐불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아이들은 쥐불놀이 깡통을 돌리며 모처럼 허용된 불장난에 재미를 들인다. 어린시절 설을 쇠고 나면 정월대보름까지 날마다 쉬지않고 쥐불놀이를 했던 생각이 난다. 논두렁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이웃 마을 아이들과 불싸움도 하였다. 그러다가 산에 불을 내기도 하고 논바닥에 쌓아 놓은 짚가리를 태우기도 하면서 야단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한 옆에서 고구마를 구워 아이들을 먹도록 한다. 어른들은 은박지에 고구마를 싸서 장작불 속에 던져 놓고, 꼭 고구마 크기의 부삽을 기다란 자루에 달아 연신 고구마를 꺼내 놓는다. 때로 감자도 있고, 계란도 있다.  아이들은 부삽이 허공으로 고구마나 감자를 담아 나를 적마다 환호를 올린다. 군고구마를 어린 아이보다 더 좋아하는 내게는 돌아 오지 않았다. 얼마나 침이 넘어갔는지 아는 사람만 안다.   쥐불놀이, 군고구마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이 나 있다. 아이들은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미래인가? 이렇게 자유롭고 열려있는 생활 속에서 아이들의 세계는 활짝 열린 생각으로 자라게 마련이다.

 

 

 

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달집태우기  달집은 대나무를 다 태우고, 짚달도 다 태우고, 청솔가지도 다 태우고, 이제 불담 좋은 나무 등걸을 태우며 광장을 뜨겁게 달군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불어 서늘하던 마당이 이제 훈훈해졌다.

 

  달집태우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우리의 세시풍속이다. 노현리는 '흥수 아이'가 발굴된 두루봉 선사 유적지, 청남대 가는 길에 있는 용굴, 대청댐의 이무기 전설 등으로 보아 아마도 선사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왔을 것이다. 동서로 나뉜 산줄기를 뒤로 하고 금강의 물줄기 주변의 비옥한 땅을 일구며 풍요롭지는 못해도 근심없이 살아온 마을이다. 그러나 이 비옥하고 행복한 삶의 터전이 그 일부가 대청댐의 건설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관광지로 변했지만 최근까지 대통령 별장으로 쓰였던 청남대가 들어서서 마을 사람들의 심사도 많이 뒤틀렸을 것이다. 대통령이 휴가를 오면, 고기를 낚거나 땔나무를 하지도 못하고, 농사일도 허가를 얻어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내 땅에 들어가는데 자식같은 철부지 군인들에게 사정해야 했으니 얼마나 속이 터졌겠는가? 그러나 누구도 말하는 이는 없다. 이 달집태우기는 말없는 동민들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고, 울분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다잡아 잠재우기도 하면서 풍요로움보다도 마을의 안녕과  다짐을 새롭게하는 행사가 되어 그분들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한바탕 흐드러지는 놀이가 끝나자 사람들은 도 술상에 모여들었다. 한 편에서는 희생으로 쓰인 돼지고기를 안주로 소주잔이 기울어지고, 한편에서는 노래와 춤으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른다. 타는 불꽃과 노랫소리를 뒤로 하고 노현리 모롱이를 돌아 나오다가 아쉬움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올해는 제발 이 마을만이라도 농민의 얼굴에 근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2008.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