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중국 삼청산-황산 트레킹2

느림보 이방주 2010. 9. 27. 22:04

 2010년 9월 24일

 -삼청산 황산 트레킹 둘째날-

 

 삼청산(싼칭산)

 

밖은 아직도 어둠인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연선생이 일어나서 방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늙은이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2시가 좀 넘었다. 내가 잠을 깬 것을 알면 이야기를 걸어 올 것 같아 미동도 하지 않고 자는 척하고 있으니 다시 잠자리에 눕는다.  다시 잠이 들었다. 4시가 좀 넘었는데 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벌써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다. 분명히 5시 30분에 일어나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6시 40분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벌써 일어나 하늘을 보면서 날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할아버지가 다 되었구나. 이 사람이----.

 

그래도 6시간 버스길 피로는 완전히 풀린 것 같다.  대강 씻었다. 옷을 갈아 입었다. 아내가 지극하게 권한 겨울 자켓을 가져갈까 하다가 도로 가방에 넣었다. 작은 배낭에 연선생이 끓인 녹차와 물 한 병을 넣었다. 1회용 비닐 비옷과 얇은 바람막이를 배낭에 넣었다. 판쵸 우의는 늘 배낭에 들어 있다. 등산화를 신을까 하다가 그냥 등산 샌달을 신고 가기로 했다.

 

5시 50분에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니 함께 간 박해순부장과 이효정 대장이 거리를 돌아보고 있다. 부지런한 것인가? 노인네 흉내를 내는 것인가? 거리에는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드문드문 여유있게 달려 출근하는 모습이 보이고, 청소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삼발이 자전거가 이색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여유 있어 보인다. 건물은 그렇게 웅장하지도 초라하지도 않다. 그러나 인구가 150만이라는 데 비해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은  황산을 가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이 머무는 숙소와, 음식점, 상점이 위치한 곳으로 북경, 남경, 상해, 항주 등의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비행기나 열차, 장거리버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거리모습

 

식사는 간단히 하기로 했다. 닭고기를 넣은 흰죽과 만두, 옥수수빵, 이름 모르는 채소, 같은 것으로 배를 채웠다. 연선생이 계속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해서 빵을 한 조각 더 먹었다. 자기는 배에 근육만 있지만 나는 배에 기름이 있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객실에 들어가 짐을 챙겨가지고 나왔다. 6시 40분에 정확하게 출발했다. 삼청산으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날씨도 좋지 않았다. 길잡이는 계속 황산과 삼청산 지역에 대해 설명한다. 가이드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지 우리말은 능숙하지만 설명은 어눌하다. 마치 사랑방 대화처럼 서툴다. 그래서 더 정겹다.

 

황산에서 삼청산 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산길인데다가 노면도 좋지 않았다. 차는 터덜거리고 구비가 많아 위험하다. 운전이 능숙하다고 하나 우리나라 기사들만 하랴? 논농사를 많이 하는지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과 같다. 언덕엔 밭이 있고 언덕 아래에는 논이 있고, 언덕에서 오르면 차밭이 있다. 차는 대대적인 농업을 하는지 큰 밭도 보이고, 가족들이 먹을 만큼을 생산하는지 작은 텃밭도 보인다. 논은 대개 2모작을 수확하는 시기라고 한다. 집은 모두 흰벽에 검은 기와이다.  산동성에서 제남으로 가는 길의 붉은 벽돌집이 생각난다. 가까이 야산이 보이고 멀리 큰 산이 보인다. 안개가 덮였다.

 

삼청산  [三淸山(싼칭산)] 

   

중국 장시성[江西省] 위산현[玉山縣]과 더싱시[德興市]의 경계 지역에 있는 산.

  

사오화산[少華山] 또는 야산[椏山]이라고도 한다. 싼칭산이라는 명칭은 위징봉[玉京峰]·위화봉[玉華峰]·위쉬봉[玉虛峰] 등 3개의 산봉우리가 웅장하면서도 기이한 형상이 마치 도교의 시조인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이 봉우리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둘레의 길이가 100㎞에 이르며, 주봉인 위징봉은 해발 1817m이다.


동진(東晉) 시대의 도사(道士) 갈홍(葛洪)과 상서(尙書) 이렴산(李濂山)이 위징봉에서 수련하고 연단하였다. 자연석(紫煙石) 아래에는 지금도 연단로(煉丹爐)유적과 단정(丹井)이 남아 있다. 도교의 문헌에서는 이 산을 중국의 '72복지(七十二福地)' 가운데 한 곳으로 꼽고 있다. 당(唐)나라 때는 '삼청복지(三淸福地)'라고 불렸다. 고대의 많은 관리와 도사들이 이곳을 찾아 도관을 세웠으며, 시인묵객들이 유람하여 숱한 명구(名句)를 남겼다.


7개의 풍경구역으로 나뉘며, 55개의 명소와 100여 개의 석조석각(石彫石刻)이 남아 있다. 산악은 경치를 위주로 하여 동쪽은 험준하고 서쪽은 기이하며, 북쪽은 수려하고 남쪽은 절묘하다. 예로부터 '타이산의 웅장함[泰山之雄]과 화산의 험준함[華山之險], 황산의 기이함[黃山之奇]과 루산의 수려함[廬山之秀]을 두루 겸비하였다'는 찬사를 받는다.


기암괴석과 기이한 소나무들이 운치가 넘치고, 구름바다와 저녁노을, 달밤, 시냇물과 호수, 폭포 등이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대표적 건물로는 노자궁(老子宮)·갈선관(葛仙觀), 원(元)나라의 삼청관(三淸觀) 유적, 명(明)나라의 삼청궁(三淸宮)·용호전(龍虎殿)·옥령관(玉零觀)·규찰부(糾察府)·구천응원부(九天應元府)·방사우화단(方士羽化壇)·천문화표방(天門華表坊) 등이 있다.


이밖에 황산소나무와 화동황삼(華東黃杉)·향과수(香果樹)·목련·화동철삼(華東鐵杉)·복건백(福建柏)·고산황양(高山黃楊) 등 진귀한 나무들과 석이(石耳)·영지·황련(黃連)·더덕·취운초(翠雲草) 등 진귀한 약재, 큰도롱뇽·삼음조(三音鳥)·천산갑 등 희귀동물들이 서식한다. 연평균기온은 10~12℃이며, 전국중점풍경명승지로 지정되었다.

                                                                               -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삼청산 풍경구 개념도

 

 

두 시간 정도 달려 9 시 10분 경에 삼청산 입구에 도착했다. 진사(金沙)케이블카 출발지인데 우리는 여기서 소변만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걸어서 올라간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다. 입구 삼청산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사람들이 많아 쉽지 않았다. 중구사람들의 대화는 싸우는 것처럼 시끄럽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버스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쏟아 놓는다.

 

10시 10분 경에 방옥동에서 입산을 시작했다. 우리는 방옥동에서 삼청천까지 걷기 시작했다. 초입부터 계단이다. 날씨가 무덥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그러나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계단은 높이가 일정하여 걷기에는 편했다. 그러나 폭이 좁아 불안한 감도 있었다. 처음에 다리가 팍팍해지고 무릎이 많이 아파서 걱정을 했다. 그러나 1시간 쯤 땀을 흘미면서 쉬지 않고 올라가니 다리는 풀리기 시작했다.

 

일행은 모두 산꾼이다. 청주 산사랑산악회 회원들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오르는데 이골이 난 사람들 같았다. 여자 회원들도 계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른다. 나는 나의 다리를 원망하며 그간 운동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

 

산 위에서 공사가 벌어지는지 짐꾼들이 짐을 지고 계단을 올라간다. 기다란 대나무 양쪽에 짐을 매달고 계단을 오른다. 식료품을 메고 가는 이도 있고 건축 자재를 메고 올라가기도 한다. 노인도 있고 젊은이도 있다. 무게에 따라 우리 돈으로 한 번에 2만원 내지 3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월 10만원 안팎의 봉급자가 많다는데 엄청난 돈이 아닌가? 사람들은 원시적인 방법이라고 하지만, 헬리콥터나 모노레일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매우 인간적이다. 간단히 얘기해서 일자리 창출이다. 이렇게 해서 13억 인구를 먹여 살린다. 그들은 돈을 벌러 올라가고 우리는 돈을 쓰러 간다. 삼청산 입장료가 중국돈으로 180위안인가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3만원이 넘는다. 우리 국립공원이 1600원이었던데 비하면 어마어마하다.

 

올라가면서 갑자기 삶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삶이 무엇이기에 저들은 저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살고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오르면서 사는가? 결국 삶이란 죽음이다.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죽음의 두려움에 떨며 말 끝마다 생각마다 '죽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 죽은 이의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 앞에서 삶을 말하는 것을 보면 삶은 결국 죽음이고, 죽음은 결국 삶의 결과이다.

 

계단에는 담배꽁초가 너저분하고 과일 껍질, 휴지, 음료수 병이나 깡통이 널려 있다. 우리나라 산처럼 깨끗하지 못하다. 게다가 군데군데 가래침을 뱉어 놓았다. 유네스코 자연 유산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한 5년 쯤 지나면 중국인들도 우리나라 산처럼 깨끗하게 보존할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중국인들은 아직 산을 자연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遺産으로 보지 않는다. 산은 산일 뿐이지 재산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山을 産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그들은 산에서 담배를 피운다. 아주 떳떳하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삼청산개념도

 금사 휴게소에서-유네스코 자연유산을 자랑한다

 산장

 방옥동 산문

 매표소가 있고 입구는 철문이다-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계단

 음료수를 메고 가는 짐꾼

 멀리 보이는 천문산장 우리는 케이블카를 두고 걸어 갔다.

 끝없는 시멘트 계단

 살색 티셔츠를 입고 변기 두 개를 를 메고 가는 짐꾼- 저기 올라 앉아 똥누는 사람 참 편하겠다

 석천정이란 정자가 있다. 쉼터 -지저분했다.

 천문산장은 아직 멀었다.

                 암석 아래에서

 

천문 산장에 오르기 전에 석천정이라는 정자에서 휴식을 취했다. 초콜렛을 하나씩 먹었다. 땀이 온몸에 뱄다. 그러나 쉬는 것도 잠깐 사람들이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 천문 산장에 가면 이른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쯤 오른 다음 해발 1600m 선에서 바위벽에 만들어 놓은 시멘트 다릿길을 걷는다고 한다. 정상은 1800이 넘지만 오를 수 없다고 한다.

 

산장 바로 아래 한 움집을 발견했다. 한 소녀가 나와서 바위 아래서 물을 긷고 있다. 여기저기 밭을 일구어 채소를 가꾸기어 놓았다. 저 소녀는 여기서 무얼 하면서 살까? 어떤 꿈을 가지고 살까? 어떤 미래를 설계할까? 궁금했지만 알아볼 수가 없다. 나름대로의 어떤 삶이 있을 것이다. 땀은 많이 났지만 그렇게 두 시간 쯤 걸어 天門山莊에 도착했다. 산장은 공사로 너저분하다 이런 절경에 왜 이런 건물을 짓는지 모른다.  

모두 힘든데 한사람만 희희낙락

 산장 아래 움집에 사는 소녀

 기암괴석 아래 천문 산장

 

 

 산과 녹슨 건축 자재

 이효정 대장

산장 아래에서

                 연선생-철돌이

                 절경을 배경으로

                   산문을 지나는 김상혁 교수

 산장 아래 안내판

 기암과 오성적기

 절벽

 주변 암봉

 천문산 신선도

 

산꾼들의 걸음이 빨라 주문해 놓은 점심 식사가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그 대신 우리는 산장 아래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다 보는 세계는 어느 나라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마에 둘렀던 수건을 비트니 땀이 주루룩 떨어진다. 길잡이의 말과 다르게 점심은 먹을만 했다. 그러나 역시 반찬이 조금 부족했다. 이효정 선생님이 배낭을 뒤적여 더덕장아찌, 매실장아찌, 볶음고추장을 내어 놓았다. 밥을 한 주걱 더 먹을 수 있었다. 사모님의 항상 준비된 내조가 사람을 감탄하게 한다.

 산장에서 휴식

천문산장에서 -힘들어

 산장 아래 휴식하는 회원들

 점심식사 -밥은 푸실푸실하고 찬이 부족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쉴 틈도 없이 다시 오르기에 나섰다. 젊은 길잡이는 지칠 줄을 모른다. 축구 선수였다고 한다. 2002월드컵 이야기를 계속해댄다. 교포 3세인 그는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정말 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잘 살아야 한다.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하고 동포들에게 중국을 소개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 오르막 1시간 1600m선에서 평지 2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오르막 1시간이란 말에 기가 죽었다. 그러나 막상 걸으니 그렇게 힘들지 않다.

 

산은 우리나라 설악산과 비슷한 괴암괴석이라 장가계처럼 신기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절경이다. 더구나 운무에 휩싸인 산의 모습이 보일듯 말듯하여 더 감칠맛나게 해 주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한꺼번에 다 벗고 보여 준다면 무슨 멋이 있을까? 중국 영화를 보면 붉은 커튼이 드리운 침실에서 엷고 투명한 잠옷을 걸치고 아름다운 여체가 보일듯 말듯한 중국 미녀가 나오기도 한다. 삼청산 암봉들이 지금 그것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탄성을 연발하면서 걸었다.

점심을 먹고 오르기 시작

시작되는 절경

 

 암봉들

 암봉을 보며

 암봉들

 암봉들

 이제 평지

 암봉들

 운무에 싸인 여인

 

석벽에 쇠를 박아 시멘트 서까래를 만들고 때로는 기둥을 세워 받치고 돌길을 만들었다. 적어도 세 사람 정도는 나란히 걷거나 두 사람이 비껴 갈 수 있는 넓이이다. 우리는 석벽에 기대어 절경에 감동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자연을 훼손할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중국은 자연을 훼손하고 우리는 그 자연을 구경한다. 안개가 없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암벽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한폭의 그림이다. 박부장은 진경산수화를 여기서 본다고 했지만 나는 관념산수화를 여기에 재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졌다.

 

중국인들은 우리 못지않게 잡다한 믿음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003년 처음 중국에 가서 태산에 올라갔을 때, 1540m 고지에 각종 신앙적인 구조물들에 놀랐다. 게다가 정상 신전 앞에 자물쇠가 수없이 매달려 있었다. 자신들의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소원을 빌고 자물쇠로 채워 놓으면 그 소원이 흐트러지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들이 사랑의 약속을 열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물쇠에 새겨진 글을 보면 '사업 성취' '건강 기원' 가족 행복' 같은 문구 들이 많이 있었다. 장가계에도, 계림에도 높은 산에는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유물사관을 기조로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허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소망인 모양이다.

 여유

 서해안기

 석벽에 낸 길

 석벽에 붙어

 무너진다면

 태산에서 삼청산까지 중국인들의 자물쇠에 대한 믿음

 운무

 저 위에 섰을 때는 모른다

 구름끼길 다행

 운무 속에서

 위험천만

 허공에 떠서

 허공에서

 운무와 석벽 그리고 소나무

 저렇게 모여 있어도 되나

암벽 사잇길

 

 허공에서

 

천길 허공에 놓인 흔들다리 -흔들지마

 운무속에서

어떻게 혼자 되었나

끝없는 운무와 암봉들

 암벽에 기대어

 

기암괴석의 절경은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3시 40분쯤 케이블카 출발지에 집결했다. 거짓말처럼 산죽이 무성한 육산이 등장하고 모롱이를 돌아 서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중국인들이 모여 있다. 항상 싸우듯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또 그렇겠지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 싸우고 있었다. 길잡이들끼리 싸움인지 길잡이와 관광객 사이의 싸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버스가 오지 않아 한동안 산 입구에서 휴식을 취했다. 황산시에 도착하여 한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김치찌개였다. 한식집도 넉넉하게 찬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끝

 진짜 싸우는 중국인들

 케아블카에서 본 암봉들

 삼청산 케이블카 출발지

 산 아래에서 휴식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명청 시대의 고가들이 있다는 거리를 돌아 보았다. 오래된 건물들이 있었으나 개조한 흔적이 역력하였다. 관광 개발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거리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은은했다. 계림의 거리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지도 않았다. 아무도 물건을 사는 사람도 없다. 욕심나는 제품들은 많이 있었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가였다. 거의 골동품 값을 받으려는 것 같다. 병풍이나 고서화가 탐이 났지만 내게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명청시대의 거리 풍경

초상화 그리는 사람과 소녀

  

 거리의 모습

 한산한 기념품 가게

 서구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가

 

피로를 모르는 사람들은 맥주파티가 벌어지는 모양이다. 아늑한 호텔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몸을 씻고 닜는데 박부장이 자기 방으로 오라 해서 맥주 몇잔을 마셨다. 박부장, 이효정 선생님, 김교수 등 몇 분과 참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발 내 디디면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난다. 11시까지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이런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