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5일
-삼청산 황산 트레킹 셋째날-
황산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황산 트레킹 날이다. 큰 산 가기에 앞서 나의 소망을 자제하는 화두는 같다. 사람이 산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산이 사람을 용납할 뿐이다. 백두산 트레킹을 떠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그 후 중국의 명산을 들을 다닐 때 늘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때마다 실패한 적이 없다. 고치령에서 백두대간에 첫발을 디딜 때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8시간 동안 억수같은 비를 맞았다. 오늘 비가 내린다고 한다. 큰비는 아니라도 비가 내리면 운무가 볼만할 것이다. 소나기가 한 번 쫙 쏟아 부으면 비에 씻긴 암봉들이 운무를 휘감고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새벽에 연선생은 예외없이 4시에 일어나서 부스럭 거린다. 창밖을 내다보면서 비가 온다고 두런거리기도 하고 일기예보를 본다면서 TV를 켜기도 한다. 나는 더 자야 한다. 잠을 충분히 자야 산에서 현기증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잠은 달아났다. 일어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6시 40분에 버스에 올랐다. 아침식사 메뉴는 어제와 똑 같다. 그래도 이렇게 일찍 밥을 주니 먹을 수 있으니 황송하다. 황산 입구에 도착하여 셔틀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길잡이는 아주 신속하게 자리를 잡는다. 셔틀 버스는 좁고도 구불구불한 길을 잘도 달려 자광각에 도착했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또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역시 길잡이는 신속하다.
황산
1. 위치 및 특징
안후이성의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으며 전체면적 1,200km2 로서 서울 면적의 약 2배에 달하며 주 관광지역 면적은 154km2 정도가 개방되어 있다. 황산은 전체구역을 前海,東海,西海,北海,天海로 나누어져 있으며 황산을 보지 않고는 산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지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며 특히 기암괴석,특이한 소나무,운해,온천등이 유명하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 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2004년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오악(중국의 5대 명산 즉 태산,화산,형산,항산,숭산)을 보고 나면 일반 산이 눈에 들어 오지 않고 황산을 보고나면 오악도 눈에 차지 않는 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며,황산의 최고봉은 1864m의 연화봉이다.
황산에는 연화봉을 비롯,광명정(1,840m),시신봉,배운정,몽생필화,청량대,사자봉,백아령 비래석을 비롯 아름다운 기송들이 운해와 더불의 천상의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황산풍경명승구는 중국안휘성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황산산맥의 핵심이며 제일 아름다운 부분이다.황산 총 면적은 1200평방키로 인데 그중에서 154평방키로만 풍경구로 되여있다.황산풍경구에서 최고봉은 연화봉이며 해발이 1860메터이다.
황산은 북경 만리장성 .장강.황하와 마찬가지로 중화민족을 상징하고 있으며 세상에서 다시 찾을수없는 자연경관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황산을 보고 나면 태산의 웅위로움과 화산의 험준함과 형산의 구름바다와 로산의 폭포를 여기에서 다 찾아볼수 있다 .때문에 "등황산 ,천하무산"이라는 말이 있다.황산은1985년에 중국10대 풍경명승구에서 유일한 산악풍경명승구이며 1990년 10월에 유네스코에서 확인되여 "세계문화와 자연유산 명록"에 편입되였다.
황산은 옛날에 이산이라고 했는데 산위 암석이 검은색을 많이 띄웠기에 검은 것이 많다는뜻으로 지은 이름이다.이산이 황산으로 된것은 전설에서 선원황제가 황산에서 장생불로약을 만들고 온천에서 목욕하고나서 신선이 되여서 하늘로 올라 갔다는 이야기를듣고 당나라황제가 천보6년(기원747년)에 황산이라 고친것이다.뜻인즉 황제의 산이라는뜻이다.
황산은 중국10대풍경명승구중의 하나이다. 옛날 사람들은"5악을 돌아보면 다시 볼 산이 없고 황산을 돌아보면 5악도 눈에 차지를 않는다 ."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황산은 자기만의 특이한 매력으로 방방곡곡에서 오시는 손님들을 맞이 하고 있다.황산은 산이 없으면 기이한 돌이 없으며 돌이없으면 소나무가 없으며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함이 없다고 한다.황산은 기송. 괴석.운해.온천.동설로 유명하다.
황산은 천연적인 동물원과 천연식물원이라는 아름다운 이름도 갖고 있으며 이상적인 피서지로 유명하다. 황산은 4계절이 뚜렷하기에 계절마다 특이한 경치를 구경할수있으며 해발이 높기에 시시각각으로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만끽할수 있다.
2. 역사적 배경
진시황전에 황산을 삼천자도(三天子都)라 했다고 한다. 진시황때 부터당천보년(唐天寶年) 까지는 의산( 山)이라 했으며 전설에 의하면 중국인의 선조 헌원 황제가 이산에서 도를 닦으면서 황산의 기를 받아 신선이 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당명황(唐明皇)이 이산을 황산이라 고쳤고 그 때부터 오늘 까지 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황산의 형성은 오랜 지질학적 변화를 거쳤다. 지금부터 약 2~3억년 전에는 이곳이 망망 대해 였는데 약 1억년전에 연산운동(燕山運動)으로서 용암이 침입 되면서 오늘의 황산의 화강암을 이루었고 몇 천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지각 운동과 침식 풍화 작용을 거쳐 오늘의 황산은 기암 괴석들이 숲을 이루어지게 되였고 그 바위 숲에 동양화에서 밖에 볼 수 없는 기송들이 줄지어 그야말로 장관이다.
중국의 산을 떠 올릴 때 먼저 생각 나는 산이 황산이고 중국 10대 명승지 가운데 유일한 산으로서 1990년 12월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명(明)나라때 중국의 유명한 지리학자 이자 여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이 1616년, 1618년 두 번 황산을 탐험하고 난 뒤 말하기를 중국에서 5악 (泰山, 華山, 嵩山, 衡山, 恒山)을 보면 다른 산을 볼 필요 없고 황산을 보고 나면 5악도 필요 없다고 극찬했다.
황산시(黃山市) 둔계(屯溪)구에서 약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있으며 황하(黃河) 양자강(長江)과 더불어 중화민족(中華民族)의 상징이기도 하다. 황산은 또 많은 관광객 들이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코스이며 많은 국내외 명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일찍 1979년 7월 중국 개혁 개방의 선두주자인 등소평(鄧小平)은 75 세의 고령에 도보로 황산을 다녀오셨으며 2001년 5월에 강택민(江澤民) 총서기는 황산 방문할 때 요망천도의 객송(遙望天都倚客松),차지몽필서기경(且持夢 筆書奇景), 연화 시신 이비봉(蓮花始信兩飛峰), 일파운도 만리홍(日破雲濤萬里紅). 이라는 시를 남겼으며 주용기 ( 朱鎔基 ) 이광요(李光耀) 진의(陳議) 등 많은 명인 들도 황산에 발자취를 남겼다.
셔틀버스는 구비 구비 몇 구비를 돌았는지 우리가 차멀미가 날 때쯤 자광각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발빠른 길잡이는 미리 예약을 해 놓았는지 금방 줄을 서고 금방 차에 오를 수 있었다. 황산 관람은 입장료가 230위안 키이블카가 80위안 왕복 160위안 합계 390위안이 든다. 우리 돈으로 7,8만원이 드는 관광이다.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주말을 맞아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몰려 온다. 내국인이나 외국인이나 예외가 없다고 하니 그 수입만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것을 황산시에서 관리하고 중앙정부에 세금을 낸다고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는 산은 아름답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하여 산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출발지 도착 입구에 모인 인파 자광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산 -안개 암벽
옥병루에서 케이블카에서 내려 연화봉까지 걷기가 시작되었다. 비가 몇 방울 떨어졌다. 확 쏟아져 안개가 걷히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산은 소망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길잡이는 황산은 오르막 계단이 별로 없고 조금 오르다가 또 평지를 걷는다고 해서 걱정을 안했는데 계속 오르막 계단이다. 어제 오르는 계단을 많이 걸어 무릎이 정상이 아니라 더욱 걱정이었다. 그러나 얼마만큼 걸으니 다리는 다시 풀렸다. 안개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암벽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기묘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거리가 떨어져도 보이지 않았다. 산은 우리를 받아 주지 않은 것이다.
걸어가는 길만 보인다. 이곳은 등산로 안내를 돌에 새겨 걸어 놓았다. 올라가는 계단도 대개 돌이다. 그러나 암벽에 붙인 다리는 돌과 시멘트이다. 도대체 이런 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누가 처음 했는지 모른다. 나무를 베지 않고 시멘트 다리에 구멍을 뚫어 보호하였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에 서 있는 나무는 모두 보호대로 씌워 놓았다.
구름은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기암괴석이 보일 듯하다가도 한떼의 구름이 휘몰아 오면 금방 운무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또 구름이 없다면 이 천인단애에서 현기증을 어찌 할 것인가? 황산은 년간 280일 정도 구름에 덮인다고 하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를 또 한 번 온다는 보장은 없다. 구름 속에서 보는 절경이 이러한데 구름이 걷히면 어떠할 것인가?
옥병루 삭도에서 연화봉 가는 길 돌계단으로 오르는 회원들 인조 암석 속에 있는 음료수 가게 영객송 구름 속에서 안 보여 저 바위가 밝게 보이면 어떨까?
바로 구를 것 같아
기대지 못했네 How do you do
절벽을 조심히시오
연화봉 정상에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고 길은 비좁았다. 게다가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길이 너무 좁아 일방통행을 하도록 했는데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다. 길잡이가 반대쪽 내려오는 길로 올라가라고 해서 성큰성큼 올라갔다.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는 돌계단은 매우 위험하게 만들어 놓았다. 거기서 바라보니 온 황산이 다 내려다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운무속으로 상상만 했다. 정상석을 아주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거기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비켜 주지 않는다. 한 중국인 젊은 여자는 정상석을 끌어안고 10여장을 찍는다. 나는 우리 일행을 재빨리 찍어 주고 대신 내가 가서 섰는데 누가 찍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비옷을 정상 바위 틈에 마구 벗어 던졌다. 정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도 있다. 올라간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이름조차도 구름인 백보운제, 오어봉, 해심정을 거쳐 천해로 내려간다. 암봉들은 꼭 조각을 해서 얹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빈말로 '이 사람들 저건 도끼로 다듬어 올려 놓았구만'하고 말했더니 지나던 회원 한 분이 ;정말 그럴까요?'하고 받는다. 빈말을 후회했다. 사실 확연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황산 제일봉인 연화봉에서 암봉 새겨놓은 것 같은 암봉 정말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이렇게 간신히
바위 틈에서- 거기에 길이 있다 돌고 돌아서 안개 속에 거대한 암봉
이건 정말 조각품이 아닐까
암벽 위에 이런 누각
이렇게 바위를 돌고 돌아 솔숲이 우거진 천해 산장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마당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시끄럽다. 우리는 안내를 따라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같이 깨끗한 식당이었다. 매우 고급스러웠다. 음식은 다른 곳과 비슷하다. 밥은 많이 주는데 찬이 부족하다. 여자 회원들이 김을 내놓았다. 이 대장이 더덕장아찌를 내놓았다. 밥을 한 공기 더 먹을 수 있었다. 중국 식당에서 차 인심은 끝내 주는데 여긴 차 인심도 별로였다. 주전자에 차가 떨어져 손짓을 하면 거기 끓는 물만 부어가지고 다시 온다. 그냥 그 물이다.
식사를 마치자 숲길을 걸어 서해 대협곡 트레킹을 간다고 했다. 우리는 구름이 제발 걷치기를 빌었지만 그대로였다. 서해 대협곡 입구에 이르니 하늘이 갑자기 훤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바람은 금방 하얀 안개를 암벽에 몰아 부친다. 천해에 모인 사람들 식당에 왠 군인이 보초를 선다-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과 운무의 조화 암벽-소나무 가끔씩 보여 주는 절경 이렇게 걷혔다가 이렇게 감춘다 그러다가 또 이렇게 보여주고 오르막길도 있고 이건 진경산수화 보였다가 운파기암 가까이서 보니 정말 구름을 찢고 솟아오른다 마침 보였다. 희미하게 가까이서 진경산수화- 신선이 저기서 놀까
서해 대협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암봉들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철문을 지나 암벽을 뚫어 놓은 굴길을 지났다. 그리고는 전인 단애의 절벽에 붙여놓은 잔도가 있다. 사람들이 거길 걸어간다. 우리도 그 길로 가야한다. 벽에 붙어 바라보는 세상은 그냥 하얀 운해 뿐 다른 것은 없었다. 크고 작은 암봉들이 소나무를 매달고 하얗고 엷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듯하다. 위험 천만한 것도 잠깐 안개가 휘몰려 오면 보이는 것은 없다. 서해 대협곡이 황산 관광의 절정이라는데 우리는 구름만 봤다. 드디어 서해 대협곡 입구를 지나는 이대장- 어울리지 않는 철문 서해대협곡은 이렇게 시작-나도 저길 지났는데 구름 속에서 바위 밑 잔도를 걸어 올라가는 이효정 대장 구름과 암봉 언뜻 보이는 것은 촛대 바위인가? 안내 지도 보이는 것도 없는데 오르막 계단 가는 길은 잃지 않게
박부장 왼쪽부터 이대장, 연선생, 박부장 열쇠꾸러미들
계속 올라 그래도 이렇게 여기가 어디인가 -구름 속에서 또 올라 암벽에 서서 그냥 가보는 거야- 안 갈 수도 없어
이대장과 함께
하늘의 다리 보림교에서 이대장, 김상혁교수 허공에 놓인 보림교에서 김상혁교수님과 함께 박부장과 함께
저기 내가 서 있네 벽에 매달린 바윗길(잔도)
사실은 떨렸다
백아령 산장에서 잠시 쉬는 동안 일행 가운데 두 사람이 따라 오지 않았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충분히 쉴 수 있었다. 자켓을 벗고 땀을 말렸다. 땀은 금방 식었다. 그러나 목에 걸친 수건은 순면이라 그런지 손으로 쥐어짜니 땀이 흘렀다. 그 때 우리반 정예린 엄마가 문자를 보냈다. 우리반의 예린이와 지선이가 토론 대회에 나갔는데 결승에 올랐다고 한다. 나는 곧 축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황산 여행 중이라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했음을 알렸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다른 길로 간 것을 발빠른 길잡이가 가서 찾아 왔다. 곧 출발했다. 내리막길이다. 1시간쯤 걸어 백아령 역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탔다. 길잃은 사람들을 기다리며 끝
운곡사 역에 도착하니 전신이 뻐근하다. 계단을 내려 오는데 무릎이 정상이 아니다. 종일 구름만 봤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맑은 날이면 운무 속의 황산은 보니 못했을 것이다. 황산은 연간 280일 정도가 안개 속이라고 한다면 황산의 경관이 유명해진 것은 안개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짜 황산을 본 것이다. 다 보이면 아름답지 않다. 어차피 맑은 날 황산의 모든 것을 보는 것과 안개 속의 황산을 보는 것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위안을 삼았다.
셔틀버스를 기다려 타고 다시 관광버스를 탔다. 황주로 돌아오는 동안 가이드는 자기 살아온 삶을 이야기한다. 중국에 나와 살고 있는 우리 동포의 삶이 다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이 일제 시대에 일제의 억압을 피해 간도로 이주하여 어렵게 살림을 일구어 터전을 마련한 이들의 삼세이다. 서른세 살이라고 하니 우리 아들과 비슷한 나이이다. 순탄치 않은 그들의 삶도 조국의 국가적 위상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황산시에 돌아와 농산물시장에 들러 깨를 샀다. 남들이 다 사서 나도 샀다. 내가 좋아하는 기장이 하도 싸기에 한 봉지 샀다. 저녁 식사는 삼겹살로 했다. 삼겹살이 약간 부족해서 함께 앉은 분이 추가했다. 내외가 함께 온 초등학교 교사이다. 후배라고 인사를 한다. 감사하게 먹었다. 김치가 맛있고, 된장이 우리나라 쌈장 맛이며, 마늘과 풋고추를 우리나라 삼겹살 식당에서 올라오는 것과 똑 같았다. 밥도 공기밥이고 쌀도 마치 한국쌀 같다. 맥주를 한두 잔 받았다.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저녁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고 했다. 장가계 여행시 받은 발마사지를 생각하니 내키지는 않았지만 몸이 너무 뻐근해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계림 여행 때의 받은 발 마사지는 하루의 모든 피로를 풀어 주었던 기억이 나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마사지사들이 너무 어려 힘이 없다. 안쓰럽기만 했다. 그래도 피로는 많이 풀렸다. 많이 걸었기에 발과 무릎이 많이 아팠는데 많이 좋아졌다.
우리는 객실에 들어 내일 일찍 떠날 것을 대비해서 짐을 정리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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