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청산 황산 트레킹 1
-제 1일 - 청주에서 황산까지
2010년 9월 23일
우리가 산을 정복할 수는 없다. 다만 산이 우리를 받아 줄 뿐이다.
백두산 트레킹에 참석했을 때 天池를바라보며 깨달은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황산 - 삼청산 트레킹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주변 사람들의 덕이다. 처음에 우리 백만사의 이효정 대장으로부터 의견 타진이 왔을 때 트레킹이란 말에 겁부터 났다. 나보다 먼저 다녀온 아내는 그렇게 겁먹을 일 아니니 다녀오라고 했다. 또 이대장과 함께라면 어딘들 가지 못할까하는 생각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곧이어 박해순 부장이 간다고 했고, 연선생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바로 간다고 해서 우리 네명은 청주 산사랑산악회에서 계획한 황산 -삼청산 트레킹에 합류하게 되었다.
추석연휴에 전통체험 방학까지 있어서 3박4일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적지않은 경비가 아내에게 미안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자식들이 장성해서 조금씩 보태주는 흐믓함도 맛보았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새로 구입한 것은 없다. 중국의 태산 - 우리 땅인 백두산- 일본의 후지산- 중국의 장가계 원가계
- 중국의 계림 을 여행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백두산 트레킹 대나 후지산 트레킹 때, 그리고 장가계 원가계 때 좋은 날씨, 국내 여행에서 한라산 눈길 등반에서 좋은 날씨가 더 자신감을 갖게 했고 심지어 신은 우리 백만사의 편이다 라는 오만을 갖게도 했다.
한가위날 원주에서 차례를 지내고 돌아와 오후에 가방을 꾸렸다. 그곳 날씨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인터넷 예보 때문에 준비가 우왕좌왕했다. 할수없이 한여름 옷과 가을옷 겨울옷을 함께 챙겼다. 신발은 경등산화, 등산 샌달을 준비했다.
그런데 아침에 늦잠이 들었다. 아들이 깨우지 않았더면 매우 허둥댈 뻔했다. 요기를 하고 아들이 청주체육관까지 태워다 주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는 분은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없을까 하고 잠시 참담한 심경에 빠졌다. 결론은 간단하다. 한 발 가까이 갈 줄 모른다. 관념의 끈에 얽매어 자유를 스스로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삼거리 휴게소
인천공항 가는길의 절경
예정대로 6시 30분에 정확하게 청주 체육관을 출발했다. 바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고속도로에는 한가위 이튿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한가하다. 천안휴게소에 아침식사 시간을 주고 7시 30분에 출발했다. 나는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긴 시간을 할 일이 없었다. 차는 점점 늘어났다.
공항에서 짐을 부치는 회원들
9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솔자가 있어 편안하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아 서둘러 떠난 것이 무색했다. 1시간을 기다려 여행사 사람과 미팅을 하고, 짐을 부치고 출국수속을 했다. 탑승구에 가서 계속 기다려 12시 25분에 탑승이 시작되었다. 정현종의 시집을 준비해 가기를 잘했다. 해설부터 읽었는데 죽음과 삶의 의미 규정이란 말을 했다.
상해로 향하는 중국동방항공은 12시 55분 바다를 박차고 하늘로 올라섰다. 아름다운 구름이 바다 위에 무늬를 놓고 있다. 창가에 앉아 지상을 내려다 보는 멋도 즐길만 하다. 어린 시절 하늘에 반짝반짝하며 떠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나도 그것을 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마 그 때 지금을 꿈꿨다면 더 큰 것을 이루었지도 모른다. 나는 꿈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꿈을 가질 수 없는 촌놈이었다. 비행기는 이윽고 아름다운 제주를 서으로 비껴서 날아간다. 한라산과 윤곽이 뚜렷한 해안선이 보인다. 그것도 잠깐 우리 바다를 건너 서쪽으로 계속 날아간다. 기내식이 나왔다.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배가 고파서인지 먹을만했다. 먹고나니 포만감에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어느덧 상해의 하늘이다. 경지정리가 아주 잘 되고 운하인지 수로인지 그림처럼 배가 지나가고 있다. 잘된 농경지에 길이 나 있고 길과 길이 만나는 지점에 공식처럼 건물이 있다. 건물은 모두 2,3,4층이었다. 단층 건물을 보기 힘든다. 아열대 기후이기에 1층에서는 습해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당이 정해준 공식처럼 사는 방법에 익숙해서 세상이 바뀌어도 늘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하이는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평화로워 보였다.
하늘에서 본 상해 시가지 모습
중국버스에 올라-자리가 몹시 비좁다.
저장성에서 안후이 섬으로 가는 톨게이트
후게소는 한산하다
상해는 세계적 도시이다. 인구가 1800만이라고 하니 과연 그럴 만하다. 도시가 얼마나 넓은지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아도 사방에 지평선이 보인다. 산이라고는 없다. 그렇게 상하이 푸동(浦東)국제공항에 내려 앉았다. 상하이는 중앙에 흐르는 浦江을 중심으로 동은 포동, 서는 포서, 포서가 구 시가지이고 포동이 신시개발 지역이라고 한다.
중국의 주요도시
상하이
중국 양쯔강[揚子江] 하구에 있는 중국 최대 도시.
중국 양쯔강[揚子江] 하구에 있으며 면적은 6341㎢, 인구 18백만이라고 한다.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2200만이라고 하니 세계적도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약칭하여 ‘후[沪]’ 또는 ‘선[申]’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동부 해안의 중간 부분에 양쯔강(揚子江)이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으며, 해안선 길이는 220㎞이다.
전국시대 초(楚) 나라 춘신군(春申君)의 봉읍이었으며, 송(宋) 나라 때 진(镇)을 설치하여 상하이(上海)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1927년 시(市)가 설치되었고, 현재는 중국의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로 중요한 공업기지이며, 항구와 무역, 과학기술, 정보, 금융의 중심지이다.
면적은 약 6000㎢이며, 행정구역은 황푸[黄浦]·푸둥신[浦东新]·자베이[闸北]·창닝[长宁]·양푸[杨浦]·푸퉈[普陀]·루완[卢湾]·징안[静安]·바오산[宝山]·쉬후이[徐汇]· 홍커우[虹口]·자딩[嘉定]·민항[闵行]·쑹장[松江]·진산[金山]·칭푸[青浦]·난후이[南汇]·펑셴[奉贤] 등 18개 구와 충밍[崇明]의 1개 현(县)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화와 현대화가 이루어진 대도시이자 중국의 대외개방 창구이며, 주요 수출입 국경출입구이다. 일본·미국·오스트리아·프랑스·영국·이탈리아·독일·러시아 등 12개 국가의 총영사관이 주재하고 있다.
육지의 역사가 비교적 늦은 편으로, 인류문화의 발달이 시작된 것은 송(宋) 나라와 원(元) 나라 무렵이었다. 대표적인 역사적 인물로는 원나라 때의 여성 방직 발명가인 황도파(黄道婆)가 둥완[东湾] 출신이며, 명(明) 나라 때 《농정전서(农政全书)》를 지은 서광계(徐光启)는 쉬자후이[徐家汇] 출신이다. 공업과 항구무역이 발달하면서 점차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성장하였다.
남송(南宋) 시대에 진이 설치되고, 명(明) 나라 중기에 왜란(倭乱)을 방비하기 위하여 성을 건설한 이래 오늘날까지 400~5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구(舊) 시가인 펑후[棚户) 지역은 건축물이 심하게 난립하여 건국 이후 대대적인 시가지 개조를 추진하여 공입과 인구가 도심으로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을 개선하였다.
시내에 지하철과 고가도로를 건설하고, 외곽 지역에 새로운 주택가를 많이 조성하는 한편, 근교에 위성도시들도 형성되었다. 푸둥신구를 신속하게 개발하여 현대화와 국제화를 겸비한 대도시로서 완벽한 기능을 갖춘 상하이를 건설해나가고 있다. 양푸대교[杨浦大橋]와 둥팡밍주타[东方明珠塔], 상하이의 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대극장 등 대형 현대화 건축물이 도시의 멋을 더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중국 공항의 입국 수속은 정말로 말 그대로 만만디이다. 대기선 밖에서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 사진을 들여다 보고 또 보고 바르게 서 보라고 주문하고 바로 어디론가 데려다가 다시 알아볼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짐을 찾고 현지 가이드를 만나 기다리는 버스로 갔다. 가이드는 30대 초반의 젊은 교포 3세이다. 말을 아주 잘하고 친절하다. 어딘가 서툴어 보이지만 그만큼 순수하다. 씩씩하고 자신 만만하다. 버스는 먼저 항주로 달려가서 거기서 다시 황산시까지 가야한다고 설명한다. 6시간은 족히 달려야 한다. 고속도로에서도 터덜거리는 버스, 시속 80km에 못박힌 '만만디'에도 중국여행이 다섯번 째이니 이제 이력이 날만도 하다. 항주시까지는 2시간 계속 들판이다. 다시 황산시까지 4시간이다. 항주를 지나 서쪽으로 달릴수록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2모작 추수 때가 되었다고 하는 논은 서서히 다랭이로 바뀌더니 뽕밭이 조금씩 보이고 차밭이 보인다. 차밭은 우리나라 보성 같은데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저장성 입구에 있는 주유소
항저우시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성도(省都)이다.
인구 180만정도
첸탕강[錢塘江]의 하구에 위치하며, 서쪽 교외에 시후호[西湖]를 끼고 있어 쑤저우[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졌다. 7세기 수(隋)나라가 건설한 강남하(江南河:大運河의 일부)의 종점으로 도시가 열려 남송(南宋)시대에는 수도가 되었으나, 임시수도라는 뜻에서 행재(行在)라고 하다가 임안(臨安)이라고 개칭하였다. 10세기 이후에는 외국선박의 출입도 많았고, 원대(元代)에는 M.폴로, 이븐 바투타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행재의 와전인 '킨자이(Khinzai)', '칸자이(Khanzai)' 등의 명칭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19세기에 태평천국군(太平天國軍)의 싸움으로 파괴되었고,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상하이[上海]가 개항되자 항구로서 번영은 상하이에 빼앗겼다. 오늘날 성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녹차(綠茶)의 최고급품으로 알려진 룽징차[龍井茶]의 산지이며, 전통적인 직물공업을 바탕으로 근대적 설비에 의한 견(絹) ·면직포 ·염색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교외의 새로운 공업지대에는 1957년에 철강공장이 세워져 공작기계 ·동력기계 ·보일러 ·베어링 ·전선 관련공장이 들어섰다. 중국 정권 성립 후 황폐해진 시후호를 5년 동안 정비하고 호반의 별장 등을 정리, 대공원을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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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를 떠나 항주를 거치는 동안 특이한 것은 가옥의 모습이다. 2층에서 4층까지 집들이 똑같이 흰벽에 검은 기와이다. 집 모양은 거의 동일하다. 2004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산동성의 집들이 마치 70년대 이전 주둔 군대의 임시 막사 같은 건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중국은 이제 사회주의를 벗어나 거의 자본주의가 되었다는 길잡이의 말이다. 공산주의 경제 체제에서 낳고 자란 그가 어떻게 자본주의를 알겠는가? 대학 육을 받았다지만 과연 사유재산 보장 뿐만이 아닌 자본주의의 참맛을 알 수가 있을까
우리가 탄 차는 8시가 되어서야 황산시에 도착했다. 밤이다. 거리는 어둡다. 그러나 호텔만은 환하다. 호텔에 들기 전에 식당에 가서 현지식으로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맛은 참을 수 있는데 찬이 부족했다. 추가를 부탁하니 한 접시에 50위안이란다. 중국의 이런 인심은 처음이다. 우리는 日普國際大酒店에 투숙했다. 나는 연선생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일보국제 대호주점
황산시 [黄山(황산), Huangshan]
중국 안후이성 동남부에 위치한 도시. 인구 150만명(2004년 기준)
중국의 명산으로 꼽히는 황산[黄山]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북서쪽은 츠저우시[池州市], 북동쪽은 쉬안청시[宣城市], 남서쪽은 장시성[江西省], 남동쪽은 저장성[浙江省]과 접한다.
현재 시의 일부인, 서현[歙县]과 이현[黟县]이 들어선 것은 2천여 년 전이다. 진나라 때는 신안저우로 불렸으며, 송나라에 와서 명칭이 후이저우[徽州]로 바뀌었다. 1987년에 지역의 명물인 황산의 이름을 따서 황산시로 개칭하였다.
중국의 명산이자 지역의 명물인 황산은 중요한 관광명소이며, 1990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치먼현에서 생산되는 치먼홍차[祁门红茶]는 중국의 명차로 선정된 이곳의 특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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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다무도회(茶務都會)라 불릴 만큼 차 거래가 왕성했던 둔계시와 서셴, 슈닝셴, 이셴, 황산풍경구 등과 함께 황산시로 편입이 되었다. 따라서 둔계역은 황산역으로, 둔계공항은 황산공항(황산둔계공항)으로 그 명칭이 모두 바뀌었다.
황산시는 황산을 가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이 머무는 숙소와, 음식점, 상점이 위치한 곳으로 북경, 남경, 상해, 항주 등의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비행기나 열차, 장거리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황산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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