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것대산이나(病床일기)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 병상에서 19일째

느림보 이방주 2009. 4. 8. 13:44

3월 3일 (화)

 

아침에 4시에 기상, 조심 조심 밖으로 나갔다. 몸을 씻었다. 옷은 갈아입지 않았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려 6시 40분쯤 지하 방사선과에 내려갔다. 사진을 찍었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담당 의사가 올라왔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한다. 아직은 염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한다든지, 말을 많이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수업을 하면 정말 안 되고 집에서 한 일주일 쉬다가 출근하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그러려면 뭤하러 퇴원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고분고분 대답했다.

 

맞을 주사는 다 서둘러 맞고 아내는 퇴원수속을 하러 가고 나는 옷을 갈아 입었다. 집에서 가져온 양말을 신고, 들어올 때 입었던 바지와 등산 재킷을 입었다. 날아갈 것 같다. 그렇게 입고 의자에 걸터 앉아 것대산을 바라보았다. 한 1년쯤 거기를 바라본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학교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퇴원하게 되었음을 알려 드렸다. 그런데 가장 원로이신 김 선생님께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이 문병을 오신다는 것이다. 나는 내일 같이 죄송했다. 정말 떡이라도 해먹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한참을 기다려 교장선생님이 실장님과 오셨다. 나는 두 분을 따라 김선생님 병실에 갔다. 간단한 수술이었는지 혼자 화장실에 가셨다. 그 분은 저녁에 퇴원하겠다고 했다. 결석 수술은 요즘에는 간단하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얼굴은 조금 상해 있었다.

 

몇 방울 씩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짐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갔다. 차는 그대로 있다.  입원비가 많이 나왔다. 가방을 들고 나오려니 어지럽다. 그러나 하나도 비틀거리지 않았다. 운전도 했다. 차를 몰아 수곡동을 거쳐 분평동으로 돌아 집으로 왔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니 정말로 그리운 내집이다. 옷을 벗고 씻었다. 물이 따뜻하다.  좋다. 참 좋다. 아주 먼 세상을 떠돌다가 돌아온 기분이다. 소파에 깊숙히 몸을 묻어 보았다. 화분들이 그 자리에 그냥 있다. 유리창은 얼룩진 대로 그냥 있다. 사진도 그대로다. 다 그대로다. 내가 살던 그 집이다. 창으로 보이는 매봉산이 것대산보다 가깝고 정겹다. 세상을 떠났다가도 이렇게 가끔씩 살던 집에 와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끓여주는 된장 찌개를 맘껏 먹었다. 걸어서 이발을 하러 갔다. 가는 길이 어지럽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바람에 쓰러질 것만 같다. 단골 이발관에 가니 몸이 수척해진 것을 금방 알아 본다.  그간에 피부가 얇아져서 면도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학교에 인사를 갔다. 아내가 말리는 것을 억지를 부렸다. 옷을 두껍게 입고 운전을 하고 왔다. 모두들 걱정해 주고 반겨주었다. 학교는 생각처럼 낯설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아이들이 반가워한다. 어떤 아이는 팔을 만져 보고, 어떤 아이는 뒤에 와서 허리를 안아 본다. 가늘어진 내 허리 힘이 빠져 탄력을 잃은 내 팔 때문에 울먹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생기가 돋는다. 어찔어찔했지만 생기가 돋는다.  

 

사무실마다 다니면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내가 해야할 일들을 잠시 챙겼다. 그리고 새로운 자리에 앉아 보았다. 몸이 가볍다. 능력보다 과중한 업무와 책임으로부터 탈출이다. 몇 가지 사물을 정리한 다음 돌아왔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한 일주일 쯤 집에서 쉬다가 나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쉬는 동안 병이 더 날 수도 있다. 마음의 병이 말이다. 힘들어도 수업을 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집에 돌아와 아예 잠옷으로 갈아입고 늘어지게 잤다. 정말 잠을 잤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