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말목산에서 새봉까지

느림보 이방주 2008. 6. 30. 23:30

    2008년 6월 29일


아침에 비가 솔솔 내린다. 정말 오랫동안 벼르고 기다려서 말목산 산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말목산을 가자고 제안 한 건 바로 나다. 말목산이 있는 장회나루로부터 구단양 외중방리까지의 경관은 전국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이곳에 구담봉이 있고, 옥순봉이 있으며, 환상의 제비봉이 있다. 제비봉에서 앞산을 바라보면 그 환상적인 능선은 표현할 수조차 없다. 그 산이 바로 말목산이다. 그 산줄기에 중국 고서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절집이 하나 보인다. 그 절이 바로 천진 선원이다. 제비봉에서 바라보면  천진선원과 단양 기생 두향이 묘소가 아련하게 보인다.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럼 가면 될 거 아니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제비봉이나 장회나루의 휴게소에서 아름다운 청풍호를 건너 병풍 같은 앞산을 바라보라. 감히 범접할 감이 생기는가?


그러나 우리는 거기 범접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날을 잡은 것이다. 나는 가고 싶다고 했고, 연선생이 가자고 했다. 이효정 선생이 좋다고 했다. 산행의 정보는 두 분이 모두 알 만한 분들이라 나는 말만 던져 놓고 뒷짐을 쥐고 있었다.


청주에서 6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나, 10분쯤 늦게 출발했다. 준비는 소홀했다. 옥순대교 휴게소 주차장에 수산 택시를 4만원에 대기시키고, 운전은 연선생이, 김밥은 이선생이 준비한다는 게 전부다. 무엇보다도 준비가 소홀한 것은 내가 전날 소주를 많이 마신 것이다. 아침 9시부터 12시간 동안 깰 만하면 또 마시고 취할 만하면 그쳤다가 깨면 또 마셨다. 그러나 두 분은 도상 준비를 철저히 해서 산길을 훤히 외다시피 한 것으로 안다. 나는 덕분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날  등산 경로를 요약하면 적성면 하진리 마을 회관 앞에서 출발-655봉-말목산 정상(710m)-426봉- 천진서원-가은산-둥지봉-새봉-옥순대교 주차장 도착이다. 7시간이나 넉넉히 8시간에 마치는 것으로 계획했다.


  말목산에서  옥순대교까지 우리가 걸어간 길

  오늘의 산행 주제는 없다. 그냥 가보고 싶은 정말 멀고 먼 산길이다.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주제가 있을 수도 없다. 산 아래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산 위 모습은 다양하다. 그리고 한번 산행로도 눈과 가슴이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도 고행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볍고 경쾌하다. 끝나고 나서도 몸이 날아갈 듯하다. 줄여 말하면 암봉과 기막힌 조망, 암벽과 어우러진 노송, 활엽수가 꽉 들어찬 녹음, 기이한 바위들로 정리할 수 있다.


괴산을 거쳐 살미로 접어들어 청풍호의 호반도로를 굽이굽이 안고 돌았다. 연선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내 운전을 돌아보게 된다.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을 배려하면서도 속도도 만만한 게 아니다. 수산에 거의 도착할 무렵, 충청북도 생활체육테니스대회가 열리는 단양에 가 있는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단양에는 지금 비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차를 돌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수산 개인택시 권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011-463-5163) 그는 내 전화를 받고 바로 옥순대교 주차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비는 이미 그쳤다.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보슬보슬 와요.' 그럼 그렇지. 산은 우리 편이다. 그렇다고 교만해질 일도 아니지만…….


택시는 다시 수산으로 나와서 장회를 거쳐 제비봉 얼음골을 거쳐 외중방리, 구단양의 내가 근무하던 단양여고 뒷담을 돌아 놋재를 넘어 연선생이 근무하던 단천 지역을 돌아 상진대교를 넘었다. 가는 도중 잡초에 묻힌 옛 시루섬이 아련하다. 시루섬을 내려다보는 애곡리 구석기시대 선사 유적지 부근에는 문의면 산덕리 출신 신동문 시인이 군사 독재를 비판하는 시를 쓰다가 절필하고 내려와 과수원을 하면서 은둔 생활을 하던 곳이 있다. 상진대교를 건너 바로 좌회전하여 옛 중앙선 철로 자리로 난 하진리 행 도로로 진입한다. 옛 중앙선 굴길을 지나 애곡리 수양개 구석기시대 유적지 앞을 지나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매달려 줄타기하듯 차가 달린다.


하진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다. 아직도 촉촉한 바람이 솔솔 불어 오히려 기분이 상쾌하다. 말목산  산행 안내도가 걸려 있다. 시내버스도 정차해 있다.


 마을회관 앞에 서 있는 말목산 등산 안내도

마을은 고즈넉하다. 개만 나와서 짖어댄다. 대문에 매달린 강아지가 목을 매고 짖어댄다. 윤동주 시에 의하면 '어둠을 쫓는 개'이다. 우리가 어둠인가?  우리는 밝음을 몰고 오는 사람이야. 그러고 보니 철모르는 개이다. 어둠의 계절을 모르는 개이다. 우리나라에는 철모르는 개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사랑을 받는다. 비가 그쳤잖아. 마을엔 살구가 노랗게 익어간다. 비를 맞아 안 씻어도 먹을 수 있겠다. 그러나 따먹지는 않았다. 아이 때 같은 생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을 주변의 밭에는 비를 맞은 담배, 참깨, 고추가 싱그럽다.

   하진리 추차장에서 본 구단양

  하진리는 단양군 적성면에 속한다. 마을 유래비를 보니, 옛날 서울 노량진에서 물건을 싣고 오는 배가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갔다고 한다. 그래서 하진이라고 한단다. 또 퇴계 이황 선생과 단양 기생 두향이 사랑 이야기도 이곳을 통하여 전해진다고 한다. 두향이가 생각하는 퇴계와 퇴계가 생각하는 두향이는 아무래도 달랐을 것이다. 그냥 꿈을 말하기 좋아하는 서민들의 불려서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서민들에겐 그것이 아름답다. 말목산 전설과 함께 온통 유서 깊은 마을 자랑이 쓰여 있었다. 마을의 역사를 어찌 500년만 거슬러 올라가겠는가? 여기서 단양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애곡 수양개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인들 그 시대에 사람이 살지 않았으랴! 오히려 애곡리보다 더 자연 환경이 좋다고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기야 구석기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좋아하는 환경이 어땠는지 알 수가 있나?

하진리 마을 유래비

   잠시 산행 들머리를 찾지 못해 강가에서 헤맸다. 길은 바로 찾게 마련이다. 가고자 하면 길은 나와서 맞이하게 되어 있다. 길은 언제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시험한다. 의지를 신뢰할 수 있으면 하늘이 내려다보고 문을 열어 주는 것이 길이다.


산길은 비에 젖어 등산화를 적셨다. 지팡이로 툭툭 빗물을 치면서 올라갔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산은 아닌 모양이다. 정상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언젠가 구담봉 유람선을 탔을 때 "저기 저 깎아지른 절벽 위에는 자연을 동경하는 인간들의 이상향인 노들평원이 있다."라고 청산에 유수처럼 설명하던 목청 좋은 안내원이 생각났다. 그 노들 평원이라는 말 때문에 더 말목산을 가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노들'이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만, 저 깊은 가슴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물아물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노량진을 '노들'이라고도 했다는데 노량진에서 이러지는 하진이 그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바위벽 위에 어디 평원이 있을 것 같은가?


말목산 오르는 길은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하기야 말 잔등으로 타고 오르는 길이니까. 정력이 샘솟는 두 분은 쉴 줄을 모른다. 오늘은 더 심하다. 땀이 난다. 오르막길은 늘 숨 가쁘다. 셔츠는 이미 물에 헹궈낸 듯하다. 온 몸을 탈수기에 넣고 돌린 듯이 땀이 셔츠에 밴다. 술은 왜 다리 힘까지 빼놓는가? 낙엽이 깔린 부드러운 비단길이 끝나고 돌길이 시작된다. 그래도 무릎은 여전하다. 몸은 가볍다. 그러나 숨은 가쁘다. 믿는다. 나는 나를 믿는다. 주독이 땀으로 다 빠지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가야한다.


돌길이 끝나자 능선길이 나타났다.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쉰 시간은 한 시간쯤 되는 것 같다. 숨은 돌렸으나 전망은 꽝이다. 운무가 온통 하얀 솜사탕을 쟁여 놓은 흰색의 바다이다. 우리는 구름 위에 앉은 것이다. 쉴 사이도 없이 조망도 필요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보다 능선 길은 부드럽다. 활엽수가 우거지고 바위틈에 노송이 멋지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렸다. 길은 작년에 진 낙엽으로 포근하다. 여기가 이름하여 노들평원이라는 곳이다. 평원은 찾아볼 수 없지만 땅은 부드럽다.


전망대를 두 군데나 지나서 정상에 도착했다. 세상이 훤해졌다. 산 아래가 보인다. 정상에 누군가 탑을 쌓아 놓았다. 사람들은 자꾸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오르려다 보니 여기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정상석이 있고 정상 탑이 또 있다. 산의 유래나 안내의 글이 정상에 있는 것도 드문 일이다.


여기서 이선생님 사모님이 준비해 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이선생님은 사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정상에서 당신 생각하면서 샌드위치 먹어요."  농인 듯하지만 아이들 같은 사랑이 가득하다. 글로 적지 않아도 의미는 그냥 시이고, 그 억양은 그냥 노래이다. 진실이 담기면 장난의 말도 예술이 된다. 정말 장난인듯 진실하게 사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행복은 어린 아이 같은 유희에서 샘솟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유희하는 동물이라고 누가 말했나? 부러우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속이 넓지 못해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산에서는 할 수 있다. 산이 준 가르침이다. 게쎄마니 언덕에서 나태한 제자들을 일깨운 그리스도의 가르침처럼 "깨어나라. 깨어나 기도하라."  나도 한 마디 지껄여 본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아내에게 감사하라."

 

                             말목산에서(사진은 철돌이 블로그)

 말목산 유래 정상에서

 옆에 정상석도 있는데 누군가 탑을 쌓았다.

정상 삼거리에서 우리는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지도를 보니 오른쪽으로 가면 아주 쉽게 가은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능선 길을 한가롭게 걸으며 가고도 싶었지만 거기서 무엇을 볼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예정대로 천진선원에 들러 가은산을 올랐다가 다시 둥지봉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청풍호 물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유람선이 다녀 물이 흐리다.

 전망대에서

 전망대에서 (이효정 선생님)

 바위에 물이 묻었다. 미끄러지면 바로 단양 기생 두향이 묘가 있는 강선대 부근이다.  

 장회에서 단양 가는 길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제비봉

  천진선원으로 내려오는 길은 결코 부드러운 길이 아니다. 생각보다 더 험하고 미끄럽다. 뾰족한 바위를 잡고, 솔뿌리에 의지하며 겨우 한 봉우리에 오르면  세상은 또 다르게 펼쳐진다. 물이 있는가 하면 산이 있고, 산이 있는가 하면 노송이 자태를 드러낸다. 제비봉 아래 단양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하다. 설마동 너머 월악산이 보인다. 구름은 끼었어도 시계는 끝이 없다. 쉴 틈도 없다. 산을 바라보고 물을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으면  또 내리막길이다.

 

  겨우 내려서면 또 작은 오르막길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서로를 일깨운다. 돌을 조심해서 밟아야 한다. 물 묻은 나무뿌리는 절대로 밟아서는 안 된다. 낙엽 쌓인 바위를 밟으면 미끄러진다. 그럼 어디를 밟으란 말인가? 그래도 어딘가 디딜 데는 있다. 세상에는 어딘가 발 디딜 데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 발붙이고 살아간다. 거기가 바로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땅을 어머니라고 한다. 어머니가 작아지면 여자다. 여자는 땅이다. 우리가 의지하고 몸을 부비며 기댈 언덕이다. 그래서 여자는 키가 작아도 마음은 커서 편안하고, 가슴이 좁아도 남자보다 더 포근하다.    

 암봉을 오르니

 이렇게 기막힌 세상이 보이고

정신을 잠시라도 놓으면 안되는데

 멀리 우리가 가야할 옥순대교와 옥순봉이 보인다

  옥순대교가 멀리 보인다. 거길 가야 한다. 내려 뛰면 바로 난간을 잡을 것만 같다. 금수산 구름이 휘감겼다. 미인이 두른 하얀색 웨딩드레스 같다. 엷은 구름이 투명하여 속살을 드러낸다. 금수산은 어느덧 미끈한 여체가 된다.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아무리 흔들어 봐도 금수산을 바라보면서 미녀의 환상에서 깨어나기는 쉽지 않다.


전망대를 돌아 내려 이제 천진선원까지는 계곡이다. 경사가 생각보다 급하다. 비에 젖은 흙길은 한없이 미끄럽다. 그러다 보면 도끼로 때려 쪼개 놓은 것 같은 칼돌이 널려있는 너덜이다. 허리를 펴면 다래 덩굴이 목을 감는다. 다래 덩굴을 쳐다보면 땅엔 솔뿌리가 발밑이다. 너덜을 피하고 다래덩굴을 피하다 보면 산초나무 가시가 팔뚝을 할퀸다. 휴- 한숨을 쉬면 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바위 절벽이다. 세상에는 비단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벽이라고 다 뛰어내려서도 안 된다. 너덜이라고 피해 갈 수만은 없다. 부딪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길이다. 그러다 가다 보면 달콤한 샘물도 있고 새곰새곰한 딸기밭도 있다. 그것이 삶의 맛이다.


 금수산은 구름 휘장에 휘감기고

 내리막길이 더 어려워 천하의 연선생도 떨리는 모양이네

 이선생님의 줄타기 솜씨

   구르지도 넘어지지도 않고 비탈길을 다 내려왔다. 풀 섶을 헤치고 앞을 내다보니 문득 참깨 밭이 나타난다. 수렛길이다. 신비스럽다. 참깨 밭에 풀 한포기 없이 깨끗하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만 올 수 있는 곳이다. 수렛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것이 신비스럽다.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도 있다. 차가 많이 다녔는지 흙길이 매끄럽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딸기 밭이 있다. 맛이 좋다. 어린 시절 산에 가서 먹던 그 맛이다. 이선생님과 둘이서 열심히 따 먹고 있는데 연선생이 소리친다. 뒷사람 생각도 해야 된다고……. 그래 맞아. 그렇게 힘든 중에도 쓰레기를 주워 배낭에 매달고 오는 산 사랑을 가진 사람이다. 발자국 남기는 것도 미안해하는 순수파이다.

 산딸기밭에서 딸기를 남기고 떠나는 마음

 누구 손일까

 산자락에 숨은 천진 선원과 가은산 그 너머 금수산 송신탑이 보인다

   천진선원이 보인다. 자동차도 있다. 창고에는 기름통이 가득하다. 경운기도 있다. 농사를 짓는 모양이다. 천진선원 중창기를 읽어 보았다. 중창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도 이곳에 고찰이 있었나 보다. 아마 신도들은 배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모양이다. 스님은 없고 대웅전은 굳게 닫혀 있다. 마당에는 잔디가 곱다. 요사채에서 보살 한 분이 문을 열고 오랜만에 온 손님을 내다본다. 대웅전 문을 열고 부처님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열 수가 없었다. 참배도 할 수 없었다. 항상 그랬듯이 마음속으로 삼배를 올렸다. 그러나 현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늘 내용은 형식에 담기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가책을 받는다. 나의 믿음은 늘 형식을 갖추는 용기가 부족하다. '仁泉' 이 사람아, 뭐가 우선인지 다 알잖아. 용기를 내게. 

 천진선원 대웅전

천진선원 중창기

건너다 보이는 봉우리는 구담봉(백만사와 구담봉 갔을 때 밥 먹던 바위도 보이네)

 

밥 먹은 곳에 있는 작은 폭포

   선원에서 구담봉이 바로 건너이다. 오른쪽으로 돌아 잡초가 무성한 수렛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작은 폭포가 있는 아래 바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샌드위치를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다. 내 배는 나이를 모른다. 이제 좀  덜 먹을 나이도 되었건만……. 내가 가져간 떡이 덜 녹았다. 아쉬웠다. 김밥을 덜 좋아하기 때문에 떡에 기대를 걸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오늘 김밥은 꿀맛이다. 따로 가져간 떡을 한 덩이 먹었다. 지금까지 물을 두 병이나 마셨다. 큰 병을 한 병 꺼내서 배낭 겉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얼음이 시끄럽다. 이제 가은산 오르막길이다. 셔츠가 땀에 한 번 더 젖을 것이다. 선원에 도착했을 때 솔솔 내리던 비가 점심 먹을 때 그쳤다. 수렛길 양쪽이 온통 개망초꽃이다. 그렇지, 빈집이 한 채 보였다. 사람이 떠나든 마음이 떠나든 떠나면 개망초가 꽃을 피운다.


점심을 먹고 가은산으로 올랐다. 오르막길이다. 한동안 오르막길을 오르니 길은 다시 좋아진다. 비단길이다. 숲이다. 어느덧 가은산에서 금수산으로 오르는 능선과 수산면 상천리로 내려가는 네거리에 도착했다. 이 길은 가은산에서 두세 번 내려와 본 길이다. 반갑다. 가은산은 큰 산은 아니다. 금수산의 한 지봉일 뿐이다. 그러나 상천리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면 옥순봉, 구담봉과 호수를 건너 제비봉의 경관을 훑어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산이다. 이 산은 활엽수까지도 다 보물처럼 아름답다. 와 본지 참 여러 해가 되었지만 눈에 익은 산길이다.

                                  가은산에서(사진:철돌이 블로그)

가은산에서 내려다 본 상천리

장회 나루와 설마동이 멀리 보인다

 

우리 지나온 봉우리들

 

가은산에서 내려오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바로 둥지봉으로 이어진다. 사실은 천진선원에서 둥지봉으로 오면 단 걸음에 올 수 있다. 그러나 가은산에서 둥지봉으로 내려서는 길은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이 길을 택했다. 또 가은산에서 둥지봉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절벽이 있어 돌아가는 길인 걸 모르고 한 동안 서성거렸다. 둥지봉은 오르는 길이라기보다 내려서는 길이다. 둥지봉에서는 바로 구담봉이 마주친다. 그러니 그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호수에 물이 많이 빠져서 아쉬웠다. 물이 괴었던 자국이 이무기가 할퀴고 간 것처럼 흉하다.


둥지봉은 암봉이다. 암봉에 노송이 어우러진 절경이다. 자연은 이렇게 아름답다. 옛날에 공수라는 장인이 있어서 귀부로 자연을 귀부로 툭툭 쳐서 다듬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인간이 자연에 대해 그런 욕심을 내겠는가? 바로 옆에 꼭 새 모양으로 생긴 새 바위가 있어서 둥지봉인가 보다. 새는 낮에는 둥지 가까운 나뭇가지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 법이니까. 안보는 척 하면서 바라보고 보는 척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둥지봉 너른 바위 보금자리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구담봉도 바라보고 수면을 떠가는 유람선 노랫가락도 들으면서 앉아 물을 마시기도 했다. 가방을 벗어 놓고 너른 바위에 않아 바라보이는 봉우리도 세었다. 도대체 몇 시간을 더 걸어야 하는가를 계산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옥순대교가 보이니까……. 그보다 이런 날 이틀이나 되는 휴일을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둥지봉에서(사진 : 철돌이 블로그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는 마라토너

뜬 바위

   

우리는 둥지봉의 암벽을 타고 호수의 수몰선까지 내려갔다. 바위벽에 의지하면서 유격 훈련하듯이 줄을 탔다. 우리는 아직 젊다. 아니 젊음 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암벽을 내려서 활엽수림을 지나 진흙에 미끄러지면서 겨우 몸을 가누고  벼락 맞은 바위 옆을 걸었다. 와 본 곳이다. 바위 옆이 온통 쓰레기다. 가슴 아프다. 그러나 누가 치우랴. 물에 떠내려 온 쓰레기가 쌓여 있다. 

 암벽 타기

암벽, 소나무, 마라토너

암벽과 소나무

 유격! 겁 먹은 연하사

저기 저 아래는?

 이상한 곳에 끼었네.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마슈.

                                        벼락맞아 깨졌다는 바위 

 이제 마지막 봉우리이다. 새봉을 향해서 돌진이다. 한 20분만 오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길을  잘못 들었다. 지름길로 가면 되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가려다가 그렇게 되었다.


유람선을 타고 이 새바위를 쳐다보면 정말 노적가리 위에 새가 앉은 듯이 보인다. 저 건너 구담봉에서 바라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바라봐도 역시 새 모양 그대로다. 마지막 오르막길이 숨 가쁘다. 그러나 서둘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바위 새가 어디로 날아갈 일도 없지 않은가? 작은 봉우리에서도 역시 조망은 기막히다. 바위 새는 머리를 둥지봉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새봉에서 바라본 둥지봉은 꼭 둥지 모양이다. 깃털을 층층으로 쌓아 만든 부드러운 둥지 그대로이다. 이래서 자연은 신비롭다. 인간을 가운데 두고 자연을 생각하는 오만한 이들이 귀부로 다듬었느니 뭐니 하고들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봉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여유를 부린 것이다. 아니 둥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포근해서인지도 모른다.

 멀리서 본 벼락맞은 바위 정말인가? 

 새봉에서 본 둥지봉

 새는 새봉에 날아와 둥지를 바라본다

 새야! 나도 너랑 놀고 싶었느니라. 새끼랑도 같이

 새봉을 돌아 보니

  옥순대교 휴게소에 도착하니 여섯시가 넘었다. 쉼터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쉬었다. 이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샀다. 시원하다. 피로가 풀린다. 돌아오는 길은 빨리 지름길로 집으로 왔으면 좋으련만 청풍호를 80km나 돌아 충주를 거쳐 9시20분경 외딴집에 도착하였다. 외딴집 특급에다가 소주 한 병으로 마무리하였다. 기분 좋다. 아주 좋다. 크게 해냈다.


 암봉의 짜릿한 맛과 툭 터진 전망과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노송과 산 아래 활엽수 숲을 거니는 맛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또한 하루 동안 흘린 땀은 셔츠를 몇 번이나 적셨다가 말렸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리도 안 아프다.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짜릿한 쾌감만 남았다. 오늘 서로를 일깨우며 산행을 함께한 우리는 결국 '우리'일 수 밖에 없다. 아, 오늘 우리에겐 '우리'가 남았구나. "깨어나라. 깨어나 기도하라. 우리는 변치않는 '우리'가 되라."


이효정님의 블로그에 가면 더 상세한 산행기가 있습니다.

http://blog.daum.net/leehyo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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