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주성대와의 만남

느림보 이방주 2005. 2. 13. 06:50
  일반연수 참가 소감


주성대학과의 만남, 그 짱짱한 햇볕


이 방 주


  삶은 만남이라고 한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학문과의 만남, 역사와의 만남……. 실로 삶은 만남의 연속이며, 만남의 질과 수준에 따라 행복의 열매의 당도(糖度)가 결정된다.

  주성대학과의 만남은 50대 후반의 수위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덕암리 진입로 양편으로 잘 가꾸어 싱그러운 논밭을 지나 불과 몇 분, 학교 정문을 시속 20㎞로 진입하면 푸른 제복을 입은 연만하신 수위의 거수 경례를 받게 된다. 핸들을 잡고 앉아서 받는 경례를 편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만하신 분에게 받는 친절이 불안하고 황송하다. 그 분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주차를 하고 나니, 일반 연수 등록 장소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뒤따라 온 차를 향해서 바쁘게 달려가는 그 분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행복의 당도를 확신한다.

  등록처에서 등록을 받는 조교 선생의 밝고 청순한 미소는 어느 여고에서 가르친 제자로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연수생 모두에게 한 점 짜증도 없이 친절하게 명찰을 찾아주고 교재를 나누어주며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의식적인 친절이 아니었다. 정문에서 받은 황송한 거수 경례가 전이된 자연 그대로의 친절이다.

  연수 담당 교수의 안내도 자상하고 겸손했다. 대학에서 시행하는 일반 연수는 조금만 잘못하면 점수를 미끼로 가난한 초․중등 교사의 주머니를 털어 대학 교수의 용돈을 마련해 주는 잘못된 제도라고 오해를 받는다. 교사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박봉을 털어 연수에 응해야만 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시켰다는 비난받는 것은 교수들이 점수라는 고리를 잡고 교사들을 무시하고 천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교수는 평가, 점수, 근태, 감점, 등에 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들은 옛 은사를 만나 소주 한 잔 대접하듯 그렇게 겸손하게 우리를 대했다. 그도 역시 정문을 시속 20㎞ 이하로 통과하며 황송한 경례를 받았을 테니까.

  강사들의 강의 준비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 대학 교수나, 외래 강사까지도 제작 자료 와 기자재 준비가 철저했다. 내용 역시 연수 때마다 듣는 케케묵은 원론이 아니고, 현실적이고 시급한 문제를 실습 위주로 진행하였다. 강사들이 비교적 젊었지만, 한 분도 예의에 벗어나거나, 평소의 안면이나 사제 관계를 논하는 일도 없었다. 사적인 잡담으로 시간을 뭉개는 일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전공에 대한 신념과 애착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 분들의 젊은 피의 열기는 거꾸로 25년 교직에 채찍을 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행복의 당도를 높이는 짱짱한 볕의 에너지가 되었다.

  대학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대학에서는 초․중등학교를 줏대 없이 민감하다고 비난하지만, 우리는 침전하는 대학이 우습다. 대학 때 만난 누릇누릇한 교안을 자격 연수 때나 일반 연수 때 또 보여서는 우리의 조소를 면하기 어렵다. 대학은 유수(流水)와 같아야 한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자정(自淨)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한다. 연구하는 교수, 친절한 직원,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절대로 썩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대학의 새로운 물은 50대 후반의 수위들로부터 흐르는 듯하다.  주성대학 사회교육원은 우리 고장의 괴어 있는 물을 흐르게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민중학교나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와 같은 사회교육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 짱짱한 햇볕은 이 나라 청소년과 사회인들의 평생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제자를 만나고 싶다. 이 대학 다니는 제자를 만나도 당당히 인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이 대학을 추천한 나에게 감사하고 있을 테니까. 나는 그들에게도 이미 전이되었을 순수와 친절의 에너지를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한마디 충고를 덧붙이고 싶다. 이제 방학이지만 대학 도서관에도 좀 들르라고. 맑고 깨끗한 물에 신선한 물고기가 모이듯 도서관에 젊고 싱싱한 열기만 모이면 이 대학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에 에너지원이 되기에 충분하다.

  삶은 만남이라고 한다. 이 뜨거운 여름 나는 나의 인생의 열매에 당도를 더해줄 짱짱한 햇볕을 주성대학에서 받고 있다. 주성대학을 가보라. 그리고 정문을 시속 20㎞ 이하로 달려라. 거기서 황송한 ‘친절’을 만날 것이다. 

(1999. 8.  .주성대학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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