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성들은 젊은 여성에게 오빠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오빠라는 부름을 들으면 가슴에 불이 붙는다. 가족에 대한 호칭이 잘 발달된 국어는 그만큼 우리 가족문화의 품격이 높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회의 바탕인 가정이 품격 높은 문화를 지니고 있다면, 사회도 그만큼 품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남남 간에 ‘오빠’나 ‘누이’를 남발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가족 호칭의 혼란은 여성들의 시댁 가족 호칭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시동생을 삼촌으로, 시누이를 고모라 부르더니,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망측스럽게도 TV드라마에서는 내놓고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 작품도 연기자도 시청자도 모두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두렵다.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우리말 큰사전에는 오빠를 ‘오라버니의 어린이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고, 오라버니는 ‘여자의 같은 항렬 되는 손위 남자’라고 설명하였다. 같은 사전의 옛말 사전에는 ‘오랍’과 ‘오라비’가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오빠’는 ‘오랍이’에 어원을 둔 말이고 ‘오랍’은 남자 동기간을 뜻하는 옛말이다. 어디에도 가족이 아닌 남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 예는 없다. 그런데도 최근의 인터넷 사전에서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 친척가운데 항렬이 같은 손위 남자형제를 이르는 말’이란 풀이 이외에 ‘남남끼리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는 말’ 정도로 의미를 확대하여 정리하고 있다. ‘정답게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로 보아 정다운 사이가 가족 중심에서 사회 중심으로 변화고 있는 문화의 일면을 볼 수 있다.
한편 누이라는 말도 비슷한 변화의 과정을 걷고 있다. ‘누이’는 ‘남자의 여자 형제. 흔히 나이가 아래인 여자를 이름’ 이라고 해서 손위인 ‘누나’가 누이에 속하는 말이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 사전에서는 ‘남남끼리 나이가 적은 남자가 손위 여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하여 오빠의 경우처럼 ‘정답게’를 덧붙여 설명하였다.
오늘날 남을 오빠나 누이로 착각하듯이 과거에는 오빠와 누이를 여자로 착각한 사례도 있었던 모양이다.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는 결혼과 가정의 여신인 누이 헤라를 세 번째 부인으로 삼았다. 우리 속담에도 ‘누이 믿고 장가 안 간다.’라는 말이 있다. 당치도 않게 누이를 여자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이다. 이렇게 오빠와 누이를 남자나 여자로, 남을 오빠나 누이로의 혼동은 시간을 넘어 현대 사회에도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다.
‘오빠’나 ‘누이’가 남남 사이에서도 거침없이 쓰이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선배를 부르던 오빠라는 호칭은 이제 아버지 연배의 남자 어른을 부르는 ‘아저씨’ 대신으로도 쓰인다. 남성들은 이제 시장에서도 술집에서도 오빠로 불리어 기분이 좋다. 아주머니들은 모두 누님으로 불리어 가슴이 뛴다. 친근하게 부르는 ‘오빠’와 ‘누이’는 사회 구성원들을 끈끈한 정을 심어주는 매개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호칭은 부정한 친근감을 심어주는 역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어 문제가 된다.
성적정체감이 흔들리는 오십대를 맞이하는 많은 남성들은 연하의 여성들에게 오빠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잘 나가는 연상의 남성을 오빠로 불러주면 그로부터 누이로 불리는 대가로 되돌아온다. 물론 여성들도 연하의 남성에게 누님으로 불리기를 좋아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빠나 누이라는 호칭은 사위어가는 성감을 소생시키는 불쏘시개가 될 만도 하다. 그러니 오빠라고 불러주는 영계 같은 꽃띠 여성이나 누님이라고 불러주는 수탉 같은 꽃미남에게는 동기간의 정다움뿐 아니라 이성의 정겨움까지 보태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달 사이에 ‘오빠’, ‘사랑하는 누이’하고 부르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냥 좋아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아니, 가족 호칭의 혼동이 사회혼란을 가져오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2007.10.14)
충청투데이 2007.10.9.일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