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비린내를 없애는 '된장녀'

느림보 이방주 2007. 9. 12. 09:39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된장을 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고구려는 장 담그기와 술 빚기를 잘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장 담그기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조선 중기의 <구황촬요(救荒撮要)>에도 장은 ‘음식 맛의 으뜸이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조장법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도 된장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식생활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누가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된장녀’란 말이 있다. 처음 듣는 사람은 ‘된장’과 ‘여자’의 합성어이므로 된장 같은 덕을 갖춘 토종 한국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알아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항간에서 쓰이는 그 ‘된장녀’의 개념은 소름끼칠 정도로 전혀 다르다. 어떤 인터넷 오픈 사전에는 ‘외국 고급 명품이나 문화를 좇아 허영심이 가득 찬 삶으로 일관하여 정체성을 잃은 한국 여자’로 규정하고 있다. 서구 문화를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된장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된장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다. 된장에 대한 모욕은 우리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준다.

 

문제는 여기서 왜 하필이면 경제 개념이 전혀 없으면서 정체성도 흔들리는 한국여성을 말하는데 ‘된장’을 빗대어 썼는지 알 수 없다. 우리 민족이 개발한 자랑스러운 과학적 발효 식품인 된장을 형편없는 한국여성을 비하하는 말에 붙여 썼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아마도 된장오덕을 모를 것이다.

 

된장 오덕의 첫째는 단심(丹心)이다. 된장은 어떤 음식과 섞여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 된장은 다른 식재료들이 제 맛을 잘 내도록 맛을 북돋워 주면서도 스스로의 맛을 잃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편단심이다. 둘째로 항심(恒心)이다. 아무리 오래 두어도 변질되지도 않고 제 맛을 유지한다. 어떤 가문에는 백년도 더 묵은 간장이 있다고도 한다. 셋째는 불심(佛心)이다. 기름진 냄새를 제거해 준다. 삼겹살 소금구이를 먹고 난 다음 된장을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된장을 먹으면 인간의 기름진 욕망도 제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선심(善心)이다.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어본 사람은 그 부드러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화심(和心)이다. 서양 음식인 햄버거나 피자에 콩나물된장국을 곁들여 먹어 보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도 실제로 환상의 짝꿍이다.

 

이렇게 훌륭한 덕을 갖춘 된장을 정체성 잃은 한국여성에 빗대어 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비하적인 발상이다. 오히려 된장 오덕인 ‘丹, 恒, 佛, 善, 和’는 예로부터 훌륭한 한국 여인이 갖추어온 변함없는 덕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늘어나는 여성들의 역할 비중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 하여 어느 누구도 어색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다. 실제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여성이 당당히 남성 후보들과 겨루는 사회가 되었다. 그 만만찮은 도전도 놀랍지만 깨끗한 승복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여성은 과거의 연약한 여성이 아니라 이 사회의 오롯한 자연인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체성 잃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된장을 빗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된장 오덕을 배워 확고한 토종 한국인의 덕을 갖춘 여성을 존중하는 말로 바꾸어 써야겠다. 서구의 여성들로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푸근한 덕을 갖추어 오래 묵은 된장 같은 여성을 부르는 말로 바꾸어 썼으면 좋겠다.

 

지조 있는 된장녀에 의해서 순화되고 화해하여 통합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된장에는 고등어 같은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된장의 덕을 온전하게 본받은 진정한 의미의 ‘된장녀’가 있다면, 각종 권력을 등에 업은 측근비리로 비린내 많은 이 사회를 얼마든지 담백하고 향기롭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2007. 9. 11.)

충청투데이 2007.9.21. 칼럼 게재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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