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보신탕과 개장

느림보 이방주 2007. 8. 16. 09:42
 

말복도 지났다. 장마가 끝났는데 잠깐 지나가는 햇살을 비집고 떨어뜨리는 여우비나 간헐적으로 퍼붓는 호우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도 찜통더위는 어느 해 못지않았다. 이렇게 유별난 찜통더위 속에서 호황을 누리는 것은 보신탕집이다. 특히 복날에는 보신탕집마다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더위에 보신탕을 먹는 이유는 음양오행설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 한다. 개는 오행에서 ‘火’이고 더위는 ‘金’이다. 그러므로 화극금(火克金)으로 火가 金을 누르므로 더위를 누른다는 개고기(火)를 더위의 절정인 복날(金) 먹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더위를 열로 다스려 지친 몸을 회복시켜준다고 믿었다.

 

본래 보신탕은 구장(狗醬) 또는 개장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북한이나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연변에서는 개장이라고 한다. 북한의 ‘말 다듬기 사업’ 이후에는 개장보다는 ‘단고기’로 많이 부르는 모양이다. 개장이 보신탕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정부 수립 초기에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건의로 개고기의 식용 금지령이 내려져 궁여지책으로 개장국집 간판을 보신탕집으로 바꾸어 단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그 후 88올림픽을 전후하여 사철탕, 영양탕으로 이름표를 바꿔 붙이는 수난을 겪었다. 최근에 개장국 먹는 것을 떳떳하지 못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멍멍탕’, ‘탕’, ‘MMT’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분단 이전에는 모두가 구장, 개장, 개장국으로 불렀었다.

 

개고기를 식용으로 한 기록은 많다. ‘사기’에는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개를 잡아 삼복에 제사를 지내서 재해를 방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논어에도 제사에 개고기를 쓴다는 기록이 있고, 소학에도 제사와 손님 접대에 군자는 소를 쓰고, 대부는 양을, 선비는 개를 쓴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개고기의 역사는 공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벽화에 개잡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이전에 이미 개고기를 먹은 것 같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복의 부인인 빙허각 이 씨가 저술한 당시의 의식주의 생활과학 지침서인 규합총서에도 개고기 요리법이 상세히 나와 있다. 전골과 구장뿐만 아니라, 삶기, 찌기, 굽기 등 다양한 요리법의 설명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즐겨 먹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도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몸을 보할 수 있는 보양 식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농가월령가 8월령에도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近親)갈 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란 시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개고기를 즐겨 먹었을 뿐만 아니라 제의에도 사용하고 점잖은 자리에 차반으로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서울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에서는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먹으면 양(陽)을 도와준다고 하였고, ‘동국세시기’에서는 개장국을 먹으면 더위를 물리쳐 허한 것을 보충해 준다고 하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개고기를 먹으면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주어서,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그 효능을 극찬하고 있다.

 

개고기는 우리 조상의 과학적인 식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전통음식이다. 우리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문화정체성을 포기하는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동물학대라고 하지만, ‘오수의 개’와 같은 의견(義犬)을 비를 세워가며 기리고 있는 것도 우리 민족이다. 우리에게는 가족 같은 개도 있지만 가축인 개도 있다. 가축인 개를 한여름 보신용으로 쓰는 것은 슬기로운 조상들이 전해준 과학적이고 떳떳한 음식문화이다. 오히려 개장을 보신탕, 영양탕, 사철탕, 등 간접적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남북이 함께, 구장, 개장, 개장국으로 부르는 것이 언어와 문화의 분단을 넘어서서 단일 민족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7. 8.11) 

청투데이 8월 16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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