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과 ‘우리’의 모순
이방주
이름에는 소망이 담긴다. 아기가 세상에 타어나면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짓는다. 어떤 모임을 만들 때나, 회사를 설립할 때도 소망과 지표를 담아 이름을 짓는다.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정당도 이념과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지을 것이다.
지금 다시 대통합을 이룬다고 야단법석인 정당 가운데 하나인 열린우리당은 처음에 어떤 소망과 지표를 가졌을까? 함께 정권을 창출한 당을 이른바 배드컴퍼니로 여기고 나가서 새롭게 당을 만들면서 어떤 소망을 가졌었기에 ‘열린우리당’이라는 묘한 이름을 지었을까?
‘열림’과 ‘우리’라는 말은 모순관계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웬만한 재간으로는 조화시키기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열림이란 단어는 ‘시작, 베풂, 펼쳐짐’이란 의미 이외에도 ‘어떤 길이나 바탕이 생김, 처음으로 시작됨, 일깨워짐’이란 의미를 더 가지고 있어서 생각보다 훨씬 철학적이다. 창조적 진화론을 주장한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열린 넋’을 주창하면서 기성사회의 질서를 벗어나서, 전 인류를 포용하는 정신, 곧 열린사회를 실현하는 창조적 정신을 일깨우기도 했다.
‘우리’라는 말은 대부분의 국어사전에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이라는 풀이가 ‘우리1’로 ‘말하는 사람이 자기편의 여러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는 풀이가 ‘우리5’로 수록되어 있다. ‘우리1’이 ‘우리5’로 의미의 확산을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는 ‘묶여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열린’이란 수식어를 머리에 얹은 ‘우리’라는 말로 이름을 지은 것은 단순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열림’과 ‘우리’의 합성은 ‘보수개혁’이라는 말만큼 모순이다. 그러나 정치는 모순 관계를 극복하여 최선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소망을 담은 이름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그들은 열려있는 새로운 우리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떠나면서 그들은 하나의 의미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구유에 사료만 가득하면 대중의 호응을 받아 세력의 확대를 이룰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구유가 바닥났을 때의 처참한 상황이나, 대중은 구유에 담긴 사료의 자질에도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오늘처럼 열려 있는 세계를 향하여 자신이 먼저 뛰쳐나가게 될 것을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을까?
뛰쳐나간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새로운 열림을 실현하기 위한 ‘피흘림’이라고 설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눈에는 보랏빛으로 염색한 소가 되어 들판을 날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열림의 문화는 낯설게 하기를 재미있어하는 대중에게 눈요기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소가 색깔만 보랏빛으로 바꾸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눈가림이다. 한 마리의 소가 보랏빛 소가 되어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면 다른 소들도 따라서 보랏빛으로 염색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내용 없는 보랏빛에는 바로 싫증내기 마련이다. 아무리 희한한 색깔로 염색하고 들판에 뛰쳐나가 온갖 짓을 한다 하더라도 식상한 대중의 지루하기만 하다.
다시 대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은 이제 ‘열림’과 ‘우리’를 모순된 말을 합성하여 이름을 짓는 것과 같은 퍼플카우(Purple Cow)로 대중을 현혹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 마련한 구유에는 확고한 정치적 이념과 과정을 중시하는 순리로 품격을 갖춘 먹거리를 담아야 한다.
정치가들은 수신 이전에 격물(格物)과 치지(致知)가 우선해야 한다. 사물의 본질을 알고 앎을 극대화 하여 스스로 최고의 선(善)에 머물러 구유를 가득 채울 때, 대중은 그런 품격 높은 우리로 몰려들 것이다. 이제 대중은 수준 높은 정치문화가 가득한 구유에 더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활짝 열려 있는 생각으로 세상을 포용할 때, 대중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우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애초에 소망했던 대로 ‘우리1’을 넘어서서 ‘열린’으로 모순 없이 수식될 수 있는 ‘우리5’를 실현하는 품격 높은 문화정치의 길이 될 것이다.
(2007.6.5)
*** 충청투데이 칼럼 게재 6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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