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덤불을 거두는 시정
존경하는 청주 시장님!
이곳 연풍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의 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름다운 청주에서 뼈와 살을 받고 삶의 터전을 이루어 선계와 같은 이곳으로 통근하면서 안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분에 넘치는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시장님!
얼마 전 최근 퇴직한 한 시청 공무원이 쓴 회고록 원고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아름다운 청주 가꾸기에 바친 열정과 헌신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시민의 행복을 위해서 근심으로 밤을 지새운 선우후락(先憂後樂)의 본보기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목민관 아래 훌륭한 공무원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시장님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습니다.
존경하는 시장님!
청주에서 이곳까지는 70km 정도 됩니다. 왕복 삼백오십 리를 운전하기도 힘들거니와 기름값도 만만치 않아서 승용차 함께 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4~5명이 함께 타고 다니므로 경제적일 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도타워지는 이점이 있습니다. 승용차 함께 타기는 이제 생활의 즐거움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시장님!
이른 아침 주중동의 수름재에 나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수름재는 충북의 북부지방에 있는 학교, 관공서, 공업단지 등으로 통근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차를 세우고, 운전당번차를 만나 함께 타는 곳입니다. 이곳은 청주 사회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만남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남만 있고 광장은 없는 만남의 광장이기에 갓길, 인도, 안전지대에 불법 주차한 차들이 즐비합니다. 이곳에 불법 주차해놓고 출근한 직장인들이 종일 가슴 졸이다가 어둑할 때 무사한 자신의 차를 만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시장님!
달포 전에는 몇몇이 주차위반 통지서를 받았다고 하더니, 며칠 전에는 차를 세웠던 공터가 온통 가시덤불로 뒤덮였습니다. 불법 주차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어느 지인께서 가시덤불을 씌워 놓은 것입니다. 위법이라 호소할 길 없는 소시민들은 가슴에 가시덤불을 덮어 쓴 듯 쓰리고 아팠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시장님!
북송 때의 혁신적인 정치인이었던 범중엄(范仲淹)은 그의 악양루기에서 ‘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한 후에 즐거운 일을 즐긴다.)라고 하여 조정의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의 행정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목민심서를 지은 정약용 선생도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수령이 지방의 백성을 돌보는 것이 ‘목민(牧民)’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초 문인 김시습은 소설 남염부주지에서 ‘蓋國者民之國, 命者天之命也. 天命已去, 民心已離, 則雖欲保身, 將何爲哉?’(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명은 하늘의 명이다. 천명이 이미 떠나고 민심이 유리되면, 비록 제 몸을 보전하려 한들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고 시민을 바탕으로 삼는 그의 정치 철학을 토로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시장님!
이제 정부에서도 권장하는 승용차 함께 타기를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민의 가슴에 박힌 가시덤불을 ‘시민보다 먼저 근심하는 마음’으로 거두어 주십시오. 그 방편의 하나로 수름재 부근에 토지를 임대라도 하여 소박한 만남의 광장을 조성한다면,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도 보고, 원거리 통근하는 시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도 될 것입니다. 취임하신 이후 지금까지 특유의 뚝심으로 청주시의 커다란 문제들을 해결하신 시장님을 믿습니다. 시민들은 결코 큰일에만 감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님의 작지만 따뜻한 손길에도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 되어 결코 시장님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시장님!
오늘 아침에는 수름재에 나가 보십시오. 위법도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우선 가시덤불을 거두어 시민의 멍든 가슴의 못을 뽑아주시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장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빌고 또 빕니다.
(2007. 5. 9)
충청투데이 5월 18일 게재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698
2007년 04월 20일 (금) | PDF 20면 |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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