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天知 地知 我知 子知

느림보 이방주 2000. 6. 6. 23:22

  당나라 중기에 이한(李澣)이라는 사람이 옛 사람의 언행을 가려 사언시(四言詩)로 적어 놓은 '몽구(蒙求)'라는 책이 있다. 어린이들의 교과서였던 이 책에는 요즘 세상의 어른들에게도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시 해설을 위한 일화 한편을 소개하고 있다.

 

  형주 땅에 왕밀(王密)이라는 수재가 있었는데, 당시 세도가인 양진(楊震)이 천거해서 창읍이라는 고을의 수령을 시켜 주었다. 그런데 왕밀은 그 은공에 보답하기 위하여 황금 열 근을 품에 안고 그를 찾았다. 양진은 "내가 자네를 아는데 자네는 왜 나를 알지 못하는가?"하고 꾸짖었다. 왕밀은 "밤이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하고 둘러댔다. 왕밀은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내가 알고(我知), 자네가 아는데(子知),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하고 그 금덩어리 로비를 다시 꾸짖었다. 왕밀은 공직자로서의 양진이 당연하게 두려워한 '사지(四知)'의 두려움을 비로소 깨닫고, 부끄러운 황금덩이를 가슴에 품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은밀하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웅변으로 가르치고 있다. 특히 영원한 동지가 없다는 정치인들에게 '아지(我知)', '자지(子知)'란 말은 정말로 간담을 서늘하게 해줄 것이다
 

  요즘 정가는 바라보는 서민을 우울하게 한다. 황금보다도 더 비싼 옷 로비는 사건 자체보다도 속이고 감추려했던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이 주는 실망이 더 크다. 그러나 '아지(我知)'와 '자지(子知)'의 두려움을 무시한 채 도도하던 그들이 당연히 받는 삶의 쓴맛을 보며 조금은 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또 그냥 쓸어 덮은 '나하고 자네만 아는 일(我知, 子知)이라 괜찮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다른 몇 가지 일들이 바로 얼마 후에는 다시 껍질을 벗으며 우리를 우울하게 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우리는 나와 자네 이외에 하늘과 땅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하늘은 삶의 원리고, 진리 원천이며, 양심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땅은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난다는 진실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이러한 하늘과 땅을 지니고 살기 때문에 언젠가는 '아지(我知)'와 '자지(子知)'가 두려운 것이다. 그 옛날에 양진이 깨우쳤던 '사지(四知)'가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깨우침을 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天知, 地知, 我知, 子知' 정말로 두렵지 않은가?

(1999. 12. 6. 충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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