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게임을 준비하는 사과나무
연풍에서도 오지라고 할 수 있는 분지리로 올라가는 길목에 사과 꽃이 피었다. 어머니 머리에 두른 무명 수건처럼 하얗다. 그러나 사과꽃은 그렇게 그냥 하얗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얀 꽃잎의 가장자리마다 봉오리일 때의 붉은 빛이 남아 바알간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 꼭 가을의 소담한 열매를 예고하는 듯 하다. 하기는 지난 가을의 풍요를 생각하면 하얗게 뒤덮인 사과밭이 흐뭇하기만 하다.
나는 길목에 서서 하얗게 꿈을 피운 사과밭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어린 사과나무들이 똑같이 팔을 벌리고 서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꼭 초등학교 운동장의 뙤약볕 아래에 체조대형으로 줄을 맞추어 선 아이들 같다.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예쁜 여고생들 같다. 고개 하나 까딱하는 녀석도 없다. 행여 한쪽 팔이라도 수평에서 벗어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맨 아래 가지는 그대로 똑같이 수평으로 줄을 맞추었고, 두 번째 가지는 또 그대로 똑같이 수평으로 줄을 맞추었다. 하늘로 벋은 곧은 가지는 또 그대로 수직으로 줄을 맞추었다. 획일화된 자연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사과나무는 자연이 알아서 이렇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저 혼자 스스로 알아서 제 몸 꼴을 만들어 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요구가 아니라 인간의 요구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과나무 가지들마다 수없이 많은 사슬에 묶여서 혹은 땅으로 당겨지고, 혹은 다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지 중간에 돌을 매달고 있기도 하고, 가지의 끄트머리마다 쇳덩이를 매달고 있기도 한다. 가지들이 제 본성대로 태양을 향하려 해도 그 가지들의 소망의 크기만큼 땅으로 끌어당겨진다. 비닐 끈이나 돌덩이나 쇳덩이들이 그들의 소망을 절망의 나락으로 꿇어앉히고 있다.
이렇게 어린 사과나무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수형을 잡아간다. 마치 매스게임의 한 동작처럼 그들은 움직일 줄도 모른다. 매스게임의 한 동작을 정사진으로 촬영한 것처럼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가을이 되면 이제 거기 과일이 달릴 것이다. 과일도 또 사람들이 원하는 색깔로, 사람들이 원하는 크기로, 사람들이 원하는 빛깔로, 사람들이 원하는 향기로 매달릴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입맛까지 획일화된다. 영악한 사람들은 사과의 붉기까지 조절한다. 그뿐 아니라 상표까지 새겨 넣는다. 지난해에는 "수능 대박"이라고 새겨 넣은 사과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간의 소망으로 전락한 자연의 소망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쓰럽기만 하다.
사과나무의 매스게임을 바라보면서 암흑처럼 캄캄하기만 했던 나의 고교 시절을 생각한다. 머리를 꼭 4cm에서 6cm까지만 기르라 해 놓고, 학생주임이 자를 들고 교문에 서 있던 시대이다. 동네 이발관 아저씨가 대나무자로 재어 가면서 내 머리를 깎아 주시던 그런 시대이다. 운동화의 모양은 물론 색깔까지, 양말의 색깔까지, 교복 단추까지 단속 대상이던 1968년은 그야말로 암흑 그대로이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였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한다던 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면서 쓸데없는 획일화에 교육력을 기울이던 그 시대이다. "단추 하나에 학교 명예 달렸다."라는 나를 꽁꽁 묶어 놓는 기막힌 표어로 대상을 받고, 위대한 교장 선생님과 조회대 위에서 악수를 할 수 있었던 그 시대이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꽁꽁 닫혀 있는 우리 세대의 사고를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6,70년대의 얼어붙은 사회에서 냉랭한 공기를 마시고 자란 우리가 얼마나 생각을 열어 놓을 수 있겠는가?
혹 규범의 울타리를 벗어나더라도 열려 있는 사고가 더 풍요로운 삶의 영역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맛이 빗나가더라도 자연 그대로 열린 사과가 더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가지에서 함께 달려도 다양한 맛을 내는 사과가 더 경쟁력이 있을 수도 있다. 꽃잎에 남은 붉은 빛처럼 제 맘대로 남기고 싶은 걸 남길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가운데 총체적인 능력이 지대해지듯이, 신맛도 있고 단맛도 있고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는 그런 다양한 모습의 사과가 더 풍성한 수확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일까?
요즘 어린이들은 욕심 많은 엄마들의 등쌀 때문에 사교육의 끈에 묶여 땅에 매달려 꼼짝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팔에는 영어라는 돌도 매달리고, 논술이라는 쇳덩이도 매달린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도록 풀어주는 속에서, 스스로 알아내고 싶은 것들을 가려서 가르치는 것이 그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삶의 광장을 더욱 넓혀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스게임을 준비하듯 사과 꽃이 하얗게 핀 밭두렁에서 사색의 입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2007.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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