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20. 난파선의 분수, 빤떼온에 내리는 하늘의 빛

느림보 이방주 2006. 8. 27. 18:54
 

8월 6일

로마의 마지막 날이다. 로마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모습은 누구 못지않게 바쁘다. 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거리에서나 전철역에서나 걷는 모습이 바빠 보였다. 우리도 덩달아 바쁘게 로마 시내를 휘젓고 다녔지만 갈 길과 볼 것은 아직도 멀고 멀었다. 마지막 날은 오전에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을 찾아 두루 쏘다니고 오후에는 치암피노 공항으로 달려가 예약된 라이언 항공으로 런던으로 날아가야 한다. 런던의 '숲속의 작은 민박'에서 공항에 13시 30분에 차를 대기 시킨다고 한다. 

 

마지막 날 첫 여정은 스페인 광장이다. 이곳은 아름답지만 명성처럼 그렇게 호화로운 곳은 아니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그래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 같다. 이름을 스페인 광장이라 부르게 된 것도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에 처음에는 실망했으나, 130여 개의 계단과 그 위에 있는 삼위일체 교회라나 하는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니, 연인들의 멋있는 데이트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교회는 보수중이었다.

                       스페인광장 계단에서 바라본 난파선 분수 , 꼰도띠 거리

계단 아래 광장 아닌 광장에는 ‘난파선의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베르니니의 아버지 삐에뜨로 베르니니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런 분수 쯤은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 전주 덕진 공원에 가면 연꽃이 만발한 연못 한가운데서 밤이면 분수 쇼를 한다. 정말로 장관이다. 그러나 이 난파선의 분수는 아버지 베르니니의 작품이기 때문에 유명해졌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보면 작은 이 난파선이 예술성이 더 있을 것이다. 분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분수에서 똑바로 뻗은 거리가 유명한 명품 거리인 꼰도띠 거리라고 한다. 명품거리를 걸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묘지로 향했다. 꼰도띠 거리에는 온갖 가죽 제품, 넥타이, 여성의 의류 같은 섬유 제품, 비단, 베네치아에서 본 것과 같은 유리 제품이 진열장 안에서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붙여 놓은 어마어마한 가격에 문을 열고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실크 넥타이 같은 것은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싼 가격이었지만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좋은 제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무덤은 그냥 길가에 있었다. 그의 명성이나 ‘존엄함’에 비해, 그리고 그 무덤의 크기에 비해 그렇게 호화롭게 관리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내원도 없고, 관리 사무실도 없다. 묘지 위에는 향나무나 측백나무가 우거졌다. 우리 나라와는 묘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주변을 너무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바로 옆으로 도로가 나고, 새로 건물이 들어 섰다. 사람들은 거대한 하나의 무덤으로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가 보다. 중국 땅에 있는 우리의 광개토왕의 왕릉도 이렇게 홀대접받고 있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무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무덤을 돌아서 나보나 광장의 분수를 바라보며 빤떼온으로 향했다. 빤떼온은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했을 만큼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한다. ‘빤떼온’은 ‘모든 신의 신전’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 건물이 특이한 것은 높이가 43m 정도인데 안에 기둥이 하나도 없으며, 반원형의 지붕을 벽만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가운데 있는 하늘로 열린 구멍은 지름이 한 9m 라고 하는데 성당 안에 '하늘의 빛'을 쏟아 붓고 있었다. 비가 내려도 그 구멍으로는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내부의 상승 기류가 비를 밖으로 밀어 낸다고 하니 과연 천사의 설계라고 할만하다.

 

교회 안을 인공적인 조명이 아닌 '하늘의 빛'으로 직접 조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창세기에는 하느님께서 "어둠 가운데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을 창조했다고 한다. 성경을 믿는다면, 아니 믿지 않는다 해도 이 신화적 사실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전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인위적인 빛이 아닌 하늘의 빛을 받으며 빛의 주인인 신에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름 9m의 원에서 신이 드리운 은빛 휘장처럼 쏟아지는 '하늘의 빛'은 신비스럽다 못해 경이로웠다. 단지 관람객일 다름인 나도 빛의 창조주가 구멍을 통해서 교회 안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외경감에 사로잡혔다.

                                                        빤떼욘 신전의 외경

                                                빤떼욘의 내부(예배중)

                                      신전의 중앙 돔에 쏟아지는 하늘의 빛

뜨레비 분수로 향하면서 몬테치토리오 광장의 거대한 원탑을 볼 수 있었다. 176년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승리를 기념해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 기둥에는 전쟁의 모습이 나선형으로 새겨져 있고 꼭대기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나선형 그림을 펼치면 한 장의 긴 두루말이 그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꼴로나 광장의 안토니나 기둥

거대한 뜨레비 분수는 사람의 마음을 태탕하게 하는 듯 했다. 건물에서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분수가 엄청난 양의 물을 걷잡을 수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수의 둘레에 빽빽이 둘러섰다. 이 분수는 나뽈리 궁전의 벽을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18세기 초에 공모를 통해 채택된 작품이라고 한다. 조각은 바다의 신 넵투누스, 그의 부하 트리톤, 해마를 중심 모티프로 삼고 있다. 또 이 분수는 바다의 유순함과 사나움이라는 양면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놀랄만한 것은 이 모든 조각이 한 덩이의 원석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바다의 성난 파도 같은 강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이 뜨레비 분수의 야경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나 갈 길이 바빠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또 다시 올 것을 기약하기 위해서 동전을 던지기도 한다지만, 그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나뽈리 궁전과 뜨레비 분수

 

트라비아누스 황제의 시장

  우리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베네치아 광장을 거쳐 트라비아누스 황제의 시장, 옥타비아누스가 부르투스와 사움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건설했다는 아우구스투스의 포럼을 돌아 꼴로쎄움역에서 전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떼르미니역 지하상가의 한 식당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배가 몹시 고팠는지 햄버거 맛이 좋았다.

                                               베네치아 광장과 관광 버스

                                               아우구스투스의 포럼

민박집의 연변 말을 쓰는 ‘이모’님은 우리가 떠나는 것을 남달리 섭섭해 했다. 가족과 친구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참으로 부럽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정스레 해 준 것도 없는데,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어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한다. 우리가 달리 대한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표나게 따뜻하게 대해 준 일도 없다. 다만 저녁에 가족실인 우리 방에서 과일을 먹으면서 가끔 불러 함께 먹기도 하고 가져다주기도 했던 일이 그의 기억에 남는가 보다. 사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 더구나 피가 통하는 한 겨레이니 가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숙소였던 아파트 현관에서

로마의 지하철

아가니니에서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

로마를 떠나기는 참으로 아쉽다. 며칠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가 본 곳을 다 적지도 못했지만, 가보고 싶은 곳을 다 가 보지도 못했다. 그 가운데에서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뽐뻬이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아쉽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이탈리아는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민박집 주인과, ‘이모’와 그동안 들었던 겨레의 정을 다시 나누면서 서둘러 아파트를 나왔다. ‘이모님’은 치암피노 공항까지 빠르고 싼 값으로 가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뜨레미니역에서 전철을 타고 아가니니역에 내려 버스를 기다려 치암피노 공항에 도착했다. 청주공항 보다는 크지만 아주 작은 공항이다. 작은 공항에 비하여 항공기는 수없이 내렸다 뜨고 사람들도 엄청나게 북적인다. 9시 5분 런던행 라이언 항공에 오르기 전에 또 목메는 빵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여행자로서 객지에서의 서러움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이곳의 마른 빵은 실제로 목이 메었다. 갑자기 어렸을적 금방 빻아 온 밀가루를 이이스트를 넣어 만든 밀가루 술빵을 된장국과 먹던 저녁이 생각났다.

로마의 경찰관(무장 경찰은 관광지에 있고,  때로 기관총으로 무장하기도 했다.)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로마 시내를 내려다보며,  15박 16일이지만 충분하지 못한 여행 일정이 못내 아쉬웠다. 유난히 어수선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나라, 어쩌면 우리 국민과 사는 모습이 비슷한 것 같은 라틴족의 삶의 모습, 그 어수선함 속에서 그런대로 무질서의 오명을 벗으려고 애쓰는 흔적이 많이 보이던 나라다. 그러나 아직도 지저분한 거리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생각과는 달리 정이 많이 들어버린 나라였다.

                                                               (2006.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