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프랑스 부르봉 왕조는 유럽 왕정 가운데 최고의 왕권을 휘두른 절대군주 체제였다. 특히 루이 14세는 루이 13세의 아들로 태어나 5세 때인 1643년 즉위하여 약 70년 간 왕권을 휘둘렀다. 1661년에 친정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태양왕이라 하고 왕권신수설 등의 터무니없는 말로 민중을 속이면서 절대 권력 체제를 확고하게 굳혀 나갔다. 그가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한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베르사유 궁전의 입구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3세가 사냥을 즐기기 위한 별장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프롱드의 난’이 일어나 루이 14세는 모후와 함께 피란 생활을 하는 고난에 빠졌었는데, 이 기억이 싫어져서 아예 왕궁을 베르사유로 옮겼다고 한다. 사실 귀족의 섭정으로 시달림을 받다가 간섭하는 그들의 세력을 쫓아내고 나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가까이에서 본 궁궐의 모습
이 베르사유 궁전은 세계 최대의 궁전이라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 왕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왕궁은 크게 H형으로 되어 있으며 다른 건물처럼 후면에 정문이 있고, 정문에서 건물까지는 돌을 깔아 황량하게 보이는데, 건물에 들어가 바라보면 멀리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이득하게 트인 잔디와 인공 호수로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다. 실제로 그 규모와 호화로움을 보면 왕궁이라기보다는 천상의 궁궐에 온 듯 어마어마하다. 크게 궁전, 정원, 부속건물과 왕비의 촌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궁전을 대강 둘러보고, 정원과 왕비의 촌락을 돌아보기로 했다. 궁전은 얼마나 큰 건물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본전, 별관, 안뜰가지 합하여 대략 680m가량 된다고 한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대규모이다. 궁전에서 가장 큰 방은 ‘거울의 방’이라고 한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폭 10.5m, 높이 12.3m로 가면무도회와 파티장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것도 바로 이 방이었다고 한다. 처음 이 방에 들어갔을 때는 하나의 화려한 복도로 생각되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벽과 천정의 그림, 천정에서부터 늘어져 호화롭게 장식한 등이 우리를 눈부시게 했다. 그밖에 루이 14세의 방, 전쟁의 방, 왕비의 침실, 왕실의 조산소 등 공개되는 방들만도 수없이 많고 화려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성당, 오페라 극장, 접견실, 연회실, 무도장은 사치와 향락의 표본을 보는 듯했다. 그 화려함은 공적인 공간이나 사적인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지평선 너머의 미로 속에 감추어진 왕비의 별당은 향락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장 화려한 거울의 방
호화로운 내부의 모습
정원에는 루브르 박물관처럼 분수가 있고, 잔디밭이 있으며, 인공 호수와 운하를 만들었다. 그 꽃밭과 잔디밭, 인공 호수의 양편에는 하늘을 찌르는 교목을 심어 깍두기처럼 전지하여 마치 성벽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보면 정원수들은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어서 반으로 접을 수만 있다면 양편을 하나로 찍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교목 너머 양편에 수많은 정원수로 숲을 만들어 그 사이에 미로를 내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자를 대고 마름질한 것처럼 보이도록 틀을 만들어 내었다. 화단과 화초도 불규칙한 듯하면서도 판에 박은 듯 규칙적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장 낭만적인 삶을 산다는 프랑스인들의 사고에도 의문이 생긴다.
정원의 모습(이 벌판을 달리며 사냥을 했을 것이다)

부속 건물의 정원
궁전 바로 앞 정원의 중앙에 있는 분수대와 인공 운하의 가운데 있는 또 하나의 분수대, 숲 속에 숨어 있는 여러 개의 분수대에서는 오후가 되자 고전음악에 맞추어 분수 축제가 펼쳐지고 있어서 우리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분수 축제는 언젠가 본 전주 덕진 공원의 축제만큼 정교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했다.
정원 인공 호수에서 펼쳐지는 분수 쇼
베르사유 궁전의 거대함은 절대적이었던 왕권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절대 왕정의 오만과 편견을 보여준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가 자신이 곧 국가라고 생각한 오만에서 바로 파멸을 부르게 된 것은 역사에서 수없이 많이 보아 온 것이다. 결국 프랑스 혁명에 의해 그 절대성이 붕괴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만 것이다.
내부를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영국의 버킹검 궁전은 검소하게 보였다. 그래서 검소한 왕정은 아직도 살아 있고, 사치와 향락의 극치를 달린 궁전은 주인을 잃은 채,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 문화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유럽이나 중국의 그것에 비하여 작고 보잘것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그 광활함과 거대함에 놀라서 그에 비하여 우리 것의 왜소함에 좌절한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 역사를 생각해 보면, 나라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큰 국력으로 버텨왔다. 고구려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으며, 신라와 백제도 그 크기에 비하여 주변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현재 우리나라도 크기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문화적으로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숲속의 미로를 산책하는 일행
조선의 국왕들은 검소를 솔선하여 실천하는 것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았다. 그러나 부패한 귀족들의 세력을 막지 못해 멸망하고 말았다. 만일 조선이 멸망하지 않았으면, 그래서 정치적, 문화적 전통을 현재까지 이어왔다면, 우리는 지금 엄청난 국력으로 인류의 삶에 기여할 것이다.
프랑스의 인위적 정원과 우리 종묘나 비원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정원을 생각하면서 순리를 따르는 우리 겨레가 결코 부끄럽지만은 않았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우리 대학생들이 어떤 것을 보고 배우고 프랑스를 떠날지 의문이다. 그들의 밝은 웃음과 활발한 발걸음 뒤에 숙소에서 밤늦도록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젊은이들에 대한 믿음이 앞선다.
(2006. 8.18)
'여행과 답사 > 해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0) | 2006.08.20 |
---|---|
12. 파리를 떠나며 (0) | 2006.08.19 |
10. 루브르박물관 (0) | 2006.08.18 |
9. 로댕 미술관 (0) | 2006.08.18 |
8. 씨떼섬에서 에펠탑까지 (0) | 2006.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