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소나무

서원리 소나무

느림보 이방주 2005. 5. 8. 23:36

  의상 저수지에서 조항산의 구름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고 차를 돌려 속리산으로 향했다. 정작 내속리보다, 내속리를 거쳐 외속리로 가기 위해서이다. 속리산과 구병산이 갈라서면서 이루는 계곡인 서원리 계곡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에 새삼 가슴이 설렌다. 비는 간간히 뿌리고 비를 맞은 녹음은 생기를 머금어 먹구름 아래에서도 하얗게 빛난다.

 

  아내는 산천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예전에는 왜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며 연신 감탄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산천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아내의 눈이 안쓰럽다.  마침 용화에서 화북으로 가는 갈림길에서이다. 이정표에는 농암으로 가는 길목임을 알리고 있었다. 농암이란 귀머거리바위란 뜻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귀머거리가 오히려 세상의 소리를 더 잘 듣고 노안이 오히려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 잘 보게 된다는 것은 자연의 일부인 인생의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산천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아내는 이미 노안이라는 섭리의 길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용화에서는 속리산의 묘봉, 상학봉 등 아름답고 험준한 봉우리들이 올려다 보인다. 온천 개발을 놓고 상주군과 괴산군이 줄다리기를 했던 곳이다. 아직도 그 줄다리기는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저기 파헤쳐 훼손된 자연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용화가 괴산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 온천에서 내려가는 때국물이 상주로 내려간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작은 땅덩이에서 네땅 내땅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기어이 온천 개발은 다시 시작하는 모양이다.

 

  속리산 입구에서 정이품송이 있는 쪽으로 가지 않고 우회전했다. 우회전했다가 말티고개 직전에서 다시 좌회전하면 구병산 뒤편으로 가게 된다. 전에 벚꽃이 만개했을 때 아내와 함께 이 골짜기를 거슬러 오른 적이 있다. 또 한 번 혼자서 구병산에 갔다가 입구에서 쫓겨나 문장대로 향하면서 이 골짜기를 거스른 적이 또 있다.

 

  속리초등학교가 있는 부자 선씨네 기와집이 있는 곳이 서원리 계곡의 입구이다. 골짜기를 계속 타고 내려가다 보면 골을 벗어나기 직전 길가에 서원리 소나무가 보인다. 예전에는 아무렇게나 방치되었던 것을 이제 주변을 공원화하고 다독거린 흔적이 보인다.

 

  사실 자연은 너무 매만지면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 우리나라 계곡의 시내는 방천둑을 너무나 다독여서 오히려 홍수를 만나면 유속이 빨라져 피해가 가중되고, 자연의 미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서원리 소나무 앞 계곡도 시멘트콘크리트로 보를 막아, 주변 산수와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게 보였다. 그러나 소나무 주변에는 적절히 잔디를 심어 조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둘레에 사람이 만들어 꽂아 놓은 것 같은 연산홍이 눈에 걸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멀리서 바라본 서원리 소나무
 
  소나무의 높이는 거의 20여 미터는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둘레는 한 30여 미터는 족히 될 듯 싶었다. 또 이 소나무는 내속리면에 있는 정이품송과 부부지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부인 소나무라고도 한다. 그 시대에 지아비 덕에 벼슬하는 것은 사람이나 소나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정이품송이 붉은 색을 띠면서 곧게 뻗어 드뭇한 가지를 멋지게 늘어뜨린데 비해서 이 소나무는 밑동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두 가지에서 또 다른 잔 가지들이 수없이 갈라져 훨씬 다복하다. 그리고 붉은 색을 띠지도 않는다. 휘늘어진 가지의 멋스러움만이 정이품송의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도도하지는 못하다. 다만 겸손의 미를 드러낼 뿐이다.
 
  주변의 산봉우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이 소나무의 특징이었다. 서원리 소나무가 계곡의 길가에 서서 또 하나의 작은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물소리만이 요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끔씩 지나는 자동차들이 잠깐씩 서서 소나무를 바라보고 간다.
 
 
 

가까이서 본 소나무
 
  소나무도 세월에 따른 문화의 변화를 알까 모를까. 주변의 철책과 가지를 받친 철제 기둥이 보기 싫다. 늘어진 가지가 위험하면 같은 소나무로 떠받치다가 자주 갈아 주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이 병환이 나면  그 무너지는 모습 때문에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한다. 그것은 죽음에 앞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노인을 찾아 안타까운 얼굴을 하면서 문병한다. 노인을 위한 것인지 노인의 아들에 대한 인사차림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보이기 싫은 노인들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를 생각한다면 멀리할 수록 좋은 것이란 ㄴ생각도 든다. 늙은 소나무에 대한 이러한 배려라면 버팀목이라도 조상이 같은 소나무를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알림판도 좀더 멀리 세우면 안 좋을까?
 
  서원리 소나무는 서원리 계곡의 세월을 알면서도 말없이 묵묵히 서 있다. 이 소나무가 시간이나 공간으로 먼 곳을 볼 수 있고 다 기억하고 있다면 지나는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서둘러 차를 돌려 골짜기에서 부끄러운 꽁무니를 빼었다.
(200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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