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60] 이방주
강길수 수필 「어떤 연」---『수필미학』 2025년 봄호 게재
자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연
서울대공원은 기린의 먹이통을 목 길이만큼 높은 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동물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의 일례이다. 기린의 습성을 이해하고 자연을 닮은 서식 환경을 조성해줌으로써 나태한 행동방식에 변화를 주자는 데 목적이 있다. 동물을 보호하고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스스로 자연에 적응하도록 하는 생태주의 사고의 결과이다.
<고스트 앤 다크니스(The Ghost and the Darknes)>는 1996년에 개봉된 스티븐 홉킨스 감독의 공포 영화이다. 1898년 동아프리카 철도공사장에서 두 마리의 사자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사자들의 잔인한 야성이 문명인들에게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나브로 망가져가는 생태계를 두고 ‘야성으로 돌아가라’는 가이아(Gaia)의 제시에 문명인들이 은연중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하여 강길수 수필가는 그의 수필 「어떤 연」(『수필미학』 2025년 봄호 게재)에서 ‘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면 생태계는 원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서서히 진화할 것’이라고 답한다.
작가는 민달팽이를 만난 화장실 세면대를 하나의 생태계로 규정한다. 적어도 ‘세면대’라는 세계에서는 작가와 작가의 아내, 그리고 민달팽이는 동등한 생명체로 존재한다. 생명이란 관점에서는 인간이나 자연적 존재가 수평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의 인식은 여기서 발전하여 달팽이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 다른 동물, 식물 등 모든 지구가 하나의 생명이고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민달팽이에 대한 자아의 감성을 제고시키고 이에 따라 생명을 인식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어떤 면에서 낭만적 생태주의의 일면을 보인다.
작품에서 자아의 내면은 단계적으로 변화하여 행동화에 이르게 된다. 처음 달팽이를 만났을 때는 ‘불문곡직 텃밭에 방생’했다가, ‘싸늘해질 날씨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오랜만에 재회라 여기면서 ‘이질감이 별로 들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 품에 온 생명’이라 여기기로 한다. 중요한 인식의 변화는 사람이 조사 연구한 정보를 찾지 않기로 한 것이다. 자연을 자연의 시각으로 살피고자하는 것이다. 달팽이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그를 달팽이로 인식하지 않은 결과이다. 교감(交感)이다. 달팽이는 친구를 데려오고 급기야 새끼까지 발견된다. 세면대라는 생태계에서 번식하여 대를 이은 것이다. 세면대는 온전한 생태 영역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으로 여기는 가이아는 지구를 은유하기도 한다. 생태학자들은 가이아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한다. 생태계의 일부가 망가지면 지구 전체가 무너진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세면대를 하나의 작은 가이아로 여겨서 달팽이가 꿋꿋이 살아내며 대를 잇는 과정을 해를 넘기면서 관찰한다. 이 관찰 서사를 모티프로 낭만적 생태주의 인식을 담아냈다. 이 작품은 수필의 주제와 소재영역을 확장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9487
어떤 연
강길수
“어! 이게 뭐야?” 나도, 아내도 깜짝 놀랐다. 화장실 세면대 안에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생물 하나가 붙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오륙 년 전, 늦가을 어느 날 저녁의 일이다. 첫 순간은 얼핏 지렁이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나는 불문곡직하고 종이에 그것을 싸 들고 뒤란 작은 텃밭에 방생했다. 그곳은 단풍 든 취나물, 부추, 상추 같은 먹거리들이 아직 있었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을, 이 정도 배려해 주는 것만도 잘하는 일이라 여겼다. 이 생명체와 우리의 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두세 해 더 보였는데, 그때마다 같은 방법으로 처리했다. 방생 횟수가 늘어나는 동안, 밤이면 싸늘해질 날씨가 마음에 걸렸다. 도시 한가운데이니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도 있다지만, 언감생심 그런 생각은 안 했다. 결국, ‘이것도 네가 엉뚱한 곳에 살러 들어와서 자초한 운명이야’라고 속말로 책임을 전가하곤 했었다.
이탠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그 사실도 까마득히 잊었다. 잊는다는 건 다른 만남일까. 지난 늦가을 느닷없이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오랜만의 재회다. 옛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질감이 별로 들지 않았다. 밤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텐데, 전처럼 방생을 구실삼아 버린다면, 한 삶이 나 때문에 명을 단축할 것이 분명했다.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속 갈등으로 변했다.
아내에게 ‘우리 품에 온 생명이니 이번은 그냥 두고 보자’라고 말했다. 마음 모질지 못한 그녀는 동의해 주었다. 처음엔 밤에 거의 나왔으나, 시간이 갈수록 밤낮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처음 활동무대는 세면대였다. 물목 구멍에서 나와서 돌아다니거나 먹이활동을 하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세면대 구조상 그 속은 배수관과 이어진 깜깜한 작은 공간이다.
배수관 중간에 트랩이 있다. 손을 씻거나 세면하고 양치질할 때의 오물들이 들어가 일부가 걸리고, 나머지는 흘러나가는 구조다. 녀석이 트랩을 생존의 터전으로 삼은 건 확실해 보였다. 사람이 조사, 연구한 생존 정보는 일단 찾지 않기로 했다.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연을 느끼고 즐기던 방식을 다시 맛보고 싶어서였다. 자주 만나 함께 하다 보면, 어떤 교감이라도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맞아. 이제야 이 연체동물이 살아내는 방법이 이해되었다. 유기물 먹거리가 있는 유일한 곳이 배수관 오물 트랩이므로. 우리 가족이 씻고 뱉은 때, 침, 가래, 잇새에 끼었던 음식물 조각 같은 것들을 비누나 세제, 치약이 묻은 상태로 먹으며 살아내는 생명이다.
때로는 배가 고팠는지, 세면대 위 비누통 밑에 흘러내린 비눗물을 먹는 광경도 보았다. 다행히 중성 비누여서 망정이지 산성이나 알칼리성 비누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광경을 보는 마음이 짠했다. 이렇게 겨울이 가는 동안, 녀석은 벽타일 사이 줄눈을 따라 기어가며 먹이활동을 하는 것같이 보인 적도 여러 번이다. 먼지를 먹어 무기물이라도 섭취했을까.
그뿐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행동에 제약받지 않는 것 같았다. 거울에 기어오르며 화장하는 듯도 보였고, 바닥 사방을 다니는 모습은 군 당직 사관의 내무사열 같기도 했다. 어떨 땐 바닥과 벽이 자기 산책로거나, 관광지로 보는 것 같았다. 이때쯤 내 느낌은, 녀석이 우리와 보이지 않는 생체 파동으로 교감을 나눈다 싶기도 했다. 우리가 결코 자신을 해치지 않을 믿음이라도 얻었던 걸까.
어느 날, 녀석은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많이 데려오면 어쩌나’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담담히 지켜보았다. 친구는 녀석보다 조금 작았다. 주로 혼자 활동했지만, 어떨 때는 둘이 같이 나와서 서로 만나는 것도 보았다. 애석하게도 친구는 한 달 정도 후엔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건지, 먹거리가 없는 곳이 싫어 떠났는지 아니면, 서로 다투다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더 놀라운 일이 늦봄에 일어났다. 반년을 함께 살았던 녀석이 안 보여 궁금한 지 열흘 정도 지난 아침이었다. 볼일을 보며 책을 읽고 있는데, 오른편 벽타일 사이 줄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쳐다보니 갓 깨어난 녀석의 새끼였다. ‘신생 민달팽이’는 난생처음이다. 어릴 때 냇가에서 놀며 보았던 송사리 새끼가 타일에 붙었나 싶기도 했다. 갓 태어난 생명은 뭐든 귀하듯, 어버이를 볼 때와는 차원 다른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 알고 싶어서 비로소, 웹에서 ‘민달팽이’를 검색해 보았다. 특징적인 것은, 자웅동체이며 야행성이고, 습한 곳에 살며 아가미 대신 폐로 호흡하고, 초여름에 산란한다. 약 한 해 동안 다 성숙하며, 이듬해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러니 고작 만 한 해 정도 사는 생물이었다. 지구촌 모든 생명은 번식 후 사망한다. 생존 기간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알을 낳고 바로 죽는 민달팽이라니, 살신성인하는 생명체였다. 녀석은 서럽고도, 거룩한 또 하나의 생태계 표본이었다.
우리 집에서 민달팽이 녀석들을 만난 것은, 21세기 들어 지구 생태환경의 급속한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갈수록 더 가슴에 와닿는 지구촌 기후변화의 가속화 현상을 저 연체동물이 본능으로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하여, 무엇에 쫓기듯 1층인 우리 집 화장실의 어떤 곳으로 들어와 겨울나기를 하며 번식을 꾀했을 게 아닌가. 만일 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이번에도 예전처럼 방생했더라면, 녀석의 생은 당대에 끝나고 말았을 터다.
한 유튜버 방송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구’란 가상 시나리오 프로그램을 보았다. 요약하면, 지구에서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생태계는 인간 문명의 산물을 시나브로 원 자연으로 되돌리며 진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지구상에 인간이 만든 농장, 도시, 공장, 시설 등 모든 인조물이 허물어져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지구는 다시 생물 다양성이 회복, 발전되며 균형을 유지하고 환경은 쾌적해질 것이다.
그렇다. 어떤 연으로 우리 집 세면기에 스스로 터 잡은 민달팽이는, 온갖 역경 속에 한 생을 살아내며 우리와 교감 나누고 또, 대를 잇고 갔다. 우리도 점증하는 기후변화 시대를, 저 연약한 연체동물 민달팽이와의 연을 거울삼아 꿋꿋이 살아내야 하리….
강길수|姜吉壽, kboni@hanmail.net
* 김천 출생. 『에세이21』 추천완료(2006. 봄)
* 수필집(공저) 『바다로 가는 자전거』, 『존재의 향기』
* 『경북매일』 칼럼니스트
* 경북문협, 산영수필문학회, 수필미학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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