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56] 이방주
이난영 수필 「박물관에 안긴 어머니」 ---『수필문학』 2025년 1,2월호 게재
회광回光하여 반조返照하는 사랑
이방주
회광반조(回光返照)는 ‘희미한 빛이 반사되어 비춘다.’라는 의미이다. 대개 죽음을 앞두고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회광반조 현상이라고 말한다. 불가에서는 삶의 끝자락에서 깨달음을 얻어 내면의 믿음이 깊어지는 것을 이르기도 한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그런데 효도는 일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예로부터 부자자효 형우제공(父慈子孝 兄友弟恭)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가족구성원 간에도 사랑은 수평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부간의 사랑도 수평적이어야 시어머니께 진정한 마음을 담아 공경하고 효도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난영의 수필 「박물관에 안긴 어머니」(『수필문학』 2025년 1,2월호 게재)는 고부간의 수평적 사랑을 평이하고 잔잔한 어조로 그려내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그분이 살아온 여정에 대한 존경심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우리 겨레의 부모님들 삶은 순탄할 수 없었다. 작가의 시어머니도 대가집 규수가 가난한 선비를 만나 ‘지난한 삶’을 살면서 밭일, 삯바느질을 하여 자식을 공부시키고, 치매인 구순 노모를 모시는 등 ‘안갚음’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 시어머니를 ‘우리의 우주’라며 존경하면서 자신도 맏며느리로서 안갚음에 솔선수범한다.
시어머니에게 운명(殞命)의 시간이 다가오고 회광반조 현상이 일어나자 경건하게 임종을 준비한다. 병원에서 ‘속울음을 삼키며’ 집으로 모셔와 ‘생명의 해가 지고 있음을 직감’하여 ‘장롱 속에 깊이 보관한 한복’을 준비한다. 그리고는 ‘제 품에 안겨서 가셔야 한다.’라고 시어머니 마음을 안정시킨다. 생사를 달관하는 사랑이다. 그러면서 ‘어둠의 그림자’를 쫓아내려 ‘고수련’한다. 시어머니 가시는 길에 분홍색 치마저고리로 마지막 배웅의 옷을 입혀드리고 아기를 잠재우듯 품에 안는다. 어머니는 맏며느리 품에 안겨서 ‘꿈을 꾸듯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렇게 시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는 며느리는 그만큼 자애로운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의 빛을 되비쳐드리는 모습에 읽을수록 감동이다.
그리움으로 세월을 보낸 작가는 생각의 반전을 맞는다.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나란한 것이라는 진리를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를 보낸 슬픔과 그리움이 빛이 되어 자아의 내면에 반조된 것이다. 보관해오던 어머니의 치마저고리, 염주, 수계증을 모셔놓고 작별의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모시치마저고리를 박물관으로 보낸다. 소대(燒臺)에 올려 태우는 것이 망자가 편안하게 이승의 강을 건너도록 하는 전통예법이겠으나, 박물관에 모시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어머니가 영생하는 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수필에 수용되는 서사의 중요한 요건인 진정성 있는 고백으로 독자에게 큰 공명을 일으켰다. 효를 넘어선 고부간의 사랑으로 독자에게 깨달음의 빛으로 돌아가 내면에 깊은 믿음을 심어준 작품이라 할만하다.
박물관에 안긴 어머니
이난영
골반을 다쳐 8년 동안 편찮으셨던 어머님이 혼자 운명하실까 봐 더듬이처럼 촉수를 곧추세웠다. 보름 동안 날밤을 새웠더니 다리를 주무르는데 졸음이 쏟아져 머리가 끄덕끄덕 곤두박질쳐졌다. 시계를 보니 11시 50분이다. 내려앉는 눈꺼풀을 손으로 밀어 올리며, “어머니! 저 눈이 자꾸 감겨요. 자도 될까요?” 하고, 여쭈었다. 저녁에 목욕시킬 때만 해도 이상 없었는데 말문이 닫힌 듯 대답을 못 하시고, 회광반조 현상이 나타났다. 생명의 해가 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남편과 아들을 깨우고, 준비했던 한복을 입히는데, 손은 떨리고 어머니 몸은 점점 굳어가고 있어 제대로 입힐 수가 없었다. 간신히 속옷과 속치마를 갈아입히고, 버선까지 신겨드리고는 마지막으로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입혀드렸다. 새색시처럼 선연했다. 품에 안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승의 번뇌를 해탈한 듯 염화미소 지으며, 0시 13분에 자는 듯 가셨다.
할머님의 오랜 치매로 온 가족, 특히 어머니는 긴장의 나날을 보냈다. 할머님이 90세에 영면에 들자, 대추방망이처럼 야무지단 소리를 듣던 어머님은 탈진증후군에 시달렸다. 다행히 78세에 바느질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인생 2막을 시작하셨다. 봉사활동을 하며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던 중, 82세에 골반을 다쳤다. 정신은 또렷한데 옴짝달싹 못 하시니, 애절초절함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몇 개월 입원 치료하였으나 조금의 차도도 없으니 의사 선생님은 큰일을 대비하란다. 속울음을 삼키며 집으로 모셔 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표정이 밝아지셨다. 하지만, 해가 서산에 기울 듯 시나브로 쇠잔해지셨다. 갖은 정성 다해도 백약이 무효였다. 어머님은 청주의 대갓집 규수가 시골 가난한 선비를 만나 지난한 삶을 사셨다. 선비인 아버님을 대신해 집안일과 들일을 도맡아 하며, 삯바느질까지 하셨다고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60∼70년대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들들을 대학교에 보낸 현모이시다. 빚은 물려받았으나 그런 어머님을 위해 우리는 평생 어머님 뜻을 어기지 않고, ‘안갚음’에 최선을 다했으나 아픔과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삶의 마지막을 “한 세상 잘 살았노라. 행복했노라.” 웃으며 가실 수 있도록, 선녀처럼 고운 모습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화사한 분홍색 실크 한복을 채비하여 머리맡에 놓으며, 어머니는 우리의 우주였다고 말씀드렸다. 내 손을 꼭 잡으며 “타고난 맏며느리였다.”고, 고마워하시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양한방 치료를 병행하였다.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인지, 양방과 한방의 융합이 효험을 보인 것인지, 옴짝달싹 못 하던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머리맡에 두었던 한복을 신줏단지 모시듯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 2년이 지나자, 보행 보조기에 의지하고 화장실 출입이 가능해졌다. 앉은뱅이처럼 누워서 저승 문을 들어설 수 없다는 어머님의 굳은 의지가 기적을 만들어냈지, 싶다. 8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아들, 딸, 손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90세의 생신상을 받으셨다. 보고 싶은 자손들을 모두 보았기 때문일까.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셨다. 어둠의 그림자를 쫓아내려 고수련해도 소용이 없다. 장롱 속에 깊숙이 보관하던 한복을 꺼내 머리맡에 놓으며, 제 품에 안겨서 가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맏며느리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던 어머님은 내 품에 안겨서 꿈을 꾸는 듯 먼 여행을 떠나셨다. 인생 소풍 끝내는 모습이 천사처럼 고왔다. 팔 년을 누워계셨는데도 천명을 다하셨기 때문일까. 너무도 평온한 모습에 슬픔은 안도로 바뀌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렇게 고운 옷 입고 가시는 분은 처음 본다며, 복인이라고 추어준다. 장례를 마치고 옷을 정리하는데 회한의 눈물이 쏟아졌다. 비읍하여 어머님의 삶이 오롯이 배어있는 모시 치마저고리와 염주, 그리고 수계증을 보관했다. 유품을 볼 때마다 이승의 인연을 내려놓고, 새처럼 바람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은데,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도 20년을 보관했다.
지난해 말,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나란히 같이 걸어간다는 것을 터득할 정도로 가까운 친인척과 지인들의 애석한 소식을 자주 접했다. 특히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동서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하여, 나도 주변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어머니 옷이 고민되었다. 아들에게 대물림할 수도 없고, 재활용함에 넣자니 죄스러웠다. 고심 끝에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문의했다. 흔쾌히 가져오란다. 모시 치마저고리와 수계증을 상에 올려놓고 큰절을 올리고, 박물관으로 가져갔다. 박물관에 안착하기를 기도하면서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다. 어머님을 대하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모시옷을 기증한 지 100일째 되는 날 궁금하여 박물관에 전화했다. 보존 가치가 있다고 한다. 어머니의 체취가 배어있는 모시옷이 박물관에 안긴 것이다. 안도와 감사함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이 사르르 떨렸다. 꽃잎 떨어져도 향기가 남아 있듯 어머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오래되었지만, 그 향기는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있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숨결로.
약력
ᄒᆞᆫ맥문학 등단(2000)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필문학상수필집 <난을 기르며> <행복부스터> <바람을 덮다>
이메일 lny29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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