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수필은 개인의 뿌리에서 피는 꽃- 이태준의 『無序錄』을 읽고 -

느림보 이방주 2024. 2. 5. 09:26

서울 문학 광장

고전에게 길을 묻다 1 (2024. 2. 21.)

수필은 개인의 뿌리에서 피는 꽃

- 이태준의 『無序錄』을 읽고 -

이태준의 수필집 『無序錄』을 대하는 순간 그의 수필관이 보였다. 그의 수필관은 화가이며 수필가인 김용준의 그림으로 알려진 표지화에 한마디로 시사되고 있다. 활짝 핀 수선화가 뿌리까지 다 드러났다. 그는 ‘작품은 개인의 뿌리에서 피는 꽃이다.’라고 했다. 18세기 독일의 시인이며 철학자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닿아있다.’라고 말했다. 소재를 관찰할 때 불가시한 영역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 말이다. 김용준은 이태준의 말을 담아 표지화를 그렸을 테지만, 지금 우리는 노발리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곳까지 대상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문학 작품은 이와 같이 시대가 바뀌고 공간을 옮겨가면 조금씩 다르게 해석된다. 이것은 시대가 달라도 그에 맞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고전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에게 공명을 일으키나 보다.

『無序錄』의 표제는 낯설다. 표제가 의미하는 바가 얼른 들어오지 않는다. 『無序錄』은 서문도 발문도 없다. 다만 그런 것만을 의미할까? 요즘 수필가들의 작품집은 40~50편쯤 되는 작품을 주제별로 묶어 4부 또는 5부 정도로 부제를 붙여 싣는 것과 다르다. 『無序錄』은 부별 가르기도 없다. 어떤 순서로 작품을 실었을까. 그런 질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작품 한편 한편을 읽어보면 구성에 신경 쓴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생각이 가는 길을 담담하게 따라간 글이다. 이것이 『無序錄』이다. 표제도 그의 수필관을 함축하고 있다.

『무서록』을 읽기 전에 그의 저서 『문장 강화』에서 말한 수필관을 요약해본다.

 

- 자연, 人事, 만반에 대한 단편적인 소회, 의견을 가볍고 소박하게 서술하는 글이다.

- 하고 싶은 대로 자기를 표현하는 글이다.

- 설명으로든 묘사로든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이다.

- 솔직하기 때문에 논문보다 오히려 찌름이 빠르고 날카롭고 형식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경(詩境)이나 가벼운 경구 유머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 첫 문장부터 그 사람의 자연관, 인생관, 습성, 취미, 지식과 이상 등 ‘그 사람의 것’이 재료가 되어 나오기 때문에 심적 나체이다.

- 수필은 ‘자기의 풍부’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한다.

 

『無序錄』에는 그의 수필관이 수용되었다. 일상의 체험에서 얻은 전통적 수필, 문학론, 여행기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전통수필 작품의 소재는 대개 자연과 인사, 사물에 대한 소회나 의견을 밝혔다. 자연은 물, 꽃, 바다를 소재로 삼았고, 인사로는 죽음과 고독 같은 문제, 술과 문필을 소재로 삼았다. 사물로는 벽, 필묵, 수목을, 문학론은 소설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소설을 장편(掌篇), 단편, 중편, 장편으로 구분하여 그 특성과 가치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장편(掌篇)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이 특이하다. 아울러 조선의 소설들, 소설의 맛, 고전소설 중에 춘향전에 대한 견해를 강한 비판적 어조로 밝혔다. 여행기는 혜촌일기, 만주기행 등을 소재로 기행문의 전형적인 형식인 여정, 견문, 감상을 밝혔다.

한국의 전통수필은 교술로 시작하여 ‘사실 체험에 대한 해석’으로 일관해온 것으로 본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으로부터 시작해서 고려 말의 이규보, 이곡 등의 수필, 조선시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담긴 수필, 사대부들의 가사문학, 여인들의 가사와 수필이 ‘사실 체험+해석’의 형식을 유지해 왔다. 1930년대 서구의 에세이가 들어오면서 전통수필은 그 영역을 확장하여 현대 수필의 모습을 확립하였다. 이에 『無序錄』의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하였다.

이태준의 『無序錄』은 1941년 간행되었다고 하니 대부분 1930년대 창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장 표현이 요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은 전통수필을 형식의 틀로 삼고 우리네 정서를 바탕으로 서구 사상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태준 수필의 소재는 대부분 삶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일상이다. 일상의 소재들을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 자아를 돌아보는 수필의 전형적인 사고 과정을 통하여 삶의 철학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그 일상이 개인적인 정서나 감상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진리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필가들이 가족이나 직장 같은 한정된 범위에 머문 것과는 많이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無序錄』은 대상을 바라볼 때 오늘날 수필가들도 쉽지 않은 전략적이고 단계적인 인식의 과정에 따른 점을 엿볼 수 있다, 대상에 대하여 먼저 감각을 통하여 외양과 형상을 인식하고, 대상의 본질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쉬운 점은 본질을 기능적인 면으로 분석하고 우주적 원리라든지 영적 본질에 이르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태준은 수필쓰기에서 인식도 중요하지만 형상의 과정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구성의 방향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편을 읽어보면 집필하기 전에 내적으로 치밀한 구성을 마친 후 집필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구성이 없는 글이 이처럼 빠르게 독자를 빨려들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성 뿐 아니라 문장 표현에도 절대 ‘날것’을 쓰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의 언어와 문학적 언어가 다름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수필에서도 ‘말하기’보다 ‘보여주기’로 표현했고 비유법과 상징적 어법을 썼다. 그의 작품에서 비문법적문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퇴고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無序錄』에서 섭섭한 점은 종교에 대한 인식, 한국고전소설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데 개성적이기는 하지만 현대인의 안목으로 볼 때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춘향전을 ‘진실성이 없다’고 평가한 점이라든지 ‘종교는 철학도 교육도 아니고 미신이다’라는 견해는 현대인의 눈에는 거슬릴 것으로 보인다. 또 섭섭한 점은 모든 작품에서 기대했던 식민지라는 역사적 질곡에서 식민지 국민의 의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민지적 무의식은 지식인으로서의 딜레마라고 이해할 수도 있어 이해는 간다.

문학작품이나 한시에 대한 견해를 밝힌 작품은 조선시대 시화(詩話)의 틀에 바탕을 둔 듯하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 아울러 자신의 삶에 불러들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있다. 한시를 앞에 놓으면 한시의 문학성에 대해 기술하였고, 한시를 말미에 삽입하면 자신의 심경과 정서를 함축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깊이 있는 문학적 교양도 오늘의 수필가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태준은 수필은 첫 문장에 이미 작가의 모든 교양이 드러난다고 했다. 오늘날 수필가들은 자신이 선정한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無序錄』은 전통수필에 서구의 에세이를 접목하여 수필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수필을 쓰던 시대로부터 거의 100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오늘의 수필가들은 『無序錄』에 감동하면서 거기에 머물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수필의 세계를 열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930년대를 살았던 문학인 이태준의 고민은 비정상적인 역사를 대하는 민중들의 인식이었을 것이다. 또한 품격 놓은 우리 문학을 지키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서구의 문화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비정상적인 역사를 회복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 속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문학이라는 그릇에 어떤 문명을 담아야 할까 하는 문제였던 것 같다. 『無序錄』에는 그러한 고민이 담겨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이 또한 왜곡된 역사 속에서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문학인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창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

2020년대 문단은 수필문학이 사회, 문화, 가치를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문학인으로서의 역사와 시대에 대한 고민이다. 지난 세기가 정보산업이 중심 가치를 지향했다면 금세기는 생태문화가 가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문명은 생태계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였다. 인간은 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라는 수평적 사고로 대상을 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페미니즘과 결합하여 에코페미니즘이라 한다. 2020년대 수필은 에코페미니즘을 인식의 바탕에 두고 대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수필은 사실을 소재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어휘, 문장, 표현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수필가는 작가 자신이므로 일인칭 서술일 수밖에 없다는 사고에 갇혀 형상의 범위가 넓지 못하다. 물론 허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사실+수필적 상상’의 범위 안에서 어휘, 문장, 표현의 기법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생태주의 문화나 페미니즘을 형상하기 위해서는 섹슈얼리티의 수필적 표현 방법도 연구하여 시도해야 한다고 본다.

『無序錄』은 구성이 없는 듯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으로 짧은 글로도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것은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서사적 구성에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수필적 상상의 제약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과 함께 그 속성을 계속 추구하여 물질적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적 속성을 통하여 원형성을 발견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아를 돌아보는 수필적 상상의 단계적 전략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서 그런 원형성을 바탕으로 우주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 원리를 삶의 철학으로 개념화하는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새 시대의 수필적 상상의 전략적 단계이고 이러한 단계를 거칠 때 구성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1941년에 발간된 이태준의 『無序錄』을 읽으면서 그가 오늘의 수필가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을 생각해보고 우리 수필가들이 창작에 임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특히 감명을 준 작품은 홀로가 아닌데도 고독을 느낀다고 고백한 「고독」, 역사에 대한 인지적 견해를 밝힌 「역사」, 오늘의 작가에게 주는 고언(苦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소녀의 애틋한 마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작품애」 같은 작품이다.

수필은 철학과 문학 사이에 있다고 한다. 철학적 인식을 문학적 언어로 형상화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수필은 짧은 글이므로 단숨에 쓰고 발표해 버리면 되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더 깊이 새기게 되었다. 어휘 하나, 조사, 어미 하나까지 끝까지 퇴고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더 굳게 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