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월평]미적 울림을 위한 통찰과 구조화 전략

느림보 이방주 2023. 12. 1. 21:33

미적 울림을 위한 통찰과 구조화 전략

- 한국수필 12월호를 읽고 -

이방주

수필가들은 수필문학이 문단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문단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한다.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수필가들의 책임이 더 크다. 수필가나 독자는 수필문학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 양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이다. 형식도 구성도 필요 없이 붓 가는 대로 일상을 서술한 것이 수필이라고 생각하는 수필가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수필의 역사를 일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수필은 100년 전쯤에 서구의 에세이를 받아들여 불모지에 이식하여 현대 수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수필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 독자들 뿐 아니라 일부 학자들이나 평론가들도 이런 잘못된 인식으로 수필을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평론가들은 시 창작이나 소설 창작의 이론을 토대로 수필의 문학적 가치를 판단하려고 한다. 심지어 수필 창작은 특별한 원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평론가도 있다. 수필의 창작 이론을 알고 수필의 미적 가치를 바르게 비평할 수 있는 수필 전문 평론가가 아쉬운 상황이다. 수필은 체험한 사실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작품의 뼈대가 된다. 체험한 사실을 통찰하여 인식한 서사가 기둥을 이루고, 서정성과 미적 구조화로 마무리 되어야 독자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필 평론은 서사 내용에 중심을 두어 그것에 대한 설명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 수필의 문학적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수필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원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부당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12월호의 월평은 체험의 내용보다 체험이라는 서사 내용을 통찰하는 방법과 미적 구조화에 중심을 두고 읽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 작가의 제재에 대한 통찰의 깊이, 통찰의 내용에 대한 미적 울림구조에 담아내는 수준, 전통 수필의 구조의 수용 정도를 알아보기로 한다.

전통수필은 체험과 사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구조이다. 전통수필은 교술적 진술에 철학적 해석과 수필적 상상을 통한 형상화가 이루어져 서사와 서정이 통합된 생활의 문학이다. 한국 수필문학은 고려시대 수필의 ‘사실 체험+해석’이라는 구조를 원형으로 고수하고 있다. 다만 고려 수필이 사실과 해석으로 단순하게 양분되는 구조인 반면, 조선 수필은 체험한 사실과 일화마다 해석하고 의미를 찾는 다변적인 구조로 계승 발전하였다. 거기에다가 논리적인 분석과 정서적인 심의(心意)가 배어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12월호는 통권 346호를 맞으면서 월간 『한국수필』이 그 작품성을 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2월의 마음에 15편, 한국수필작가회 특집에 13편, 12월의 향기에 15편, 사색의 뜰에 16편 등 모두 59편이 실렸다. 59편의 회원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를 생각했다. 지금까지 월평은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 지각적 인식, 오성(悟性)의 단계를 거친 주제 의식에 중점을 두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문학이 인식과 형상으로 완성된다면 수필 비평이 주제 인식과 의미화 문제에 중점을 두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수필은 작가나 독자 모두 주제 인식에 더 큰 관심을 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필은 무형식의 문학이다.’라는 말은 구성이나 서사의 구조화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12월호 작품을 읽는 동안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로 전통 수필의 구조적 특징을 수용한 작품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이번호의 작품이 모두 훌륭했고 전통 수필의 구조적 특징을 수용한 작품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다음 몇 작품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김아가다의 「원초적 본능이라구요」는 병원에서 노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던 체험을 소환하여 원초적 본능이라는 인간 삶의 원리로 해석하여 의미화하였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선 노인들의 성정체성에 대해 작가는 사유한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누를 수 없는 무의식의 원초적 본능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작가는 두렵다. 끝이 없는 인간의 성적 본능, 이는 쾌락이 아니라 원초적 본능의 창조사업이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뺑긋이 웃으며 한번 하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무얼 하자고? 뜬금없는 소리에 황당했다. 어머님은 점잖게 사셨고 팔남매 자식을 잘 키운 훌륭한 분이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주절거렸다. 요양보호사는 익숙하게 들어온 말에 무심한 척 “원초적 본능이지요.” 한마디 던지고 나가 버렸다. (체험)
(중간 부분 생략)
인간의 정신세계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있다고 한다. 누르고 참아야 할 만큼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버리라고 하는데, 의식의 창고에 쌓인 것들이 무의식 상태가 되면 은연중에 돌출하게 된다고 한다. (해석)

‘체험한 사실의 서사적 전개 → 해석과 의미화 → 체험한 사실의 서사적 전개 → 해석과 의미화 ……’의 병렬식 전개로 주제를 명확하게 나타낸 좋은 사례이다. ‘한번 하자’는 치매 노인의 말에 대하여 ‘무의식의 상태가 되면 은연중에 돌출’하는 상황이라 해석한다. 독자들도 이러한 해석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 수필에서 흔치 않은 섹슈얼리티한 표현도 천박하지 않게 수필적 사유로 승화시킨 점이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전통 수필의 구조적 특징을 수용하면서도 섹슈얼리티한 표현으로 벗어나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민아리의 「해후」는 고향인 청주에 있는 월리사(月裡寺)를 탐방했던 체험을 소환하였다. 작가는 생후 9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읜 바람에 아버지와의 아무런 기억이나 추억이 없다. 아버지가 즐겨 찾으시던 청남대 부근 샘봉산 아래 월리사를 들르게 되면서 65년 만에 이루어진 아버지와의 해후. 탐방 체험을 하면서 ‘무덤덤했던 아버지로부터 닫았던 문을 열었더니 태양빛이 들어왔다며’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수행과정도 없이 ‘문득 깨닫는다.’는 돈오(頓悟)로 의미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아버지와의 무덤덤한 관계, 월리사에서 느낀 아버지의 숨결, 그 후 아버지에게 차츰 다가가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돈오와 같은 어느 순간과의 조우에 이른다. 월리사는 ‘달안절’로 불리는 성역 같은 공간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 월리사에서의 ‘해후’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차적 진행 방식으로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구조를 기승전결의 탄탄한 구성으로 잔잔하게 이끌었다.

체험이 체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을 의미화하는 우리 전통 수필의 구조로 전개함으로써 독자에게 공명을 주고 글의 품격이 한층 상승되었다.

박기옥은 그의 작품 「담장 너머」에서 또 다른 삶의 영역의 의미를 찾아내는데 성공하였다. 퇴직 후 혼자 살면서 겪는 삶의 애환을 몇 개의 삽화로 보여준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일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가뿐히 해결됨을 느끼면서 스스로 자신을 담장 안에 가두고 살아왔음을 인식한다. 여태껏 담장을 쌓는 일에만 열중했던 것을 후회하며 이제 담장 너머에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는다. 소환한 몇 개의 체험 일화는 담장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장자가 제물론에서 밝힌 것처럼 ‘저것에도 하나의 是와 非가 있고, 이것에도 하나의 是와 非가 있다.’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나에게만 옳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장 너머에도 옳음이 있다는 깨달음을 갖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작가는 자신의 담장 쌓기를 ‘나와 남을 구분하는 바로메타로 이해하고, 나의 영역을 지키는’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담장은 이쪽과 저쪽을 경계 짓는 일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기에 담장이 있는 것이라고 담장의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 돋보인다. 다만 삽화를 한두 개로 단순화하고 해석을 더 깊이 있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언필의 「어머니의 단골」은 작가의 단골이 된 약국에서 어머니의 단골을 떠올린다. 내가 약국에서 얻은 드링크제가 그 약국을 단골로 삼게 된 매개가 되었듯이 어머니는 당신의 단골 ‘당골에미’에게서 실낱같은 희망과 따뜻한 위로와 잠깐 동안의 일탈의 즐거움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단골 관계에도 상호성이 존재한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동네 약국에서 나는 드링크제를 덤으로 받았고, 그것이 단골 관계를 유지해주는 끈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당골에미로부터 무엇을 얻으셨던 것일까. 점괘를 통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을까. 속절없는 세상사로부터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따뜻한 위로를 받았을까. 아니면 옥죄어 오는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그저 잠깐 동안 일탈의 즐거움을 맛보았을까.

현재 자신의 단골에서 과거 어머니의 단골 그리고 다시 어머니 미래의 단골을 기원하는 삼단 구성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단골이라는 소재를 들여와 한과 설움으로 점철된 어머니의 삶을 조명한 점이 감동을 더한다.

강현자의 「태풍」은 태풍을 맞아 처참하게 망가진 텃밭을 돌보는 자신의 체험과 지인에게 닥친 고난을 태풍에 비유하여 바라보는 체험을 유비구조로 구성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자연적 태풍이라는 체험과 작가가 바라본 지인의 인생 역정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천착해낸다. 자연 속에서 식물이나 사람이나 생의 고통을 겪고 일어서는 모습이 닮아있음을 교차구성을 통해 넌지시 보여준다.

그는 바쁘다면서 볼일을 보고는 바로 차를 다시 돌렸다. 더는 물어볼 수 가 없었다. 그나마 바쁘다니 안심이다. 그에게도 태풍은 예외가 아니었나 보다. 
누구의 관심도 지금 그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내 텃밭의 바라미들이 스스로 일어서듯이 어떻게든 그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일어서고 있는 중일 것이다. 기다려주는 것, 그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태풍 뒤의 초록이 더욱 진하다.

체험과 사실의 해석의 구조가 보이는 대목이다. 마지막 태풍 뒤의 초록을 기대하는 단순한 문장이 깊이 있는 의미를 함유한다. 체험한 사실을 철학적 의미로 해석하여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상상의 여백을 주어 진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은영선의 「존재의 모습」은 여행을 좋아하여 평소 이곳저곳을 다니다 작가는 ‘좋은 땅’을 산다. 꿈같은, 그림 같은 집을 샀지만 생활에 지친 그녀는 꿈이 고단으로 바뀐다. 다시 땅을 팔기로 하면서 그 땅이 잘못 산 땅이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땅을 보는 식견이 본인과 달리 긍정적인 지인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깨닫고 원망하던 땅에서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 상상 속에서 땅은 이미 충분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며 미래의 주인의 멋진 삶을 기원한다.

일상에서 얻은 체험을 ‘관점에 따라 존재는 완전히 모습을 바꾼다는 깨달음’으로 의미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정-반-합의 변증법적 사유의 방법으로 구성하여 효과를 본 작품이다.

이 밖에도 김성열의 「겨울나무」 장재현의 「마음의 창」도 체험을 통하여 삶의 철학으로 해석하는 구조를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했지만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수필은 짧은 산문이므로 치밀한 구성으로 완결지어야 의미가 독자에게 온전히 전해지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수필을 쓰고 싶다면 전통 수필의 구성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사고 체계가 사실 체험+해석으로 이루어진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전통수필 구조를 지키면서 21세기를 맞는 새로운 사유로 벗어나기를 시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