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들려주는 사유의 원형을 찾아
『한국수필』 1월호를 읽고
이방주
수필쓰기는 대상의 본질을 천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수필가들은 소재를 인식하기 위하여 감각, 지성, 오성(悟性), 영성(靈性)을 동원한다. 다시 말하면 오감(五感)으로 인식하기, 지성으로 인식하기, 오성으로 인식하기, 영성으로 인식하기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인식의 단계에서 감각적 인식 단계는 대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물리적인 본성을 인식하게 되고, 온갖 지적 정보를 동원하여 통찰한 다음, ‘나만의 깨달음’을 얻는 단계에 이르면 대상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 발견한 삶의 철학은 개념화된 진리이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게 마련이다. 이때의 울림은 영성으로 인식하여 깨달음을 얻은 삶의 원리일수록 울림은 크다.
원형(原型 archetype)이란 문학과 사상 전반에 보편적인 개념이나 상황으로 여겨질 만큼 자주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근본적인 상징, 성격, 유형을 말한다. 이것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 감정이 억압된 그림자도 있지만,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간직한 선험적인 인류 보편의 무의식도 존재한다. 이것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한다. 집단 무의식의 근본적인 유형을 우리는 원형이라고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심상 유형과 상황, 즉 사유의 원형은 독자와 저자가 지적 정서적으로 교집합을 이루어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인식 단계에서 원형성을 발견하여 형상화 했을 때 독자에게 보다 빠르게 공명(共鳴)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의 전통수필은 기행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우리 수필의 기원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바로 오천축국을 돌아본 여행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의 기록은 여행지에서 본 사실과 체험에 대하여 간략한 의견과 의미를 덧붙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기원한 조선시대 기행수필이나 기행가사를 살펴보면 역시 ‘사실의 체험+의미 해석’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월호에 발표된 작품 58편 가운데 여행을 소재로 한 수필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행을 소재로 했다고 하여 모두 기행수필로 보기에는 오늘날 수필은 많이 진화되었다. 시간적 순서를 따라 여정 위주로 간단한 의미를 부연한 기행문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기행수필은 여행 중에 의미 있는 소재를 발견하여 인식의 단계적 전략으로 본질을 추구하여 삶의 원형을 바탕으로 해석한 글이라 하겠다. 그래서 기행수필로 규정할 수 있는 몇 작품과 삶의 현장에서 찾아낸 삶의 원형성이 돋보이는 작품 한두 편을 뽑아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향희의 「길나들이」는 임진강을 트래킹하며 이념의 경계에 위치한 임진강이 품고 있는 애환의 역사를 소환한다. 지금은 분단의 현장이지만 태초부터 이어온 치열했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강은 말없이 상처를 끌어안고 흐른다. ‘상류 지역에 댐이 준공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라며 생태계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걱정한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함에도 인간의 이기(利己)에 순환의 고리가 훼손될까 하는 염려를 드러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새들을 보며 ‘임진강’을 작사한 월북 작가 박세영이 고향이 그리워 재두루미가 되어 경계 없는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닐까 상상을 하기도 한다. 임진강 둔치를 걸으며 강은 세파의 역사를 품어 안고 흐르듯이 자연의 생태계도 인간의 삶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흐르기를 소망한 기행수필이다.
이 작품은 강의 흐름에 역사의 흐름이라는 의미를 붙여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임진강의 흐름이라는 대상을 인식의 전략적 단계에서 ‘흐름’과 ‘경계’라는 원형 상징성을 찾아낸 점이 독창적이다. 강이 자연 그대로 흐르지 못하고 이념에 의해 막히고 극복해야 바다로 갈 수 있는 것은 상처를 안은 우리의 역사의 모습과 같음을 발견한 점이 독창적이다.
진연화의 「여행의 이유」 는 ‘그녀’와 여행을 약속하고 부산이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여 다른 객차에 타고 간다. 이러한 공간의 설정은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와 그간의 서로 다른 삶을 대변한다. 자아는 나이 들어감에 따라 ‘육신의 효용’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몰락한 자존감을 끌어안고 떠난다. 그러나 목적지에서 만난 그녀는 그동안 어려웠을 삶과 다르게 ‘긴 머리를 휘감았던 삶의 비듬을 털어내고 다듬어진 짧은 머리에 행복 비늘이 반짝인다.’ 그녀가 겪은 어려움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그를 바라보지만 오히려 그녀로부터 긍정의 에너지를 받는다.
미움을 밀어내고 그리움을 밀어내며 진공 상태로 견뎌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는 듯이 살아냈다. 감정의 무덤을 향해 사랑의 분무기를 뿜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언제부터인지 부정적 기운은 쇠했고 긍정의 에너지로 희망을 쏘고 있었다. 꽁꽁 싸맸던 감정을 분출하며 접혔던 시간 밖으로 나와 세상과 악수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작품의 결미 부분이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도 그녀가 견뎌내면서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세계와 화해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여행지에서 여행지의 문물, 풍토, 인심을 기록하는 기행문과 분명히 다르다. 자아의 변화와 성장의 가져오는 내면의 흐름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구조로 기행수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매우 개성 있는 비유와 상징적 언어로 독자들이 미적 긴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희의 「어느 멋진 가을날의 풍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친구와 가을 여행을 떠난 작가는 내장산을 갔다가 백양사에서 다시 담양의 가마골로 행선지를 바꾼다. 가마골은 6.25때 격전지로 의대생들이 실습자료를 위해 수많은 뼈를 추려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작가는 으스스한 이야기에 무서움과 호기심을 안고 목적지에 당도해보니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절경에 흠뻑 빠지고 만다. 빼어난 가을 풍경이 예술과 멋의 극치를 이룸에 절로 신께 감사를 드린다.
생명의 근원을, 인간의 영혼을 에워싸는 산 자신은 슬프지만,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기쁘게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산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불붙음을 구경하러 가을 산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니던가, 정녕 사람들은 자신에게 투영해 오는 그 불붙음을 속속들이 알아보고 나중에는 자신에게까지 감전시켜 불태우고 있는 것이리라,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의 영혼이 교감되는 심정으로 불타는 가을의 정취를 몹시도 사랑하는 것이리라.
작가는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산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기쁘게 자신을 불태운다며 경건함을 표하기에 이른다. 여행을 하면서 여행지의 정보나 감상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결부시켜 의미화한 점에서 기행수필의 면모를 보여준다. 가마골로 가기까지의 서두와 결미를 주제에 긴밀하게 연결하는 구성에 관심을 가지면 더욱 발전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피귀자의 「흐르는 길」 은 서두에서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때가 있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보다 여행지에서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문을 연다. 작가에게 여행지의 풍경은 자연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여행은 만남이라고 한다. 조지아카즈베기에서 만난 두 아가씨, 매스티아 우쉬굴리 빙하의 낯선 곳에서 만난 다양한 직업의 한국인들, 아제르바이잔의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 애틋하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이미 이어져왔던 것처럼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 꿈이 되고 치유가 되고, 사랑이 된다고 하였다.
기행문에서의 대상이 풍경이나 역사가 아닌 사람을 다룬 점이 색다르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에 대한 의미화가 잘 이루어진 점이 돋보인다. 창작과정에서 구성이 주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음을 유념했으면 좋겠다.
김병진의 「장흥 천관산 억새 산행 가던 길」 은 천관산의 억새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떠나게 된 동기와 여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술하여 기행문의 성격을 더 많이 지닌다. 글을 읽는 동안 장관을 이룬 억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곳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들게 할 만큼 풍경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여행지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과 깊은 사색이 있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여행을 소재로 한 수필은 아니지만 정옥순의 「오늘도 봄동」을 깊은 감동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일상에서 늘 함께 하는 자연이 말씀으로 들려주는 삶의 원형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겨울이 끝날 즈음 모진 눈바람을 이겨내고 휑한 밭에서 오롯이 싹을 틔우는 것이 봄동이다. 맛은 질긴 듯하지만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도 좋고 씹을수록 달큰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봄동을 작가는 좋아한다. 젊은 시절 냉엄한 현실 앞에서 꿋꿋이 살아낸 작가도 한때 봄동처럼 당당하게 추운 삶을 맞이했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봄동을 찾을 즈음이면 겨울은 끝이 나듯이, 낯선 곳에서 시난고난하던 자신도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스스로 동화되면서 안정을 찾아간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허둥대던 자신을 지켜보던 시어머니의 생각처럼 언젠가는 단단한 김장 배추처럼 속이 꽉 찬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힘이 잔뜩 들어간 일상에 지쳐갈 때 구멍 난 마음의 허기를 채워준 것이 봄동이었다. 날것의 자존심을 우걱우걱 씹으며 쌉쌀하고 거친 맛으로 새겨진 냉엄한 현실을 내 안에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버려졌던 배추의 맛을 알고 봄동을 찾을 때가 되면 겨울은 거의 끝나간다. 나의 힘든 시간 또한 그랬다. 겨울이 지나자 그들도 나를 받아들였고 나도 그들에게 동화되어 갔다.
「오늘도 봄동」에서 작가는 봄동이라는 상관물을 통하여 봄동과 자신이 처한 현실과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봄동에 대하여 천착하고 봄동의 생을 자신의 삶과 결부시켜 역동적으로 상상력을 펼쳐간다. 이렇듯 수필적 상상을 통해 봄동의 원형성을 찾아 주제를 의미화하는 데에 성공한 작품이라 하겠다.
수필은 풍경이 들려주는 개념화된 진리의 말씀[아포리즘 aphorism]을 받아서 미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문학이다. 이번 호에는 원로 수필가의 작품이 게재되어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받아 적는 전략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반숙자님의 「스승과 제자」는 스승과 제자는 평생 교유하며 끈끈한 인연을 이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논어에서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이란 말이 있다. 교사이든 반면교사이든 누구나 나를 가르친다는 삶의 틀을 깨닫게 한다. 쉽고 수수한 문체가 오히려 깊은 의미를 지닌다. 박영자님의 「기적소리」는 노년에 회상하는 첫사랑을 고백함으로써 수필에서 고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였다. 임병식님의 「극과 극」은 사회 현상을 걱정하는 원로의 심정을 드러내 보였고, 한동희님의 「내 마음에 작은 방울 하나」는 노년에 인생의 숙제를 붙잡고 후회하지만 희망의 작은 방울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로 수필가들께서 오래도록 아름다운 글로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기를 기대해본다.
수필은 정해진 형식이 없는 짧은 산문이다. 형식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유를 토로할 수 있지만, 형식이 없기 때문에 짜임새 있는 구성이 필요하고, 어휘 사용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이번호에서 비문법적문장이 많이 발견되었다. 가령 ‘나는 사과와 음료수를 마셨다’라고 하면 ‘사과’라는 목적어도 ‘마셨다’가 서술하는 것이 된다. 용언(동사, 형용사)은 어미를, 체언(명사, 대명사)은 조사를 신중하게 써야 의미가 깊고 함축성 있는 표현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번호에서 특집 ‘2023년 좋은 수필 10선’ 에 실린 작품은 월평에서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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