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산은 사람의 마음, 산림인 목성균의 문학

느림보 이방주 2024. 4. 25. 15:30

산은 사람의 마음, 산림인 목성균의 문학

 

목성균 수필가의 고향 윗버들미를 찾아간다. 작가가 뼈를 받고 살을 불려온 산협촌 괴산군 연풍면 유상리가 거기이다. 괴산에서 연풍면 소재지로 가는 옛길을 달리다가 사과향이 물씬 풍겨나는 골짜구니로 천천히 들어가면 거기가 윗버들미이다. 산협촌 개울가를 비집고 간신히 닦아놓은 신작로를 요리조리 달리다보면 검푸르게 하늘에 치솟은 산이 꽉 막아선다. 백두대간의 막다른 골짜기, 산림인이며 문학인인 목성균의 고향이다. 맨드라미 백일홍이 피어난 골목길을 들어서서 잔디가 포근한 마당 안에 소박한 단층집이 목성균 선생의 옛집이다. 자리를 펼 것도 없이 잔디 위에 앉으면 별이 보일 것도 같고 옛 이야기가 솔솔 피어날 것 같다.

산은 마을을 가른다. 마을 공동체는 문화를 형성하고 산은 마을의 문화를 구분 짓는다. 하지만 요리조리 개울을 따라, 고개를 따라, 사람의 발자국이 만들어낸 오솔길을 따라 마을의 문화는 들고나게 마련이다. 산협촌에도 도회의 문화가 장마철 물고기 오르듯 스며든다. 산은 문화를 나누지만 서로 몸을 섞으면서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을 키워낸다. 목성균도 백두대간 골짜구니인 고향 연풍을 ‘유토피아’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연풍은 내 고향이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유토피아―. 나를 성장시켜 준 연풍을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토머스 모어는 못 되었어도 연풍의 정기를 받아서 수필문학의 후학이 된 것이다. (작품 〈산읍 소묘〉에서)

산촌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작가가 산과 문학의 관계를 잘 드러낸 말이다. 생전의 목성균은 문학성보다 날카로운 듯하면서도 털털하고 겸손한 인품으로 문단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언어는 늘 겸손하고 따뜻했다. 후배나 동료 문인들과의 관계가 곧 수필문학 자체였다. 그런 목성균 선생과 단 한 번의 만남은 내겐 행운이면서도 불행이었다. 작품으로 먼저 만나고 어느 문학 모임에서 그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서너 달 후에 부음을 들었다. 자주 만나 소주를 마시자던 약속을 지키고 다만 몇 번만이라도 더 만났더라면 나의 문학도 지금보다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1938년 괴산 연풍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고향에서 졸업하고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1959년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다음 학기에는 등록을 포기해야 했다. 군에서 제대 후에 1968년 산림직 공무원으로 강릉영림서에 근무하면서 백두대간 산림에 묻혀 살았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1995년 월간 《수필문학》 에 추천 완료되어 2004년 5월 타계할 때까지 짧은 기간 문인으로 활동했다. 그의 창작활동은 아주 짧았지만 굵은 족적을 남겼다. 연암서가(대표 권오상)에서 그의  작품을 모아 김종완 평론가의 해설로 《누비처네》를 내기 전까지는 간간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나오긴 했으나 이렇게 굵고 큰 발자국인지는 미처 알려지지 못했다.

그가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작품집은 《명태에 관한 추억》(하서출판사, 2003)이다. 여기에 그의 작품 51편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아주 소량으로 인쇄하여 지금은 문화재처럼 구하기 어렵다. 그는 이 책으로 에세이문학사에서 시상하는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타계 이후에 유고 수필집 《생명》(수필과비평사, 2004. 11.)에는 50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유고집 《생명》은 그가 이승의 강을 건너기 전날 메모지에 써서 건넨 수필 〈생명〉이 표제작이 되었다. 그 후 선집 《행복한 고구마》(선우미디어, 2010), 《돼지불알》(좋은수필사, 2010)가 나와서 그의 작품은 문단에서 빛을 내기 시작하였다. 연암서가에서 2010년 11월 《명태에 관한 추억》과 《생명》에 수록된 작품 101편을 모아 《누비처네》를 발간하여 문단은 물론 세간의 시선을 모으게 되었다. 드디어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 나오고 우리 문학사에 미친 영향이 제대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수필가 목성균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가고, 그의 작품은 진흙 속에 묻힌 금관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이 글에서는 계간 문예지 《산림문학》의 발간 취지를 살려서 산협촌에서 나고 성장하여 산림공무원을 했던 그의 일생과 문학의 관계와 아울러 그의 문학이 우리 수필문학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의 전 작품을 수록한 것으로 보이는 《누비처네》 2010년 12월 초판본에 수록된 작품을 대상으로 했음을 밝혀 둔다.

 

1. 산에서 받은 정서, 산으로 돌려주는 성정

작가의 고향 윗버들미는 산골짜기 막다른 끄트머리다. 들머리만 있고 나가는 길은 없다. 그래서 들어간 길을 되짚어 나와야 한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걸어서 넘던 고갯길은 있었다. 면소재지인 산읍 연풍으로 넘어가는 고개, 충주 수안보로 넘어가는 고개, 이웃 고을인 장연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그것이다. 산기슭은 온통 사과밭이다. 사과가 익어가는 가을에는 산에 둘러싸여서 흩어질 수 없는 사과향이 마을 사람들 옷자락에도 묻고 얼굴에도 묻어난다. 윗버들미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사과향을 풍긴다. 그네들의 마음에서도 사과향이 난다. 그것은 그냥 산의 향기이고 윗버들미 사람의 마음이다

산그늘 진 갈매실 냇가의 자갈밭은 그 시절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개성대로 솔직하던 고향 친구들이 은밀하게 모여서 주량을 늘려가고, 끽연 폼의 멋을 창출하고, 여울낚시의 기량을 숙달시키고, 매운탕 끓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음모하고 실행했다. (작품 〈그리운 시절〉에서)

산이 있으니 물이 있다. 산기슭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고, 샘물은 냇물이 되어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산협촌에서는 냇물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지트인 냇가에서 음모한 해프닝들이 산촌을 떠들썩하게 하는 동안 작가의 생애도 ‘꿋꿋하게 혹은 경거망동하게’ 개성대로 성장한다. 여울낚시, 끽연의 폼, 주량을 늘리고, 매운탕 끓이는 법을 배우고 터득하는 동안 산협촌의 문화를 익히고 도회로 나아가는 법을 공유하면서 산읍 소년은 청년으로 성장한다.

작가는 산촌의 정서를 ‘저녁 세수를 한 산골처녀의 맨얼굴 같은 들국화’나 ‘열매가 풀숲을 스치며 떨어지는 소리’, ‘어둡기 전에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와 같다고 했다. 들국화를 보며, 풀벌레 소리를 일상으로 들으며 살아온 산촌의 정서가 생활 문화에 배어나오고 도회의 생활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고 그의 인품으로 이웃에 되돌렸을 것이다.

나는 사람 사는 것이 다랑논 부치는 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다랑논을 보면 삶이 행복하다 말하는 게 얼마나 건방진 수작인가 싶다. 다랑논은 삶의 원칙 같다. 다랑논의 경작은 삶에 대한 애착의 일변도 같다. (작품 〈다랑논〉에서)

그는 인생을 다랑논 부치는 일로 정의하였다. 다랑논은 산비탈에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좁고 작은 논을 말한다. 그러므로 경제성이 없다. 비경제적인 논을 부치던 산협촌 사람들 마음처럼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다. 기대할 것도 기대하지 않을 것도 없는 자연에 맡기는 삶이 바로 윗버들미 사람들이 지닌 생활 철학이었다. 하늘이 주는 대로 모를 낼 수 있으면 내고, 풍작이면 풍작인 대로, 흉작이면 흉작인 대로 사는 향일성(向日性)이 곧 천심을 받은 산의 마음이다. 지금은 윗버들미에도 비경제적인 다랑논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다 멀리 떠나고 없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즈음 다랑논이 없어진 세상은 삶의 원칙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목성균이 산이 주는 대로 받은 정서이고 인생관이다.

 

2. 윗버들미 사람들

산협촌에도 외지로 통하던 고갯길이 있다. 고갯길을 넘어서 산촌의 문화가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바깥의 문화가 넘어온다. 고개는 분수령이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분수령이기도 하지만 산협촌 사람들에게는 한의 분수령이다. 특히 윗버들미 여성들은 문화가 넘어오기도 하고 넘어가기도 하는 것처럼 삶이 넘어가고 넘어온다. 윗버들미에서 태어난 사람은 고개를 넘어 대처로 시집가고, 대처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윗버들미로 시집와서 산다. 그러므로 고개는 여성들에게는 평생의 한을 만들어준 분수령이다. 《누비처네》 첫 작품은 〈고개〉이다. 여인들이 어린 신랑을 따라 넘던 ‘낭만의 고개’는 추억이 되어버리고, 어느새 신랑이 시앗을 보게 되어 ‘한의 고개’가 되었다. 마을사람들에게는 ‘보부상이 넘나들던’ ‘상포 흥정을 하러 넘나들던’ ‘야반도주하는’ ‘사돈이나 종백(宗伯)이 넘어오는’ ‘꽃가마가 넘어오는’ 곳이 고갯길이다. 반가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고개를 넘어가고 고개를 넘어온다. 버스가 들어오면서 산협촌의 문화까지 사람이 넘나들지 않은 고갯길처럼 황폐화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고갯길이 사라지기 전에 이미 윗버들미의 문화를 가슴에 담고 바깥세상으로 나왔기에 그에 대한 진한 그리움만 남아 있다.

윗버들미 사람들은 다랑논을 보면서도 마음의 갈등을 가라앉히고, 흰옷 입은 어른을 보면서 그의 헌헌한 위엄에 존경을 표하고, 달밤의 다듬이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가난을 가난으로 알지 못하고 살면서 나름대로 해학과 위트를 누리며 사는 삶이 그의 작품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인정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공동선으로 인정되는 산촌 문화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무 한 개를 다 먹은 인민군은 밭둑에서 일어섰다. 할머니가 얼른 머리에 쓰고 계시던 무명 수건을 벗어서 “해줄 게 아무것도 없네.”하시며 인민군의 볼을 싸매 주셨다. 사시장철 밖에서는 쓰고 사시는 할머니의 살갗 같은 당목수건이었다. 소년병은 땀에 절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할머니의 당목수건을 해주는 대로 가만히 받아들였다. 이미 뼛골까지 파고드는 산속의 추위를 겪은 때문일까. 당목수건에 밴 냄새가 고향의 부모님 냄새처럼 그리워서일까. (작품 〈소년병〉에서)

인민군은 적이 아니라 사람이다. 내 형제이고 자식이고 손자이다. 할머니가 인민군 소년병을 대하는 성정이 윗버들미 사람들의 성정을 대신한다. 이것은 곧 잃어버렸으나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네의 성정이었다. 이러한 윗버들미 사람들의 성정이 그의 작품이 고스란히 품고 있다.

 

3. 산림인으로 살면서 키운 수필가의 감성

군에서 제대한 작가는 산림공무원이 되어 강릉 영림서에 근무하게 되었다. 백두대간의 험한 산중에서 산림을 관리하면서 외로운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대관령’ ‘대설주의보’ ‘황태덕장’ ‘춥고 긴 하루’ ‘빨간 고독’ 같은 단어들이 산중생활을 대변해 준다. 아내는 황태덕장의 힘든 여인들에게 털목도리를 떠서 주기도 한다. 작가는 고산지대의 외로운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성정은 윗버들미에서 몸에 밴 결과라고 생각된다. 특히 〈약속〉 〈어떤 직무유기〉 같은 작품에는 〈소년병〉에서 할머니가 인민군 얼굴에 당목수건을 감아주던 인간애가 분명히 씨앗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직무유기〉에서 도벌꾼을 체포하러 갔다가 놓아주었던 일화를 이렇게 소환하였다.

지금도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는 밤이면 그때가 생각난다. 소리 내서 울던 어린 것과 소리 죽여 울던 새댁의 애처로운 모습을 생각하면 도벌꾼을 놓친 게 아니라 놓아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함박눈이 내리는 밤의 직무유기가 내 인생의 공덕인 양 흐뭇하기 때문이다. (작품 〈어떤 직무유기〉에서)

 

4. 산림인의 철학이 문인의 사상으로

작품 〈혼효림〉은 산림의 구성을 사회의 구성으로 치환하여 이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산림에서 소나무와 참나무를 상관물로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전달하였다. 나무에는 선비 같은 나무도 있고, 상민 같은 나무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비, 상민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의 개성이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소나무를 선비나무라고 하고 참나무를 상민나무라고 한다면 바람직한 혼효림의 비율이 25:75이듯 상층계급과 서민의 구성도 25:75가 되면 바람직한 구성이라 했다. 산림의 모습은 인간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체계임을 발견한다. 숲의 사회상이 인간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바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와 같이 구성된 사회에서 구성원 사이에 서로 개성을 존중하고 상생하는 가운데 좋은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다. 산림의 철학이 문학으로 승화되어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대개의 평론가들은 목성균의 수필을 한국인의 정서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탄생과 성장과정에서 산협촌인 윗버들미에 사는 이웃과 벗들에게서 받은 성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목성균의 수필을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인 서사성과 거기에 담긴 진실성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말하기(설명적 제시)보다 보여주기(묘사적 제시)로 형상화 되어 현장감이 살아있기에 읽는 재미를 더한다. 목성균 문학의 가치는 한국 전통수필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이 가장 소중하다. 앞으로 연구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은 사람의 마음을 기르는 샘물이고, 산협촌 사람들의 성정이 된다. 목성균의 문학은 산의 성정을 받아 적은 산림문학이고 인간 문학이다.(산림문학 2024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