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상당산 호랑이

느림보 이방주 2023. 2. 27. 22:36

상당산 호랑이

 

나는 오늘도 네가 그립다. 너의 고운 얼굴이 그립다. 천천히 되새김질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길고 성긴 속눈썹을 드리운 너의 눈빛이 그립다. 새벽안개가 걷힐 무렵 이름보다는 아름다운 미호문에 오르면 거뭇거뭇 네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뭇한 실루엣이 초록으로 변해갈 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를 응시한다. 한남금북정맥 골짜기마다 잔설이 녹고 초록이 꿈틀거리는 해토머리 한낮이 되면 너도 내게 점점 다가오는 느낌이다. 태양이 황홀한 노을을 너의 온몸에 쏟아 붓고 하늘빛이 시나브로 숨을 거두면 나는 아쉬움으로 몸부림친다. 너의 둥그런 등줄기 너머로 청주 시가지가 뚜렷하게 보이는 아침이 올 때까지 나도 외로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내수읍, 오창읍, 오송읍을 품고 있는 미호강이나 팔결들판도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바라볼 수 있다. 잠자리에 들어 너를 그리듯이 무심천을 그리고 육거리시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그려본다. 그러나 꿈에서도 잠재울 수 없는 그리움은 청주의 진산 바로 너 와우산이다.

나는 그리워하면서도 너에게 갈 수가 없다. 그리움이 이렇게 절실한데 세상은 나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 규범의 사슬에 매달린 나는 너에게 달려갈 자유가 없다. 상당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나는 오른쪽으로 우백호가 되어 여기에 이르렀다. 왼쪽으로 좌청룡도 저만치 가버렸다. 우리를 산줄기로 그냥 내버려두면 좋을 것을 미욱한 사람들은 좌청룡 우백호라는 차꼬를 채워 놓았다. 좌청룡은 동암문, 진동문, 보화루를 등에 지고 북동에서 부는 바람을 막아섰듯이, 우백호인 나는 서장대, 미호문, 서남암문, 공남문을 지고 서남에서 오는 비바람을 막아내야 한다. 나는 언제든 너에게 뛰어가려고 온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목덜미에 문을 세워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이름을 그냥 서문이라 하면 될 것을 고삐를 매듯 ‘미호문(弭虎門)’이라 했다. 시위를 고자단장에 매듯 이름으로 날 잡아맨 것이다. ‘호랑이[虎]를 멈추게[弭]하다’라는 뜻이란다. 금기가 많을수록 백성은 등을 돌린다는 말을 듣지도 못한 것들이 저지른 행위이다.

너도 나를 그리워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워도 내게 올 수가 없다. 소가 누워 평화롭게 되새김질하는 형국이라 ‘와우산(臥牛山)’인 것을 사람들이 ‘우암산(牛岩山)’이란 이름으로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누운 소는 일어서면 내게 올 수 있지만 소를 닮은 바위는 일어설 수조차 없지 않은가. 법을 만들어낼수록 백성은 점점 도적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자연이나 사람이나 상생으로 제 값을 갖는다. 산이나 강이나 사람이나 인연과 관계를 버리면 활력을 잃어버린다. 산성 마을은 상당산성이 품어 안았고, 상당산은 한남금북정맥의 작은 봉우리이고, 한남금북정맥은 백두대간의 한 지맥이다. 그리움도 없이 어찌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상당산 우백호인 나도 와우산 누렁소인 너를 보고 도약의 의욕을 갖게 되었다. 강은 산을 연원으로 삼고 산은 강이 있어 문화와 문명을 이어가며 생명력을 갖는다. 와우산이 있어 너를 그리워하는 내 가슴은 온기를 잃지 않는다. 네가 있어 허벅지에 힘을 주며 허리에 기를 모아 네게 뛰어갈 꿈을 꾼다. 자연은 그대로 두면 저절로 상생하고 사람을 살려낸다. 내게 생명을 달라. 수백 년 미호문에 매인 상당산 호랑이인 나의 기를 풀어 달라. 몇 십 년인지 바위로 살아온 우암산을 와우산으로 되살려 달라. 유위(有爲)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무위(無爲)로 이루어짐을 잊지 말라. 자연을 ‘그냥 그렇게’ 두는 것이 상생의 근본 도리임을 정치라는 허명으로 부정하지 말라.

나는 오늘도 네가 그립다. 정치로부터 벗어나 이념도 규범도 없는 너에게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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