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문학과 수필평론

김정옥의 <꺼꾸리에 올라>

느림보 이방주 2023. 2. 12. 21:31

인식의 방법

꺼꾸리에 올라

김정옥

얼마 전부터 허리가 안 좋았어. 병은 자랑하랬다고, 여기저기 소문을 냈더니 이구동성으로 허리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거야. 걷는 것도 좋고 몸을 거꾸로 뒤집는 것도 허리에 도움이 된다더라고. 천생 겁쟁이인 나는 뒤집는다는 게 무척 두려웠어. 어릴 적에 물구나무를 서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언감생심 어림없었거든.

걷는 것이 허리 근육 강화에 좋다니 그거야말로 참 쉽겠다 싶어 당장 실천했지. 뒷산을 걸었어. 정상 언저리 평평한 곳에 이르니 여러 운동기구가 있는데 그중에 ‘꺼꾸리’가 눈에 확 뜨이더군. 꺼꾸리는 기구 아래에 발을 걸고 천천히 뒤로 넘어가면 되잖아. 그런데 몸이 뒤집어질수록 쑤셔 박힐까 봐 겁이 나지 뭐야. 도저히 혼자 힘으로 할 수가 없었어. 든든한 옆지기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뒤집었지. 뒤집힌 채로 있는 일 분이 한 시간이라도 되는 양 길었어. 나 원 참, 뒤집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어렵더군.

그런데 말이야. 생전 처음 뒤집혔는데 몸이 아주 개운해. 피가 거꾸로 돌았을 터인데 머릿속이 맑아진 거야. 허리도 쭉 펴지며 지병이 된 척추관 협착증 증세도 한결 좋아지는 느낌이었어. 한 번 해 보고 호들갑 떠는 것 같겠지만 느낌이 좋으면 효과가 있는 거 아니겠어.

엊그제는 말이야. 트롯 가수 김수찬이 송대관이나, 태진아 같은 선배 가수 흉내를 기가 막히게 내는 거야. 그걸 보고 관중들이 배를 잡고 뒤집어졌어. 뒤집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지. 유쾌하게 웃을 때 몸이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요즘 그렇게 말하더라고. 나도 살아가면서 뒤집어질 일이 자주 있으면 좋겠어.

참, 6년 전엔 세월호가 뒤집혀 온 세상이 시끌시끌했었지. 사망자가 300명이나 된 엄청난 사고였으니 기가 막힐 일이지. 누구의 잘못인가 책임을 묻고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위정자는 물론이고 국민이 모두 나섰잖아. 온 나라에 노란 리본이 나풀거리고. 그러더니 배가 뒤집히듯 정세도 뒤집히더라고.

올해엔 웬 전대미문의 코로나가 나타나서 일상을 뒤집어 놓았는지 몰라.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살이 판도가 달라졌어. 이웃 간에 발길도 멈추더니 하늘길도 멎었어. 경제는 멈추는 것도 모자라 뒷걸음질 치고. 아, 언제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람살이를 뒤집어보면 어떨까. 고초 당초같이 맵다가도 꿀처럼 달곰할 때도 있잖아. 소태같이 쓰기도 하다가 양주처럼 시금털털할 때도 있고. 쓴맛, 단맛 다 보다가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날이 오면 인생 끝난 거 아니겠어. 하지만 맵기만 하지도 않고, 쓰기만 하지도 않으니 살만하잖아. ‘고진감래 흥진비래’라고. 각다분하다가도 견디다 보면 수월할 때도 오고, 즐거움이 다 하면 슬픈 일이 닥치는 것이 인생인 거지.

인터넷에 떠도는 ‘인생 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 봤나 몰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슬픔과 기쁨, 아픔과 고난, 걱정과 근심의 양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타고 난 자기 몫의 희비애락을 써야 한대. 아마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이나마 뒤집어보려고 그런 말이 나왔지 싶어. 삶이 고달플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말이지.

세상은 참 뒤집는 일이 많기도 해. 씨름선수가 화려한 뒤집기 기술로 판을 뒤집듯 스포츠 경기에선 전세가 여러 번 뒤집혀. 법정에서 검사가 판결을 뒤집기도 하고, 역사와 문화는 수십 차례도 더 뒤집히지. 뒤집다가 뒤집히다가 다시 뒤집어지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겠지.

‘무대를 뒤집어 놓았다.’ 노래 경연대회에서 참가자의 열창에 심사위원이 한 말이야. 노래 실력에 대한 감탄과 놀람이 아니겠어. 극찬을 한 거지.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생각하니 무대를 뒤집는다는 의미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어.

나도 내 인생 무대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내가 주인공이고 조연인 모노드라마 무대에서 맡은 배역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마지막 무대까지 큰 실수나 하지 않고 내려올 수 있다면 그도 좋겠네.

‘꺼꾸리’에 매달려 보니 세상이 새롭더라. 하늘이 눈 밑으로 내려왔어. 게다가 우람한 밑동이 위로 보이는데 나무가 거꾸로 박혔지 뭐야. 나뭇가지가 가슴께에서 한들거리고 머리 위에서 사람들이 거꾸로 돌아다니더군. 내가 뒤집히니 세상이 나를 따라 뒤집어지는 거야.

이제 내 사고思考나 슬슬 뒤집어 볼까. 남편과 나의 입장을 바꿔 보고, 걱정될 일도 더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거꾸로 생각하는 거야. 지는 것이 이기는 거다,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돋움이라고 말이지. 작은 소리가 큰 울림이 되기도 하고 강한 것이 오히려 약하기도 하잖아. 슬프지만 살아가는 것도 뒤집어 보면 결국 죽어가는 거야.

오늘은 마음밭이랑이나 뒤집어 봐야겠어. 돌덩이처럼 단단한 흙을 부드럽고 성글게 부수는 거야. 간혹 틈새에 잔자갈이 숨어 있으면 슬그머니 골라내고. 바람이 바투 다가와 슬며시 뒤치면 나는 넌지시 엎치고. 내 마음밭 고르기에 무딘 괭이라도 선선히 나서주려나.

(김정옥 수필집 <꺼꾸리에 올라>에서)

 

[느림보 단평]

수필 쓰기는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대상에서 삶을 발견하는 것이다. 대상에서 삶의 원리를 발견하고 발견한 진리를 통하여 작가와 독자가 공감하고 위로와 치유를 받는 것이 수필 쓰기의 하나의 과제이다.

인식의 방법과 단계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꺼꾸리’라는 운동기구를 작품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대상인 꺼꾸리를 분석하는 듯 하다가 꺼꾸리의 속성을 인식의 한 방법으로 택하는데 묘미를 보인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때로 뒤집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뒤집어 본 세상은 일상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된다. 물리적으로 뒤집어 볼 수도 있겠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뒤집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가는 그러한 뒤집어보기의 묘미를 꺼꾸리에 올라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서의 정신적 치유를 얻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필은 작가의 체험의 세계를 상대에게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어 공명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작가는 이 작품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로 대상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수필의 새로운 면을 시도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