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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주의 <머리 유감> 수필과비평 2020년 5월호(223호)

느림보 이방주 2020. 5. 24. 20:50

심사평

 

머리는 사람의 심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운동경기에서 선수들이 머리를 깎고 출전한다거나, 불가에서 출가와 동시에 머리를 깎는 것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결의의 표명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다짐의 표시이다. <머리 유감>은 오랫동안 긴 머리에 정성을 들렸던 딸아이가 갑자기 단발머리로 자른 것을 보면서 화자가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심리적 변화가 어떻게 머리가 반영되어 왔는지를 재미있게 풀어낸 글이다. 화자는 그동안 머리와 관련된 마음이 기억하는 삶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세밀한 소묘화라기보다는 담백한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화자의 기억에서 호명되어 나온 에피소드들, 즉 태어날 당시 우ㅠ리 전통 가정의 남아선호사상, 중고등학교 시절의 단발 규정, 사회 생활 등 잊혀가는 시대 상황들과 사회 생활, 신혼 생활, 육아 생활 등 당시 화자을 둘러싸고 있었던 삶들을 쓰다듬으며 잔잔한 물감을 풀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여러가지 색채로 그려낸 한 편의 조화로운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자신의 내면 풍경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충만하게 포착해내는 힘이 느껴진다. 당선을 축하한다.

(유인실)

 

 

머리 유감

 

이우주

 

머리 유감

 

이우주

 

객지에 사는 딸이 긴 머리를 자르고 단발머리로 집에 왔다. 학교 다닐 때 밥은 먹지 못해도 긴 머리는 열심히 다듬으며 정성을 들였는데 말이다. 여자는 심경의 변화가 생기면 머리를 자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걱정되어 딸아이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조심스레 물어보았더니 아무 일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거나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긴 머리를 찰랑찰랑하고 다닐 때는 예뻤는데 자르니까 깜찍하다. 나는 어미 고슴도치다.

지금은 자유롭지만 우리나라도 한때는 남녀 모두 머리에 대하여 불편한 때가 있었다. 중고등학교는 남녀학교 모두 엄격하게 규제를 했었다. 또한 성인이 된 남자들에게 장발을 단속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머리모양 자율화 세대는 아니다. 일반적인 여자중고등학교는 거의 다 단발규정이 있었는데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긴 머리를 허용하였다. 그 덕에 나의 학창시절 6년은 다른 학교 여학생들이 느낄 수없는 행복을 맛보고 지낸 시기였다.

중학교 때 나는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다니며 한겨울 추울 때면 부엌에서 머리를 감았다. 어느 날 엄마는 나를 미장원으로 데리고 가서 내 머리를 싹뚝단발로 잘라주셨다. 그때 나의 마음은 단발령 때문에 머리를 자른 조선시대 유생의 심정이었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머리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서러워서 저녁밥도 먹지 않고 울면서 방에만 있었다. 까닭을 아신 아버지는 내 방에 들어오셔서 빵과 우유를 놓고 나가셨다. 그 후로 엄마는 내 머리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으셨다. 다음 날 아침, 두 눈이 퉁퉁 부어서 학교에 갔다. 조례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단발인 내 머리를 보시고는 예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마음은 진정되면서 기분도 좋아졌다.

선교사님이 세우신 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도 머리를 계속 길러서 땋았다. 그 길이가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나의 머리는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보이지 않는 힘을 주는듯한 느낌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고 남학생은 빡빡머리로, 여학생은 단발머리나 긴 머리로 6년 동안 학교를 다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을 벗으면 그 때부터 성인으로 대접을 받는다. 성인이 되는 해방구로 남학생들은 머리를 기르고 여학생들은 커트를 한 것 같다.

졸업을 하고 친구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자고 한다. 나는 미리 집에서 머리를 어깨까지 자르고 예쁜 종이로 포장했다. 내 소중한 머리를 미용실 바닥에 뚝뚝 떨어뜨리며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6년간의 학교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의 학창시절과 머리카락들은 서랍장 속에 보물로 숨겨 놓았다.

첫 커트는 좋은데서 해야 된다는 친구와 함께 유명하다는 미용실을 찾아가 커트를 했다. 미용사는 머리숱이 많고 머릿결도 튼튼하다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 머리를 자르니 허전하면서 목덜미가 춥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어색해진 내 모습을 보려고 거울 앞으로 갔다. 중학교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머리를 자르니 예쁘다라고 내 귀에다 속삭이신다.

나의 머리 사랑은 미혼의 시기가 절정이었던 것 같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기쁠 때, 또 미팅이나 데이트 약속이 있으면 항상 미용실을 가서 나의 마음도 다독였다. 철없는 처자의 소소한 행복으로 미장원에 아낌없이 돈을 투척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키가 조금 작고 통통한 몸집이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키 크고 날씬한 친구들한테 기죽지 않으려고 머리에 애착을 가진 것 같다.

신혼 초에는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머리를 자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내 머리에 별 관심이 없는지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았어도 말이 없다. 어떤 때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알리려고 항의성으로 머리에 변형을 주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야속했지만 그것도 잠시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머리에 신경을 쓸 틈 없이 바빴다. 육아와 살림으로 시간은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더 바빠졌다. 아침은 항상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지나갔다. 이제 아이들이 다 자라 품에서 멀어져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머리에 관심이 없어졌다. 큰 행사가 없으면 서너 달에 한 번 미용실 가서 파머를 하는 것이 전부다.

그동안 내가 왜 그리 머리에 애착을 가졌는지 생각해 본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우리 집은 13녀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시고 임신하셨지만 병원에서 딸이라고 알려주어 낙태를 결정하셨다. 약을 드시고 날짜에 맞춰 수술하셔야 했는데 시기를 놓쳐서 나를 낳으셨다.

나는 태어날 때 배냇머리가 검지 않았다. 빨간 머리다. 나를 포대기에 업고 나가면 사람들이 서양아이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를 빡빡 깎으면 노란 머리가 나고 하얀 머리까지 났다. 하얀 머리를 깎은 뒤에야 검은 머리카락이 났다고 한다. 남들은 평생에 한 번 깎는 배냇머리를 3번이나 깎아서 그런지 지금의 내 머리카락은 아주 굵고 숱도 많다. 내 나이가 되면 탈모를 걱정하고 가발도 쓰는 사람도 많은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머리로 말을 한다. 예전의 우리나라 여자들은 머리를 하나로 곱게 땋아 내리면 아가씨라고 말을 하는 것이고, 올려서 쪽진 머리를 하면 결혼했다고 말을 한 것이다. 또한 마음속의 말 대신으로 머리를 자르기도 하고 기르기도 한다. 머리로 무언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머리로 소리 없는 말을 하고 산 것 같다. 딸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어본다.

 

 

당선소감

 

이우주

 

조금은 한참 지난 여고시절, 새로 부임하신 국어 선생님께서 처음 문예반을 만드셨습니다. 문예반에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문예반 이름을 혜다로 정하고 매주 글짓기를 했습니다.

당시 서울의 많은 대학들은 축제 때 고등학생 백일장을 열었는데 혜다반 친구들이 모두 참가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수상을 하든 하지 못하든 글을 쓰는 일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 동안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놓고 있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는 혜다반이 늘 작은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문학에 대한 작은 꿈은 사위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커갔습니다. 작은 숨이 큰 꿈으로 커갈 때 소녀시절의 감성을 찾아주시며 축제를 즐기게 지도해주신 이방주 선생님과 축제마당을 멋지게 함께 해주신 문우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때의 행복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조심스럽게 다시 첫발을 내딛겠습니다.

 

 

 

약력

* 청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수료

* 한국거래소 근무.

*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가정폭력상담사, 성폭력상담사

* 청주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 무심수필문학회회원.

주 소 : 28375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로수로 1154번길 22-2 대림아파트 1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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